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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소한 우리의 2세들만은 차별과 특권의식이 판치는 세상이 아닌 나눔과 연대의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게 해 주어야 한다. 사진은 경북의 한 초등학교 수업 모습(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학교, 예전처럼 가난하지 않습니다. 학부형들은 학교가 가난한 시절에 학창시절을 보냈기에 '학교'라고 하면 '가난' 이라는 말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학부모가 경제적으로 학교를 도와줘야 할 만큼 학교 재정이 열악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를 둔 나는 학교 운영위원장이다. 작년에는 운영위원으로 활동했고, 올해는 영광스럽게도 운영위원장에 선출됐다.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운영위원이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학교에 도움이 되고, 선생님과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들이 모두 행복한 학교를 만들 수 있을까? 활동 2년차에 접어들었으면서도, 나는 운영위원이 왜 필요한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며칠 전 '참교육학부모회' 박이선 수석부회장의 강연을 들었다. 강연의 주제는 '학부모의 건강한 학교 참여'.

"학교에 돈내지 마세요, 직접 참여하세요"

▲ 박이선 수석부회장 (자료사진)
ⓒ 참교육학부모회
이 날 박 수석부회장이 마이크를 잡자마자 청중들에게 던진 말은 "학교, 예전처럼 가난하지 않습니다"였다. 이 한 마디로 청중들의 시선은 강사에게 꽂혔다. 내 귀와 눈도 자연스럽게 집중되었다.

박 부회장은 학부모들이 후원회 등을 조직해서 아이들을 교육시키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말했다. 학부모 참여는 돈을 기부하는 형태가 아닌 새로운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그 '새로운 형태'는 교육 현장인 학교에 직접 참여해서 교육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할 수 있도록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는 "학교운영위원이 교육개혁의 꽃"이라고 말했다. 학교운영에서 소외되어 왔던 학부모들이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또 "학운위는 학교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논의하는 학교의 중심 기구이기에 그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학운위 기능과 역할에 대해 잘 모르거나 방관하고 있어 아직까지도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 날 강연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보약처럼 좋은 내용이었다. 그 중 마음에 와닿았던 내용을 정리한다.

[의견 수렴] 숨어있는 불만을 찾아라 운영위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이나 불만을 민주적으로 수렴하여 학교운영에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운영위원들은 교사·학부모·학생들을 대상으로 불만이나 절실한 요구가 무엇인지 조사해 안건으로 상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통계 분석하여 학교운영의 개선에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규정 숙지] 제대로 모르면 엉뚱한 결정 학교운영의 규정과 법령을 숙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학운위 활동을 하면서 학칙과 규칙을 제대로 모른다면 엉뚱한 결정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고쳐야할 내용이 있을 수도 있다. 때문에 미리 학칙이나 규정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 한 학교의 조리실 모습.(자료사진)
ⓒ 이재홍
[급식 검사] 불시에 습격, 직접 먹어보라 학교급식을 직접 먹어보는 기회를 갖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아이들과 함께 급식을 직접 먹어보고 급식의 질을 향상시키거나 급식 방법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단 시식은 반드시 불시에 해야 하며 시식 결과에 문제점이 발견되면 안건으로 올려서 시정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아이들의 먹거리는 건강과 직결되는 사안으로 업체선정, 업체실사, 식품검수, 식단 짜기 등의 사안은 학운위에서 검토해 봐야 할 내용이다. 학운위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우리 아이들에게 더 질좋은 식사를 더 싼 값에 먹일 수 있다.

[발전기금] 학운위 결정없이 걷으면 불법 학교 발전기금과 관련된 사항도 학운위 안건이 된다. 학운위 결정 없이 학부모들로부터 발전기금을 조성하는 일은 모두 불법이다. 또 발전기금을 왜 걷는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도 학운위에서 결정해야 할 사항이다.

