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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철주,<인생이 그림같다>
ⓒ 생각의나무
막걸리 한 사발 죽 들이킨 것처럼 구수한 입담을 듣는다. 저자는 김 선배 어쩌고 하면서 탁 까놓고 말하겠다고 한다. 무엇에 대해 말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해서 알아보니, 그림이다.

그런데 이상한 말을 한다. 그림에 대해 아는 척하지 말고 마음껏 떠들라고 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그림에 대해 비평할 때는 고상하게, 되도록 말을 아끼며 필요한 부분만 언급해야 하는 것 이 상식이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괜한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아는 척 말고 마음껏 떠들라니. 도통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저자를 그림에 대해 뭘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미술 문외한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가만 들어보니 그게 아니다. 저자의 말에는 뼈가 있고, 교훈이 있다. 저자는 연습이 천재를 만드는 거나 무쇠가 두들겨 맞고 단련되는 거나 같은 발버둥 아니냐는 논리를 댄다. 가만 보니 저자도 그렇다.

그런데 이 사람 누구인가? 가만 알아보니 미술과 문화재 전문 출판사 학고재의 편집주간인 손철주다. 이쯤 되니 저자에 대한 비웃음이 싹 가시고 대신 호기심이 든다. 대체 이 사람이 바라보는 미술은 무엇인가? 손철주가 쓰는 미술이야기, <인생이 그림같다>는 그렇게 시작된다.

"인생이 그림 같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인생이 그림에서 나왔소. 그림이 인생에서 나왔소?" 묻지 마라. 그리운 것은 원리가 아니라 일리다. -책 서문 중.

@BRI@인생은 그림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생이 닮은 그 예술은 영원한 빛이나 한순간의 찬란함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모든 이에게 주목받는 명작이 아니다. 크게 주목받지 않아도 저마다 색깔과 빛이 있는 그림과 예술. 그것이 바로 손철주가 말하는 인생이고 예술이다.

저자가 말하는 예술은 한국의 예술과 서양의 예술을 넘나든다. 한국의 정선부터 러시아의 샤갈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시선은 자유롭고 분방하다. 그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예술관은 깊이 있고 예리하다.

동양이면 동양, 서양이면 서양 하는 식으로 전문가도 예술을 바라보는 범위가 대체로 나뉘져 있다. 하지만 저자는 동서양의 나뉨을 다시 하나로 묶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특이했던 점이 바로 동서양의 예술을 가로지르는 저자의 예리한 시선이었다.

그렇기에 저자는 우리나라의 풍경화와 서양의 풍경화 차이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차이를 설명해 준다. 우리의 풍경화가 자연 속에 동화되고자 했다면 서양의 풍경화는 인간을 드러내기 위한 배경에 지나지 않았다고 들려준다.

또한 동서양 초상화의 차이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우리나라의 초상화 '송인명 초상'(작자 미상)에서 송인명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웠다. 당시 높은 관직에 있던 그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다니 놀랍고 신기했다. 하지만 그 초상화 속에는 보는 이를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있었다.

겉을 보되 속을 꿰뚫는 조선 초상화가의 관찰력은 그들이 갈고 닦은 붓의 기량과 오차가 없다. 오로지 정신의 전달에 매달리는 장인 의식은 형식이 내용을 장악하는 귀한 작례를 펼쳐 보였다. 성형수술 하지 않는 얼굴, 그것이 피카소와 조선 초상화가의 차이다. -62쪽

이에 비해 서양의 초상화는 개인의 권위를 나타냈다. 추상화가 피카소가 그 옛날 스탈린 초상화를 추상적으로 그렸다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고초를 겪은 것을 생각해보면, 서양의 초상화에 새겨진 권위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옹기는 자기에 비해 자연에 훨씬 가깝다. 형태나 문양이 거들먹거리지 않는다. 문양도 기껏해야 솜씨 없는 난초인가 하면, 비뚤비뚤한 오리와 기러기다. 재료도 지천으로 널린 진흙을 퍼다 쓴다. -325쪽

그가 바라보는 예술은 비단 그림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사물에서도 예술성을 찾아낸다. 옹기, 다완, 기와는 그의 시선으로 새롭게 태어난 예술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볼품없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생활에 깃든 아름다운 미를 느낄 수 있는 것들. 저자는 그 사물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책에서 우리 예술에 대한 사랑과 서양 예술에 대한 경탄이 어우러진 저자의 글을 만나볼 수 있다. 글에 담긴, 예술에 대한 저자의 구수한 입담은 독자에게 인생같이 아름다운 예술에 대해 알게 해 줄 것이다. 인생이 그림 같음을 말하는 <인생이 그림 같다>는 한 인생이 닮아갈 만한 그림과 예술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인생이 그림 같다 - 미술에 홀린, 손철주 미셀러니

손철주 지음, 생각의나무(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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