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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빼어난 경치라 하여 '대전8경' 중 하나로 불리는 보문산(458m) 공원은 예전부터 대전 시민들의 쉼터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지리적인 요인과 교통 불편으로 관광객 수가 제자리걸음이다. 2000년대, 산중턱에 있는 놀이시설과 수영장이 경영난을 이유로 문을 닫으면서 관광객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지금 보문산 놀이시설과 수영장은 폐쇄된 채 흉물스럽게 남아있다. 또한 등산로 일대의 점집과 음식점의 난잡스런 풍경은 보는 이의 눈길을 찌푸리게 했다. 이에 대해 대전 시 당국과 관련 구청인 중구청은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에야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입법절차도 거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안의 발걸음 더디기만 하다. 방치된 대전 보문산, 그 실태를 현장 보고한다.


[현장르포] 방치된 대전 보문산 공원, 현장에 가다

▲ 몇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최근 음식점으로 바뀐 보문산 케이블카. 전선도 끊어져 영영 날지 못하는 새가 되어버렸다.
ⓒ 곽진성
인적 없는 장소에 찾아온 겨울의 한기는 유난히 쌀쌀했다. 10일, 17일, 18일 대전시 중구 대사동에 있는 보문산 공원을 찾았다. 10년 전만 해도 주말이면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보문산. 하지만 지금 이곳은 적요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이따금 보이는 등산객 외에는 사람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었다.

깊어진 겨울 추위와 씨름하며 등산로를 걸어갔다. 5분여쯤 걸으니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전선이 끊어진 케이블카다. 주변에 물으니 보문산 케이블카는 최근 몇 년 동안 고장이 난 채 버려졌다고 했다. 최근 고장 난 케이블카는 음식점으로 새로 단장했다. 관광객을 태우던 케이블카는 이제 영영 날지 못하는 새가 되어버렸다.

등산로 양옆으로 점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눈대중만으로도 그 수가 30~40여개에 달했다. 주변에 질서 없게 자리 잡은 음식점과 뒤섞여 등산로의 모습은 난잡스러웠다. 그런데 웬일인지, 정작 음식점이나 점집을 찾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보문산 등산로에서 음식점을 하는 A씨는 망하기 일보직전이라며 신세 한탄을 했다. 산에 등산객이외의 사람이 없으니, 장사가 되겠느냐는 말도 했다.

"장사요? 안돼요. 사람이 와야 장사가 되지. 이곳은 관광객이 없어요! 여기 식당들은 보문산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관광 상품을 팔던 곳들이 음식점으로 바꾼 것뿐이에요. 전부 망하기 일보 직전이에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고 점술관 같은 건물이 들어서다 보니, 주변 주택지의 집값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인근 부동산 업자는 "다른 지역은 (집값이) 잘도 오르는데 이곳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주변의 환경이 안 좋아지고 보문산의 관광객도 계속 줄어들다 보니 집값이 떨어지는 것 같다, 큰일이다"라고 했다.

▲ 음식점, 점집이 난잡스럽게 모여져 있는 보문산 등산길. 문제는 정작 손님이 없다는 것이다. 이곳 음식점들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 곽진성
손님은 없고 음식점과 점집만 즐비하게 늘어선 풍경을 뒤로 하고 보문산에 올라 보았다. 중턱에 올라가니 작은 휴게소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곳은 이미 영업이 중단된 채 버려져 있었다. 휴게소 컨테이너 입구는 내려진 철문에 굳게 닫혀 있었다.

그 아래로 나부러진 소주 병조각들과 방치된 자판기가 보였다. 아마 오랫동안 영업이 중단되었던 듯했다. 올라가는 도중 이렇게 영업을 중단한 휴게소 두서너 곳이 더 보였다.

계속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10분여쯤 오르니 드디어 보문산 놀이시설과 야외 수영장이 흉물스런 모습을 드러냈다. 영업이 중단된 놀이시설과 수영장 입구에는 굵은 자물쇠가 잠겨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철조망 사이로 보이는 그곳은 오랫동안 방치된 것으로 보였다. 주변에 물으니 놀이시설과 수영장은 이미 3년째 영업이 중단된 상태라고 했다.

놀이시설 뒤쪽으로 돌아가 보았다. 쓰레기들이 흩날려 있었다. 철문이 떨어져 나간 콘크리트 휴게실, 검은 색 때가 묻은 노란색 벤치만이 놀이시설을 지키고 있었다.

놀이시설 옆에서 10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이동균(77)씨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옛날에는 보문산이 이렇지 않았어. 관광객들도 참 많았고, 보문산도 활기가 돌았지. 그런데 이제 관광객들은 하나도 없어. 간혹 가다 등산객들만 와. 이렇게 된 게 다 놀이시설과 수영장이 중단되어서 그래. 개인업자가 연 곳인데, 영업을 중단하고 보상만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고."