[공금 운용] 믿어달라고? 말로만? 인간의 활동에는 반드시 돈이 따른다. 따라서 돈도 하나의 교육대상이다. 깨끗한 사회는 깨끗한 돈에서 온다.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과서, 매일 입고 다니는 교복, 매일 먹는 점심, 졸업기념으로 만드는 졸업앨범 등이 모두 돈과 관련이 있다. 이에 대한 어떠한 의혹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에 대한 잡음이 많으면 많을수록 교육은 실패한다.

흔히 "내 말을 믿어달라"는 말로 공금을 처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공금처리를 말로만 하는 것은 불신의 시작일 뿐이다. 공금은 반드시 공적인 방법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계획과정, 집행과정, 결과처리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과정을 문서화하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예전엔 부자 엄마아빠만 학교 임원했지만....

▲ 지난 2월 22일 인권연대 교육장에서 '학교운영위원회, '노하우'를 공유하자'라는 주제로 간담회가 열렸다(자료사진).
ⓒ 인권실천시민연대
작년에 운영위원에 처음 들어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선배들은 "그거 하면 돈 많이 들어갈 텐데"라는 말을 했다. 운영위원을 예전 '육성회' 정도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 반, 충고 반 하는 마음으로 얘기했을 것이다.

예전에는 사실 학교 임원하려면 돈이 있어야 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70년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던 80년대까지 학부모들이 학교 임원을 하려면 집안에 돈이 있어야 했다.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반에서 유일하게 운동화를 신고다니던 친구의 아버지가 육성회장을 했다. 그리고 사립학교를 다니던 고등학교 때는 운동화에서부터 셔츠 점퍼까지 온통 메이커(당시 나이키가 유명했음)로 무장한 친구 녀석의 어머니가 학교 임원을 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던 나의 부모님들은 입학식이나 졸업식 때만 학교에 왔을 뿐이다.

부모가 학교에 들락날락거리는 친구 녀석에게는 일련의 혜택(?)이 주어졌다. 선생님의 관심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어지간한 잘못을 해도 나무라거나 매질을 하지 않았다. 그 때 어린 내 눈에 비친 것은 공정하지 못한 선생님들의 모습이었다(물론 일부 선생님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치맛바람' 이라는 말이 생긴 듯 하다. 대부분이 가난하게 살며 학교를 다녔던 부모들이 자식들만은 그런 차별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학교에 드나들며 치맛바람을 날렸을 것이다. 내 자식이 차별받는 것이 두려워서 또는 내 자식에게 선생님의 관심이 더 가기를 기대 하면서.

그러나 내가 운영위원에 자원하게 된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니다. 가진 것이 별로 없어도 학교 임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부모들의 경제능력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교육차별의 벽을 허무는데 일조하려는 것이다.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시키는 학교운영을 하는 것이 운영위원장으로서의 목표다.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기에 학비부담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부모의 경제력에서 오는 '차별'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운영위원 자원한 까닭

▲ 학교운영위원회는 학부모들이 학교운영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 사진은 서울 한 초등학교 모습(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예전에 심하게 불었던 치맛바람은 차별의 산물이다. 내 아이를 다른 아이보다 더 잘 돌봐주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이기심과 교사들의 말없는 동의가 결합해서 이루어진 교육의 사생아다. 그리고 그 바람은 지금도 교육현장에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그로 인하여 우리의 아이들은 어린시절부터 차별에서 오는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나누고 연대하는 모습으로 성장해야 할 우리아이들이 차별에서 오는 고통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또 반대편에 있는 아이들은 차별에서 오는 특권의식을 어렸을 적부터 몸에 익히고 살게 된다.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만들어가는 세상은 당연히 차별과 특권의식으로 점철된 비민주적인 세상이 될 것이다. 이러한 세상은 인간의 영혼을 고통스럽게 한다. 예전에도 그렇게 살아왔고 현재도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최소한 우리의 2세들만은 차별과 특권의식이 판치는 세상이 아닌 나눔과 연대의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게 해 주어야 한다.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 운영위원장으로서 나의 목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안양뉴스(aynews.net)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교육, #학부모, #학교,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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