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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ㆍ보수는 왼쪽과 오른쪽처럼 인식 편의상 사용하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왼쪽을 잘라버리면 오른쪽의 한쪽 끝이 왼쪽으로 된다. 이를 두고 원래는 가운데 였다든지 혹은 세계적인 기준으로 보면 오른쪽이었다고 시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또 실제 보통 사람들이 의미 부여하는 보수와 진보 개념은 정태인, 조희연, 홍성태식이 아니다. 단지 보수는 기존의 질서를 지키거나 가능한 점진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존재이고, 진보는 기존의 질서를 가능한 급진적으로 목적의식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존재이다. 세계적인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자칭 보수가 극우로 분류될지라도, 보수가 원래 상대적인 개념인 한 보수라고 사칭(?)해도 어쩔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부정적 뉘앙스가 강한 수구라는 개념으로 싸잡고 싶어하지만 개념이 사회적 약속인 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어쨌든 극우가 보수의 자리로 오면 세계적인 기준에서는 보수임에도 불구하고 중도나 진보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 사회의 경제사회 발전의 필요최소한이 심각하게 훼손된 시장경제, 민주주의, 법치주의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맞다면, 그리고 자칭 보수 세력이 이를 정상화시켜 낼 의사와 능력이 없다면 진보가 이를 떠맡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한국적 현실이다.

그 어느 나라 유권자보다 개명된 한국 유권자들은 자칭 타칭의 진보ㆍ보수 브랜드 때문에 정치적 지지나 반대를 바꾸지 않는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정치사회세력들의 실제적인 정치사회적 행태를 주시하고 여기서 파생된 이미지를 주요한 정치적 판단의 준거로 삼는다. 민노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민노당 강령을 보고 지지하지 않았던 것처럼….

분명한 것은 노무현 정부를 진짜 진보가 아닌 보수 개혁세력 혹은 자유주의적 개혁 세력이라고 싸잡아도, 노무현 정부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지지를 철회하고 진짜 진보를 자처하는 민노당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노무현 정부의 공과를 총체적으로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은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지만, 적어도 노무현 정부의 실패 혹은 낮은 지지율의 원인으로 진보 정책(FTA반대, 신자유주의 반대 등)을 확실히 밀어붙이지 못한 것을 지목한다면 참으로 현실을 모르는 책상물림들의 무의미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 원인

노무현 정부가 집권한 시기는 급격한 U자 곡선(1996~2005년)을 그리는 자살자 추이에서 보듯이 그 이전 수십년과는 다른, 서민의 생활상에 심대한 충격을 주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다. 정확히 말하면 무능한 정치 및 국가와 진보ㆍ보수 지식사회가 제대로 완충하고 관리하지 않아서 변화의 충격이 훨씬 증폭된 시기이다. 이는 성장률이 4%대라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물론 성장률이 6~7%대 였다면 변화의 충격은 다소는 완화 되었겠지만, 자살 대란을 초래할 정도의 물질적 정신적 피폐는 그리 큰 변화가 없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극히 저조한 지지율의 원인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국가와 사회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구조개혁(이는 기본적으로 좌파적 개혁과 우파적 개혁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을 해야 할 시기에, 거의 소프트웨어 개혁에만 매달린 것이 첫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이는 혁신ㆍ분권ㆍ자율ㆍ도덕적 신뢰의 이름하에 기존 질서의 생산성ㆍ안정성을 높이는 수준의 일이었다.

물론 시도때도 없는 좌파시비와 대책없는 딴지걸기를 일삼은 거대야당과 시장지배적 언론은 그나마 유효기간이 다한 질서 하에서의 생산성 향상조차도 가로 막았다고 할 수 있다. 이 결과가 바로 관료(마피아)공화국, 검찰공화국, 토건공화국, 재벌공화국, 노조공화국, 시장지배적 언론공화국등으로 표현되는 거대 이익집단의 잔치판과 대다수의 눈물판 인 것이다.

정보화, 민주화된 환경과 주요 언론의 지나친 폄하.왜곡은 이 모순 해소에 무능한 노무현 정부의 모습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이는 차기 정부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아무리 주요 언론이 우호적이라 할지라도 정보화ㆍ민주화ㆍ고학력화가 제공한 높은 요구ㆍ기대수준과 높은 비판의식과 풍부한 정보를 어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노무현 정부의 핵심 오류는 역사적 감각의 오류이다. 부차적으로 정의관과 통치기술(리더십)의 오류가 있다(이는 지면 관계상 상술할 수가 없다) 어쨌든 역사적 감각의 오류로 인해 노무현 정부는 대한민국이라는 환자가 외과 수술이 시급한 중환자인지 소화제와 안정제와 심리치료 정도만 하면 되는 경환자인지 구분하지 못하였다. 또한 한국 사회의 모순의 깊은 뿌리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였다.

즉 진보와 보수를 표방하는 주요 이익집단들이 도적떼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고, 지식사회 전반이 전문의 우물에 틀어 박혀 종합적 능력이 대단히 떨어지고, 부,인재,권위를 거머쥔 보수세력이 정치적 색맹에다 편집증 환자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하였기에 마키아벨리즘을 너무 배제하고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통치했던 것이다.

