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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홀아비들이 나름 화해모드 조성을 위해 찔러 넣어준 과일안주를 급무시하고 돌려보낸 날, 그래도 머리 썼는데 거절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또 꼬냥이가 천성이 모자라긴 해도 모질지는 못한 까닭에 큰 맘 먹고 마당 청소를 해주기로 했다.

꼬냥이가 살던 1층을 가장한 계단 1개 내려가는 반지하는 세 가구가 마당을 함께 쓰고 있었는데 그 앞은 보통 맨 끝 집 아주머니가 청소를 해주셨다. 청소라고 해봤자 먼지 좀 쓸고 물청소 하는 게 다였지만 이 폭삭 삭은 홀아비들이 이사오고 부터는!!!…. 참자…. 생각만 하면 혈압이 오르지만, 아무튼 이 홀아비들이 이사오고부터는 뭔가 점점 쌓여갔다.

@BRI@'남자 셋이 사는데 뭘 바라랴, 그래도 이웃이니 쓰레기나 치워주자'는 이웃으로서 대견하고 모범적인 마음으로 시작한 마당청소. 빗자루를 들고 홀아비 집 앞에 쌓인 쓰레기들에게 다가갔다.

"안녕, 난 꼬냥이라고 해. 오늘 너희들을 치워주려고 한단다."
"꺼져주세요."

마치 쓰레기들이 기를 실어 나를 밀치는 듯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그러나 어쩌랴, 자랑스러운 이웃으로서의 보람된 임무를 끝까지 수행해야 할밖에.

먼저 이사 올 때부터 내놓았던 이불을 가장한 거적대기. 더운 여름날 비를 맞고 햇빛도 녹녹하게 받아 보기 좋게 삭아버린 그것! 이게 과연 인간이 덮던 건지 애들 똥기저귀 이어붙여 놓은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폭삭 삭아 이미 녀석의 영혼은 요단강을 건넌 후였다.

주저주저 하며 이불을 걷어내는 순간…!!

"우오오오!! 우어!!! 으아!!"

오! 신이시여, 다시는 착한 짓 안하겠습니다!!

▲ 독자분들을 위해 생명체의 모습은 자제를...
ⓒ 박봄이
이불 아래에서 꼬물꼬물 기어나오는 파리의 소중한 새 생명들!!! 갓 태어났는지 마악 단잠을 깬 듯 징글귀엽개상콤한 몸짓으로 "아잉~" 하며 나를 향해 바둥바둥 젖달라고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우오!!

이불 안에는 청와대에서 급조하여 만든 듯한 이름의 청와루 반점 젓가락 세트와 흔적만 간신히 남은 만두들, 이미 파리 베이비들이 점령해서 하얗게 뒤덮인 짜장이 은닉되어 있었다.

사.고.쳤.다!

덜덜덜….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생명체들은 이미 가야 할 곳을 정한 듯 꼬물딱 꼬물딱 사방으로 전진하기 시작했고 다시 덮어봤자 그 놈들 중 몇몇은 우리집으로 침투할 것이다.

헤매이는 어린 생명들을 보는 순간, 꼬냥이는 이미 이성 상실, 개념 상실, 공포 상실이 되었다. 약 3분 전까지의 자랑스럽고 모범적인 이웃 따위는 이미 킬리만자로의 표범에게 잡아먹힌 후였다.

"나와봐요!!!"

낮에는 거의 박쥐처럼 잠만 자는 그들이기에 홀아비들 집 문을 부서져라 두드렸다. 얼마나 두드렸을까, 둘째 홀아비가 주섬주섬 문을 열고 나왔다.

"아저씨! 앞에 쓰레기가… 헉!"

등판이나 앞판이나 합판같은 몸매에 뭔 벽화를...

처음엔 무늬가 요란한 티셔츠라도 입은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둘째 홀아비의 몸은 말 그대로 동물농장, 그것도 조잡한 농장이 아니라 '지대' 쥬라기공원이었다.

"옆집 아가씨, 왜요? 아, 이 시간이면 우리 다 자야 되는데…."
"어버… 버… 쓰레기가…."

