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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삼 스님 광주문화원 초청공연 소책자 표지
ⓒ 광주시문화원
한쪽 팔만으로 부는 대금, 그 대금을 연주하는 이삼 스님을 아는가? 원래 대금이란 악기는 국악기 가운데서도 배우기가 어렵다는 악기이다. 그런데 이 어려운 악기를 한 손으로 불 수 있도록 새로 만들고, 이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이삼 스님의 초청연주가 지난 12월 8일 저녁 6시 경기도 광주시 노인복지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스님은 자신이 부는 대금에 '여음적(餘音笛)'이란 이름을 붙였다. 여음적은 기본 대금을 한쪽 팔로도 연주할 수 있게 개량한 것인데 왼쪽 팔의 다섯 손가락만으로도 연주할 수 있게 서양 관악기들처럼 키(key)와 보조키를 붙여 만들어진 대금이다. '여음적', 넉넉한 소리라는 뜻일까?

@BRI@1980년 무형문화재 제20호 기능보유자 녹성 김성진 선생으로부터 대금을 배운 스님은 궁중 정악의 대가들에게 두루 공부하고, 85년 국악경연대회에 출전해 금상을 타기도 하는 등 활발한 연주활동을 통한 포교를 하던 중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로 인해 오른팔은 마비되고, 대금 연주의 희망은 사라졌지만 이 비극적 삶에 마침표를 찍고, 스님은 한쪽 팔로만 연주할 수 있는 대금과 그 연주법을 개발해낸 것이다.

스님은 2002년 여음적을 만든 뒤 대구시 국악협회 명인 초청 독주회, 국립국악원 예악당의 불우이웃 돕기 독주회를 열었고, 산사음악회에서도 연주했으며, 전통악보인 '대금 정악보'를 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스님이 연주하는 곡들은 민속악이 아닌 정악. 어디서 흔히 들을 수 없는 연주이다. 그런데 이 연주회는 대도시가 아닌 중소도시 광주에서 펼쳐졌다. 이는 광주문화원 이상복 원장의 광주에 전통문화를 꽃피우겠다는 의지와 광주에 사는 국립극장예술진흥회 최종민 회장이 합작으로 빚은 것이라고 한다. 역시 광주에 사는 이삼 스님과의 아름다운 향토 어울림이다.

▲ 이삼스님이 한쪽 팔만으로 연주하도록 만든 여음적
ⓒ 김영조
독주회는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최종민 교수(국립극장예술진흥회장)의 맛깔스럽고 깊이 있는 해설로 시작했다. 최 교수는 우리 문화, 그중 국악의 아름다움을 손에 잡히듯 얘기한다. 맨 처음 한범택 한가람예술단 단장의 학춤으로 시작했고, 이삼스님의 대금독주 '우조두거'가 이어진다. '우조두거'는 가곡을 바탕으로 기악곡으로 만든 것을 대금의 선율만 떼어내 연주하는 것이다.

이어서 국립국악원 정악 연주단 송인길 악장의 가야금과 함께 가야금˙대금 병주가 시작된다. 연주곡은 영산회상 9곡 가운데 '세령산', '가락덜이', '상현환입' 세곡이다. 이 병주는 점점을 연주하는 가야금과 선으로 점을 연결하며 시김새를 하여 멋을 표현하는 대금이 훌륭한 어울림을 이뤘다는 평을 받았다.

▲ 대금 독주를 하는 이삼 스님
ⓒ 김영조

▲ 송인길 악장과 이삼 스님의 가야금˙대금 병주
ⓒ 김영조
다음은 스님의 독주 평조회상 '상영산'이다. 이 '상영산'은 '유초신지곡'으로도 알려졌고, 국립국악원에서 그냥 '유초신'이라 부르며 대금독주로 많이 연주한다. 이 곡도 원래 합주 음악이지만 독주로 대금의 맛을 훌륭하게 표현해낸다.

잠시 특별한 순서가 있다. 스님의 대금 연주가 은은하게 들리는 가운데 소복수 시인이 "여음적에 부쳐"란 시낭송을 한다.