이씨의 말에서는 시의 보문산 대책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몇 년 전에 방치된 보문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다고 해놓고 아직도 별 행동이 없어. 말보다 실천이 있었으면 좋겠어. 주변의 점집, 음식점도 규제해야 돼. 어디 저런 시설이 무분별하게 자리 잡았는데 보문산에 관광객들이 오고 싶은 마음이 들겠어?"

산 정상에 있는 보문산 전망대도 방치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전 아래를 굽어보던 전망대 망원경은 고장난지 오래였고,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과자를 집어먹던 비둘기조차 관광객이 오지 않자 전망대를 떠나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도둑도 극성이었다. 몇 달 전 보문산에 설치한 전깃줄 수백 미터가 잘려진 채 도난당한 사고가 일어났다. 보문산 관리 사무소에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보문산에는 재발 방지를 위해 도난 시 신고해 달라는 플래카드가 높게 걸려있었다.

"일단 플랜카드를 건 후 도난 사고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 또 도난사고가 일어날지 몰라 안심할 수 없다." 보문산 관리사무소 직원의 말이다.

방치된 보문산의 상황은 심각해 보인다. 중구 주민들은 시정을 요구하며 대전시청과 중구청에 여러 번 민원을 넣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고 하소연했다. 방치된 놀이시설과 수영장, 난삽한 주변 환경, 도둑까지 발생한 보문산은 대전의 치부로 전락하고 있었다.

아직도 입법 중인 보문산 살리기... 대책은 언제쯤?

보문산을 직접 관할하는 역대 대전 중구청장들은 선거 때마다 보문산 개발을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일명 '보문산 살리기' 계획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공약을 실행한 적은 거의 없었다.

2006년 당선된 이은권 대전 중구청장도 후보 시절 '보문산 살리기' 선거공약을 내걸고 다음과 같이 보문산 발전방향을 제시했다. "민자를 유치해 놀이시설과 수영장을 사계절 스키돔으로 리모델링하고 보문산 전망대를 보문타워로 바꾼다."

▲ 3년 넘게 문을 닫은 보문산 놀이시설과 수영장. 방치된 이 시설들을 바꾸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 곽진성
하지만 대전 시민들을 설레게 했던 이 장밋빛 공약은 지금 시작도 못한 채 답보 상태에 빠져있다. 그 이유를 묻기 위해 대전 광역시청과 대전 중구청에 문의해보았다.

대전광역시청 녹지과 B씨는 "방치되어 있는 보문산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며 놀이시설 철거 및 개발계획을 계획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철거 및 개발 진행단계에 묻는 물음에는 아직 입법 절차 중이라고 간략하게 대답했다.

관련 구청인 중구청에 문의해보았다. 녹지과 C씨에게서 보문산 개발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보문산 개발은 (중구)청장의 공약사업이기 때문에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다만 관련법이 도시자원공원에서 도시자원공원구역 관련 영역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에 따른 행정 절차 때문에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다."

법 개정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면 2010년 이후에나 보문산 개발 계획이 시작된다고 관련구청에서는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3년 후 행정적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보문산 개발이 일사천리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선 어떤 것을 개발하겠다는 비전이 없었다. 당초 스키돔으로 리모델링한다는 계획이 있었지만, 17일 중구청에 문의해 본 결과 스키돔만이 아니라 여러 각도로 검토해보고 있다고만 알려주었다. 그리고 세부적인 개발계획은 3년 후, 행정적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시작된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민자 유치 부분은 뒤로 미뤄둔 셈이다. 그렇기에 문제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다.

문제의 이면에는 고도제한법이 있다. 보문산에 "지상 3층(보문산 지역에 따라7층까지) 이상의 건물을 짓지 못한다"는 개발 제한법이다. 보문산 개발에서 고도제한법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민자유치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은 뻔한 일이다.

그렇기에 이은권 중구청장은 선거 공약에서 15층까지 고도제한법 완화를 추진한다고 했지만, 며칠 전 중구청에 문의한 결과 "법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 법에 맞춰서 민자를 유치하는 길밖에 없지 않느냐"고 밝혔다. 고도제한법이 있는데도 많은 민간자본이 들어올 것 같은가라고 묻자 "그것은 민간업체 쪽에서 알아서 할 문제"라고 답했다.

보문산은 단지 민자를 유치하겠다는 계획만 세워놓고 민간자본의 참여만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비전은 없고 행정 절차에 막히고 고도제한법에 쩔쩔매는 동안 보문산은 계속 방치될 우려가 있다. 더 이상 보문산은 대전의 명물이 아니었다. 대전시와 대전 중구청의 안일한 대책 속에서 애물단지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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