오류와 한계를 더 정밀하게 천착해야

몇 년이 걸려도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총체적으로 적확하게(가능한 정책 수준까지) 비판하는 것은 한국 사회를 위해서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기존 자칭 진보 학자들의 비판은 오류와 한계를 정밀하게 천착하지 않아 수준 미달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노무현 정부가 처한 한계적 상황을 너무나 가볍게 보고 있다. 단적으로 전효숙ㆍ국보법ㆍ사학법등을 계기로 벌어진 국회 본회의와 법사위 파행의 기록들을 너무나 가볍게 보고, 쓸만한 정책대안을 거의 생산하지 못한 진보 학자들의 무능과 무지를 너무 가볍게 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타령은 진보 지성을 무덤으로 데려가는 귀신

또 하나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를 신자유주의의 무차별 수용 탓으로 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자동차나 기차나 발달된 의술처럼 인간의 오랜 사회적 실천 경험과 지혜가 응집되어 나타난 경제사회 정책이자 일종의 '문명의 이기'이다. 과거 사회주의 경험이나 자유방임주의 경험이나 복지국가 경험을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고, 세계화ㆍ지식정보화ㆍ민주화등으로 요약되는 문명사적 전환이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총화한 경제사조인 것이다.

그래서 기업활동의 자유를 강조한다고 해서 자유방임주의의 폐악을 도외시하는 것도 아니고, 약자에 대한 보호장치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 한국에서는 신자유주의 광풍(?)속에서도 복지예산이 대폭 늘어나고, 사회적 안전망도 서구 기준으로 보면 보잘 것 없지만, 과거에 비해 많이 확충되었다. 요컨대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도 자동차나 기차나 의술처럼 인간의 경험과 지혜의 축적에 따라 진화되어 나가는 존재이다.

도로환경이나 생활습관이나 소득수준이나 관련 법규에 따라 선호하는 차들의 특징은 다르지만 엔진과 바퀴가 출현한 이상 모든 육상 운송수단은 기본적으로 이 핵심적인 문명의 이기를 기반으로 하여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엄청나게 다양하게 변신해 나간다. 이 처럼 각 나라의 산업발전단계나 사회역사적 특징이나 정치적 역관계 등에 따라 경제 제도, 정책은 다소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인간 일반의 속성이 동일하고 세계화, 지식정보화, 민주화 물결에 휘말린 시장환경을 공유하는 한 신자유주의가 국가의 경제.사회 운영의 기조가 될 수밖에 없다. '제3의 길'이니 '새로운 길'이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니 '실용주의'니 하는 다양한 변주곡이 존재할 수 있고, 존재해야 하지만 그 음악의 주제곡은 신자유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자칭 진보 학자들의 신자유주의 비판론은 '연대' '안정' '일자리' '양극화 해소'등 멋들어진 가치를 표방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어두운 밤거리를 밝히기 위해 태양을 붙들어매자'는 식의 시대착오적 비전에 입각해 있기에 어두운 거리를 밝히기 위해 가로등을 늘리고 방범 초소를 늘릴 수도 있는 사회적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서 소모하게 할 수 밖에 없다.

다시말해 신자유주의라는 개념틀로 한국 사회 문제를 진단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최대의 문제는, 문명사적 변화를 배경으로 국내외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권. 심판권에 의해 만들어진 (점차 커질 수밖에 없는)합리적 불평등과 개념없는 정치 및 국가와 몰염치한 이익집단에 의해 연출된 (결코 커지지 말아야 할) 불합리한 불평등을 구분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합리한 불평등과 필연적인 불안정등 자본주의적 폐악을 정조준해도 모자랄 진보 에너지를 엉뚱하게도 불평등과 불안정 전반을 공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신자유주의라는 개념틀은 국가의 규제ㆍ감독을 정교하게 하고, 불건전한 '러쉬'현상을 일으키는 불합리한 법ㆍ제도를 혁파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국가의 재정 효율등을 높이는데 사용해야 할 정치ㆍ사회적 자원을 엉뚱한데서 낭비하게 한다는 것이다.

불평등(차별)의 합리성 및 불가피성을 묻지 않고, 단지 지나친 격차(양극화)와 쏠림과 변동을 문제 삼는다면, 그리고 그 원인을 지나친 세계화, 자유화, 개방화에서 찾는다면, 더 나아가 미국유학파와 미국과 국제투기 자본의 음모에서 찾는다면, 세상의 모든 악을 사탄의 역사나 마녀의 음모에서 찾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간단명쾌하긴 하지만 제대로 된 대안이 나올 수 없고, 기껏해야 마녀 사냥판이나 연출하기 십상이다. 좌파평등주의 시비가 보수 지성을 무덤으로 데려가는 귀신이라면 신자유주의 시비는 진보 지성을 무덤으로 데려가는 귀신이 아닐까 한다.

솔직히 나는 한국 정치권과 지식사회가 아직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실패의 원인을 모른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를 무차별 수용해서? 좌파평등주의라서? 관료에게 많이 맡겨서? 코드 인사를 많이 해서? 리더십이 부족해서? 이게 과연 얼마나 타당성이 있을까? 제대로된 논의가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사회디자인 연구소 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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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전 김대호산업경영연구소 소장(2005) 전 대우자동차기술연구소 차장(2003) '노무현 이후-새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2009) '희망한국프로젝트'(공저)(백산서당, 2007) '진보와 보수를 넘어'(백산서당, 2007) '한386의 사상혁명'(시대정신, 2004)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사회평론,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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