순간 말문이 턱 막히고 다리에 힘이 쫙 빠지는 것이 실로 오랫만에 전문가를 마주쳤을 때 느끼는 살떨림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형님."

에헤이, 더 자도 되는데 뭐 하나도 아니고 둘씩 나오나. 막내 홀아비가 느릿느릿 기어나왔다. 아따매! 저 놈은 김홍도 영감의 송하맹호도일세. 골고루 하는구나.

▲ 등짝에 강림하신 두 분!
ⓒ 박봄이
이미 일은 커져버렸고 어떻게든 수습은 해야 되는데 이대로 도망치면 다시는 이 집에 못 들어올 것 같고 그렇다고 그동안 컨셉트대로 하자니 아직 세상에 하고픈 일이 많은데…. 어떡하지? 아, 참말로 으째야 쓰까이….

순간!

"엉엉엉…. 집에 벌레들이 자꾸 기어들어오는데…. 엉엉…. 아저씨들이 청소 안 하니까…. 엉엉엉…. 냄새가 나서 죽겠는데 문도 못열고…. 흑흐흑…. 청소를 할래도 저 징그러운…. 엉엉…. 난 벌레 싫은데… 으앙…."

그건 어떤 계산된 행동이 아닌 본능에서 튀어나온 여자로서의 최강의 무기, 눈물이었다. 누가 때려도 그렇게는 안 울었을 듯, 어찌나 서럽게 울었는지 울고 있는 내내 머리 속에서도 '이것이 살고 싶긴 한가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홀아비들은 그제서야 꼬물대는 생명체들을 발견하고 짐짓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리디 어린 옆집 아가씨는 벌레 나온다고 울어대지, 사방에는 수백 마리의 새생명이 줄지어 피난가지, 은닉해 두었던 삭은 중화요리는 냄새를 뿜어대지, 제 아무리 벽화쟁이들이라도 아마 얼이 빠졌을 것이다.

훗, 둘째 홀아비는 연신 미안하다며 인사를 해댔고 손수 시원한 냉커피까지 만들어와 우는 애 사탕 물려주듯 손에 꼬옥 쥐어 주었다. 막내 홀아비는 혼자서 쓸고 닦고 약 뿌리고 정말 안방 청소하듯 열심히 청소를 했다. 물론 꼬냥이는 멀찌감치 계단에 앉아 냉커피 얼음을 와작와작 씹으며 청소 감독을 '즐겼지'.

"아, 거 뒤에 한 마리! 아저씨 발 뒤! 거기!"

케케케!!!

홀아비들과 꼬냥이, 이제 친하게 지내길 바래~

처음에는 짜증나게 싫었고 온 몸에 벽화를 봤을 때는 하늘이 노래 보일 정도로 무서웠지만 여자가 운다고 그거 달래느라 투박한 손으로 커피를 타오고 고생하며 청소하는 모습을 보니 뭐랄까, 그렇게 질색을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다 했어요. 이제 벌레 없어요."

바닥에서 광이 번쩍번쩍 나는 것이 한 번 울고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성과다 싶었다. 역시 여자는 영악한 동물이야.

"수고했어요."
"새벽도 아닌데 이제 통성명이나 합시다." (1편 참조)

어쭈리~ 좀 풀어줬다고 또 들이대신다? 웃기시네, 맹호도 보여준다고 꼬냥이가 꼬랑지 내릴 것 같냐?

"수작하고는…."

휙 돌아서는 등 뒤로 들려오는 웃음소리.

"아하하…. 거 참 이름 한 번 비싸네."

웃으라지, 꼬냥이가 굶는다고 풀을 뜯으랴, 당신은 조폭이고 난 민간인이야, 이거 왜이래. 사뿐사뿐 걸어가 쾅! 대문을 닫고 들어가…. 풀썩 쓰러졌다.

"아이고…. 어무이…. 내가 내 명에 못 살 듯 싶소."

후들거리는 다리와 도리질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벌레도 벌레지만 태어나 처음 보는 실사 벽화에 기절하지 않은 것이 다행인, 어쩔 수 없는 스물 셋의 여자아이였기 때문에.

우리, 친하게 지내는 것은 잠시 보류하기로 해. 감당 안돼.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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