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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언니와 함께 밥 짓기를 맡았다. 내 생전 이렇게 많은 쌀을 씻어보는 건 처음이다. 쌀을 씻는다는 생각보다는 모래장난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네 번 정도 쌀을 씻은 다음 15분 정도 불려두었다. 어르신들은 진밥을 좋아하신다고 해서 평소보다 물도 약간 많이 부었다. 검은 쌀을 위에 넣고 밥을 하자 구수한 밥 냄새가 났다.
밥이 다 되었으니 이젠 밥을 담을 차례다. 몇 개까진 괜찮았는데 계속 하다 보니 슬슬 허리와 팔이 아파왔다. 그러나 시장하신 어르신들을 생각하며 힘을 냈다. 도시락을 받으신 어르신들께서 한 끼에 다 드시지 않고 아껴 두셨다가 두 끼, 심지어 세 끼까지 나눠드신다는 말을 듣고 도시락 통에 밥을 가득 담았다.
다행히 오전 중으로 도시락 싸는 일이 끝났다. 하지만 이날 일이 아직 다 끝난 건 아니다. 배달이 남았기 때문이다. 아현동, 마포, 용산 일대에 독거노인 분들이 많이 살고 계시지만 그중에서도 더 어려우신 어르신들에게 배달해 드렸다. 모든 독거노인 분들께 도시락을 배달해 드릴 수 없어 가슴 아팠다.
내게 배당된 도시락 개수는 3개였지만, 거리가 멀다보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첫 번째 도시락의 주인공은 라순분(84) 할머니. 라순분 할머니는 거의 평생 동안 배우자와 자녀 없이 혼자 살아오셨다고 했다. 도시락을 건네드리자 눈물을 글썽이시며 말씀하셨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할머니, 아직 식사 안 하셨죠? 아직 따뜻하니까 어서 들어가셔서 드세요." 할머니 손을 꼭 잡아드리고 그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두 번째 도시락의 주인공은 이상혜(84) 할머니. 지난달에도 내가 도시락을 전해드린 할머니다. 할머니께선 한 달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차갑고 어두운 방에서 혼자 누워계셨다. 몇 달 동안 청소를 못했는지 방이 지저분한데다 냄새도 났다. 할머니의 손은 차갑고 야위어 있었다. 할머니를 두고 다른 곳으로 배달하러 가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날이 추우니 방에 들어가 계시라고 말씀드려도 할머니는 불편한 몸을 이끄시고 손수 배웅해 주셨다.
마지막 주인공은 이초희(78) 할머니와 고순지(53)씨. 이초희 할머니께서는 장애가 있는 딸 고순지씨를 평생 수발하셨다고 한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귀찮게 왜 멀리까지 배달 왔느냐며 미안해 하신다. "할머니 별로 안 멀어요, 빨리 들어가서 식사하세요! 다음 달에도 또 올게요!"
아침부터 일어나서 밥 짓고 도시락 싸고 배달까지 한 탓에 몸은 피곤했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러나 더 많은 도시락을 만들어서 노인 분들께 배달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자원봉사자들이 5000원씩 모으고 후원금도 받아서 식재료를 구입하고 있지만,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고 자원봉사자 수도 적다. 도시락 개수를 많이 늘리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주위의 모든 독거노인 분들께 사랑의 도시락을 전해드리기 위해서는 앞으로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나부터 작은 힘을 보탠다면 언젠가 그런 날이 꼭 올 것이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사랑의 도시락은 매달 넷째주 토요일에 전해집니다. 서울 지역(효창동, 양천구, 구로구)뿐 아니라 대전과 광주에서도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