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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훈의 ‘백두산 이야기’를 맨 앞에 싣고 있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표지.
ⓒ 책세상
2006년 2월에 발행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에서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는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거룩한 발상지'라는 한국 사회의 통념에 대해 반기를 걸었다.

'백두산 이야기'라는 소제목 속에 담긴 그의 논지는, 백두산이 민족의 영산으로 추앙받게 된 것은 1927년 최남선의 <백두산 근참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다. 나아가 그는 한국의 백두산 신화는 1987년 10월 고은의 장편 서사시 '백두산'을 계기로 완성되었다고 주장하였다.

@BRI@<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에서 이영훈의 '백두산 이야기'가 갖는 비중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영훈은 이 책의 저자인 동시에 편집자다. 그리고 "왜 다시 해방 전후사인가"라는 그의 글은 이 책 1부에 있을 뿐만 아니라, 1부에서도 맨 앞에 있는 글이다. 또한 '백두산 이야기'는 "왜 다시 해방 전후사인가"라는 글의 첫 번째 소제목이다.

그러므로 '백두산 이야기'는 이영훈의 글뿐만 아니라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전체에서 가장 맨 앞에 있는 글이다. 이는 이영훈의 백두산 부정론이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이영훈의 백두산 부정론이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라는 책을 평가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영훈의 백두산 부정론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백두산이 한민족의 영산(靈山)으로 숭상된 것은 20세기부터'라는 논리를 수립하기 위하여 이영훈은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은 백두산을 숭상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는 이러한 주장을 입증하기 위하여 국사편찬위원회 소속 연구자들이 번역한 <조선시대 선비들의 백두산 답사기>(이하 '백두산 답사기')라는 책을 자료로 제시했다.

▲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서 첫 번째 이야기로 나오는 이영훈의 ‘백두산 이야기’.
ⓒ 김종성
<백두산 답사기>는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인 김지남·홍세태·박권·이의철·박종·서명응·이중하의 백두산 답사기를 번역한 책이다. 이들은 1712년 백두산정계비 건립 이후로부터 1885년까지 백두산을 답사한 인물들이다. 이중에서 김지남·박권은 백두산정계비 건립 당시 청나라 목극등(穆克登)의 접반사(接伴使)로 활동했으며, 이중하는 1885년에 조선-청나라 국경분쟁 당시 조선측 대표로 활약한 인물이다. 참고로, 접반사라는 것은 외국 사신을 영접하는 정삼품 이상의 임시직을 말한다.

'백두산 이야기'의 서두에서 이영훈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서명응이 붙인 큰 못의 이름은 태일택(太一澤)이었다. '태'는 태극(太極)을, '일'은 천일(天一)을 의미했다. 말하자면 삼라만상의 근원은 태극이요, 그 발현으로서 천지인(天地人)은 결국 하나라는 뜻이다. 그렇게 서명응은 성리학의 근본원리를 빌려 백두산 정상의 큰 못의 이름을 지었다. …… 그러한 그에게 오늘날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천지라고 부르는 그 못의 웅장함과 신비로움은 어디까지나 성리학적 태극의 오묘한 조화로 인식되었을 뿐이다. 그곳이 민족의 발상지라는, 오늘날 한민족이 공유하는 뜨거운 열정은 그에게서 찾을 수 없다."