▲ 스님의 대금 소리와 함께 "여음적에 부쳐" 시낭독을 하는 소복수 시인
ⓒ 김영조
"가쁜 숨 안으로 다스려
결 고운 사금(砂金)같이 신성한 여백(餘白)
청음고절(淸音孤節)의 서늘한 고독
그대 그렇게
또 그렇게 오셔요.

긴 강을 거슬러
쉼표도 마침표도 없이
피안으로 띄우는 마지막 잎새
그대 여음적(餘音笛)은
우리들의 영원한 작별인가요.

영원한 만남인가요.

그대 지금
어디쯤 게시는가요."

이어서 스님의 독주 '삼삭대엽'이 연주된다. '삼삭대엽'도 역시 가곡을 바탕으로 하여 기악곡으로 만든 것을 대금곡만 빼내어 독주하는 것이다. 원래 가곡은 목소리로 표현하는 음악인데 이 가곡의 선율을 대금으로 연주하는 것이어서 무척 아름다운 연주라는 느낌을 받는다.

▲ (위) 대금, 가야금, 장구에 맞춰 가곡을 하는 이동규 선생 / (아래) 역시 가곡을 하는 강숙현 씨
ⓒ 김영조
다음은 가곡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스님의 여음적에 송인길 악장의 가야금 그리고 강숙현의 장구에 맞춰 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준보유자 이동규 선생의 가곡 '언락'을 듣는다. "벽사창이 어룬 어룬커늘 님만 여겨 펄떡 뛰어 나가보니 / 님은 아니 오고 명월이 만정헌데 벽오동 젖은 잎에 봉황이 와서……" 역시 5대를 이어온 가곡의 명인답게 높은 음역의 소리가 시원하게 그리고 숨 막히게 들린다.

이동규 선생에 이어 장구를 치던 '노래 앙상블 시가인' 대표인 강숙현 씨의 가곡 '우락'이 펼쳐진다. "바람은 지동치듯 불고 궂은 비는 붓듯이 온다. / 눈 정에 거룬 님을 판첩쳐서 만나자 허고 굳게 맹세하였건만 / 이 풍우 중에 제 어이오리 / 오기 곧 오량이면 연분인가 하노라" 다소곳이 앉은 아름다운 자태의 강숙현씨는 청아한 소리로 청중을 홀린다. 어떻게 앉은 자세로 높은 음역의 속 소리를 저렇게 거침없이 내는가?

마지막 연주로 스님의 대금독주 '청성자진 한잎'이 펼쳐진다. 이는 '요천순일지곡'이라고도 부르는데 가곡 '태평가'의 선율을 기악곡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보통 대금이나 단소로 연주한다. 정악의 아름다움을 독주로 가장 잘 보여준다는 곡이라는 말처럼 스님의 환상적인 독주는 청중을 꼼짝 못하게 압도한다.

▲ 청중의 머리 사이로 보이는 스님의 독주 모습
ⓒ 김영조

▲ 이삼 스님 광주문화원 초청공연 모습
ⓒ 김영조
크지 않은 무대, 모자란 음향과 조명시설은 출연자들을 조금씩 곤혹스럽게 했다. 머리 위에서 강하게 쏘이는 조명의 열은 대금 소리를 가끔 어색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것은 청중들이 스님의 여음적 소리를 감상하는데 결정적 방해는 되지 못했다.

노인복지회관 대강당을 가득 메운 광주 시민들은 숨소리조차도 아꼈다. 국악 그것도 어렵다는 정악을 들으며, 그들은 자리를 뜰 줄도 몰랐다. 작은 도시 광주는 예향, 그것도 전통의 예향임을 증명하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대도시에서도 보기 어려운 정악의 아름다움이 광주를 온통 감싸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연주회가 끝나고 나니 겨울비가 내린다. 지난해 국립국악원 독주회 때 폭우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가곡 '우락'을 노래해서 비가 오시는가보다고 하던 스님이 말이 생각난다. 오늘의 비도 강숙현 씨의 청아한 '우락' 때문일까? 비가 오시는 날 연주회에 온 청중들은 '우락'의 가사처럼 분명 연분일레라!

덧붙이는 글 | ※ 다음, 대자보, 뉴스프리즘에도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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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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