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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 시작 무렵 부슬비가 내리는 개골산의 모습.
ⓒ 박홍서

@BRI@봉래산, 풍악산, 개골산, 설봉산. 모두 금강산의 또 다른 이름들입니다. 금강이 봄의 금강산을 일컫는다면, 봉래, 풍악, 개골은 각각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금강산을 부르는 별칭이랍니다. 그런데 마지막 설봉산은 무엇일까요? 사실 앞의 이름들은 어디서건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설봉산이란 이름은 낯섭니다.

설봉산은 눈이 온 개골산, 즉 눈이 온 겨울 금강산을 부르는 말이랍니다. 그러니까 다른 계절과 달리 겨울에 운이 좋으면 개골산과 설봉산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지난 8∼9일 다녀온 짧은 금강산 산행 동안 그런 행운이 찾아 왔다는 게 신기할 뿐입니다.

첫째 날 구룡폭포로 산행을 시작할 때는 부슬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습니다. 날씨도 그다지 춥지 않았기 때문에 눈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산행 후 30분 정도가 지나자 비가 눈으로 바뀌더니 금새 함박눈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개골산은 설봉산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죠.

“아! 곱다 고와….”

앞서 가던 북쪽 안내원이 혼자말로 감탄사를 내뱉습니다. 금강산을 일터로 삼는 그녀도 그럴진대 처음 와보는 저 같은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안내원은 올 겨울 이렇게 금강산에 눈이 쌓인 것은 처음이랍니다.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설중 산행을 그것도 개골산이 설봉산으로 바뀌는 바로 그 순간에 해보다니 그저 자연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 개골산에서 막 설봉산으로 변신한 금강산
ⓒ 박홍서

함박눈을 맞으며 구룡폭포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앞에 펼쳐진 구룡폭포의 절경. 원래 상팔담으로 올라 구룡폭포로 물이 흘러나가는 여덟 개의 연못들을 감상해야 하나, 눈이 많이 쌓여 오르지 못하고 구룡폭포 감상에 만족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커다란 행운이었으니까요.

▲ 구룡폭포의 모습. 폭포 위로 여덟개의 연못(상팔담)이 있습니다.
ⓒ 박홍서

하산 길 내내 안내원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눕니다. 의외로 솔직하게 정치얘기를 꺼냅니다. 핵 문제며 6자 회담이며. 핵 문제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지 않았으면 하는 속내도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런 커다란 얘기들을 떠나 그녀의 말과 행동이 정말 순수하다는 게 동행 내내 느껴집니다.

다 내려와 사진을 찍자고 하니 왜 아까 산에서 얘기 안 했냐며 타박입니다. 비록 압구정 최신패션에 명품 장신구로 치장하지는 않았더라도 그 누구보다도 정감이 느껴졌던 건 남쪽 사내의 어설픈 감상이지 않을까 잠시 고민해봅니다. 다음 번 금강산에 오면 꼭 다시 만날 걸 약속하고 헤어집니다.

이튿날에는 만물상에 올랐습니다. 만 가지 형상을 하고 있다 해서 만물상이라고 한다지요. 그리고 이 만물상 산행은 설봉산의 진미를 보여준 정말 환상적인 산행이었습니다. 새벽에 내린 폭설로 개골산은 완전한 설봉산으로 변신해 있었으니까요. 산행 내내 이어진 눈꽃 나무들, 바위들, 그리고 날이 개며 저 멀리 구름 속에서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한 봉우리, 능선들. 제 인생에서 본 최고의 절경이 아닐까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 만물상 오름길. 원래 차로 오르는 길이나 폭설로 걸어 올랐습니다.
ⓒ 박홍서

▲ 하얗게 뒤덮힌 봉우리들과 눈꽃나무
ⓒ 박홍서

▲ 만물상의 귀면암.
ⓒ 박홍서

▲ 귀면암에서 올려다 본 만물상의 전경. 구름사이로 희미하지요.
ⓒ 박홍서

▲ 하산길에 올려다 본 만물상. 가운데 봉우리가 자태를 조금씩 드러내네요.
ⓒ 박홍서

우리는 왜 이런 아름다운 설봉산을 지난 반세기 동안 보지 못했을까 한편으로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요새 국내외 일각에서는 금강산 관광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요. 이 땅과 상관없는 미국사람들은 몰라도 세류에 휩쓸려 금강산 관광중단을 말하는 우리네 사람들은 꼭 한번 금강산에 가보길 감히 권합니다. 거창한 남북한 평화를 늘어놓기 전에 결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비무장 지대를 넘어오면서 수백 m도 되어 보이지 않는 남북간 바리케이드가 눈에 들어옵니다. 너무나 가깝습니다. 그리고 군기가 바짝 든 남북의 젊은 군인들. 설봉산의 감흥은 물러나고 이제 분단이 다시 현실이 되는 순간.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마침 대합실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옵니다.

“내일 새벽 남북한 축구는 아시안게임 4강 티켓을 놓고 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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