▲ <조선시대 선비들의 백두산 답사기>. 이영훈이 백두산 허구론을 입증하기 위하여 제시한 책이다.
ⓒ 혜안
이 부분은 <백두산 답사기>에 있는 서명응(徐命膺, 이조판서·대제학 등 역임)의 '유백두산기'를 소재로 한 내용이다. 이영훈의 논리에 따르면, 서명응은 ▲백두산 천지에 대해 '태일택'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그 이름은 성리학적인 것이기 때문에 ▲'백두산은 민족의 발상지'라는 인식을 그에게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이영훈의 코멘트를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엄밀히 말해서, 위 코멘트는 백두산에 대한 언급이 아니다. 그것은 백두산에 있는 '천지'에 관한 것이다. 위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서명응은 백두산 천지에 대해 이름을 붙이고 있는 것이지 백두산 자체에 대해 이름을 붙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백두산과 천지가 각각 별개의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천지에 관한 이야기와 백두산에 관한 이야기를 혼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은 백두산을 민족의 성지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전혀 엉뚱한 결론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런데 서명응의 '유백두산기'를 실제로 읽어 보면, 이영훈의 주장과는 달리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백두산을 신성시하고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천지에 태일택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하루 전날, 서명응을 비롯한 조선 관리들은 백두산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때 서명응이 지은 2개의 제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우뚝한 백두산이 우리 강산에 진주하니, 아래 땅에 사는 사람들이 우러러 그 전모를 보고자 합니다. …… 산에 신령이 계시면 우리의 성의를 아실 것입니다. 구름과 안개를 거두고 장엄한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첫 번째 제문.

"우리나라의 백두산은 중국의 곤륜산과 같은데, 만약 해동의 편협한 땅에 사는 사람들이 한 번 백두산에 올라 그 웅대한 장관을 보지 못한다면, 그 한스러움이 어떠하겠습니까? …… 산신은 우리를 보우하셔서 해와 달이 밝게 비추어서 만상이 밝게 드러나고 산의 풍광을 모두 다 볼 수 있게 하십시오."-두 번째 제문.

첫 번째 제문에서는 "우뚝한 백두산이 우리 강산에 진주"한다고 하였고, 두 번째 제문에서는 "우리나라의 백두산은 중국의 곤륜산과 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백두산의 산신령을 상대로 백두산의 장엄한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보면, 서명응을 포함한 조선의 지식인들이 백두산을 영산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서명응의 '유백두산기'에서는 이처럼 서명응이 백두산을 신성시하고 있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영훈은 그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은 채로 서명응이 성리학적 관점에서 백두산 연못의 이름을 지었다는 점만을 근거로 '서명응은 백두산을 민족의 성지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점을 도출하였다.

그리고 비단 서명응뿐만 아니라 다른 조선 지식인들에게서도 백두산 영산론(靈山論)의 인식이 발견되고 있다. 이영훈이 논거로 제시한 <백두산 답사기>에 보면, 이 책의 저자들이 백두산을 신성시하고 있었음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의 맨 앞에 나오는 김지남의 '북정록'은 "백두산은 우리나라 여러 산 가운데 으뜸 산"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하고 박종의 '백두산유록'은 "백두산은 동국의 곤륜산"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맨 뒤에 있는 이중하의 '백두산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코멘트가 나온다.

"백두산은 …… 동남쪽으로는 우리나라 여러 산의 으뜸이 되며 북쪽으로는 영고, 오라 등지가 모두 그 지맥이 뻗어나간 곳이다. 옛 이름은 불함산(不咸山)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백두산이라 부른다."

이러한 점들은 <백두산 답사기>의 저자들이 백두산을 신성시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산을 우리 민족의 최고의 산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서명응이 백두산 연못에 성리학적 명칭을 붙였다 하여,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백두산을 민족의 성지로 인식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영훈은 서명응이 성리학적 관점에서 태일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장본인인 서명응은 민족적 관점에서 그런 이름을 지었다는 점이다. <백두산 답사기>의 298~299쪽에는 다음과 같은 서명응의 코멘트가 나온다.

"연못의 이름은 태일택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연못의 중심이 동북 산수의 한 가운데에 있어서 동북의 산천이 모두 이 연못에서 근본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극의 태자와 천일의 일자를 따가 그 연못의 이름을 정한 것이다."

이 표현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서명응은 백두산 천지가 자신이 살고 있는 땅의 중심이기 때문에 거기에 태일택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가 성리학적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가 성리학밖에 배운 게 없는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서명응이 천지에 대해 성리학적 이름을 붙인 것과,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백두산을 민족의 성지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은 개념상 상호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이영훈의 '백두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양자(兩者)가 같은 차원의 문제인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백두산 이야기'의 서두에 다음과 같은 서명응의 언급이 나온다.

"아직 이 하늘 아래 큰 연못의 이름이 없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름을 짓게 하고자 함이 아닌가. 이제 백두산은 우리나라에 속하지도 아니하고 저들의 나라에 속하지도 아니하니 우리와 같은 세상의 호사가들이 여기에 발길이 미치는 것은 천백 년이 지나도록 한두 명뿐이요, 만약 우리들이 지금 이름을 짓지 아니하면 이 산이 끝내 이름이 없을 터일세."

이 문장을 보면, 처음에는 백두산 연못에 이름이 없었음을 말하다가, 뒤에 가서는 "이 산이 끝내 이름이 없을 터일세"라고 하고 있다. 천지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했다가 백두산에 관한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이 문장을 읽게 되면, 백두산이 조선시대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산인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서명응이 실제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백두산 답사기> 294쪽을 보면, 이영훈은 서명응의 코멘트를 있는 그대로 인용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위에 인용된 2개의 문장은 본래 서로 떨어져 있는 문장이다. 이영훈은 서명응의 말을 임의로 조합한 것이다. 이영훈이 말줄임표(……)도 없이 두 문장을 조합했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는 천지의 문제와 백두산의 문제를 혼동할 수 있다.

▲ <조선시대 선비들의 백두산 답사기> 294쪽.
ⓒ 김종성
또 서명응은 백두산에 있는 여러 봉우리에 이름이 없는 것을 한탄하면서 "만약 우리가 지금 이 산들의 이름을 짓지 아니하면 이 산들의 이름이 끝내 없을 터일세"라고 하였는데, 이영훈은 '산들'을 '산'으로 바꿔서 "이 산이 끝내 이름이 없을 터일세"로 인용하였다. 서명응은 백두산의 봉우리들을 가리켜서 '산들'이라고 했는데, 이영훈은 그냥 '산'이라고 함으로써 서명응이 백두산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장치들로 인해 독자들은 천지의 문제와 백두산의 문제를 혼동할 수 있다. 또 조선시대 사람들이 천지에 대해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조선시대 사람들이 백두산을 모르고 살았던 것 같은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오해가 생길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이영훈의 글쓰기 기법 때문이다.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란?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은 <해방 전후사의 인식>으로 상징되는 기존 역사서의 좌편향적인 역사서술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로 올해 2월에 나온 책이다. 일제시대부터 1960년대까지 여러 영역을 포괄하는 30편 글과 편집위원 대담으로 구성됐다. 아오야마가쿠인대학 국제정치경제학 교수인 기무라 미쓰히코를 비롯 하버드대학 한국학 전공 교수 카터 J.에커트, 서울대 서양사 박지향 교수, 연세대 국문학 김철 교수 등이 저자로 참여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영훈은 조선시대 사람 서명응이 천지에 이름을 붙인 점을 근거로,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백두산이 민족의 영산으로 인식되지 않았다는 전혀 엉뚱한 결론을 도출하였다. 그런 결론을 도출한 뒤에 이영훈은 백두산을 구심적으로 한 민족의식과 민족사 역시 허구에 불과할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영훈은 서명응 외에 다른 사람들의 답사기도 인용하였지만, 그것들 역시 유사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점들은 이영훈의 식민지 근대화론과 '민족사 허물기'가 충분한 논리적 근거 없이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한 가지 증거가 될 것이다.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의 맨 앞에 나오는 이영훈의 '백두산 이야기'는 일부 지식인들의 '민족사 허물기' 작업이 안고 있는 논리적 약점을 보여 주는 한 가지 사례가 될 것이다. 이는 또한 지금 대대적인 이념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뉴라이트 지식인들의 학문 태도를 보여 주는 증거가 될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백두산을 민족의 영산으로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관념이 허구가 아니라, 백두산이 민족의 영산임을 부정하는 이영훈의 논리가 허구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백두산 영산론이 허구임을 입증하려면, 보다 충분한 근거의 제시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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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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