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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도민일보 11월 23일자 사회면.
ⓒ 윤성효

한미FTA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술을 먹은 행위를 문제 삼은 보도에 대해 노동자·농민 단체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경남도민일보>는 22일 창원시청 광장에서 한미FTA 저지 경남도민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한미FTA 저지 경남도민 총궐기대회'와 관련해 다음 날인 23일 '술에 취한 집회 참가자 FTA 반대 공허한 외침'이란 제목으로 사회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경남도민일보>는 기사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술은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인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술에 취한 것으로 보이는 집회 참가자들이 던진 돌이나 물병에 취재 중인 기자가 맞아 물의를 빚고 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집회 행렬이 다시 자리를 잡은 3~4분 뒤 '취재완장'을 차고 있던 해당 기자에게 다시 물병이 날아왔다. 얼굴 장면으로 날아든 물병에 관자놀이를 맞은 기자는 안경이 깨지고 그 자리에서 기절해 쓰러졌다"고 밝혔다.

이날 경남도청 앞 마당에서 열린 마무리 집회에서는 경찰이 시위현장 체증을 위해 사진촬영을 하자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에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측에서 경찰쪽으로 물병이 날아왔고 경찰 뒤편에 있던 <경남도민일보> 사진기자가 물병을 피하다 옆으로 넘어졌다. 이 사진기자는 병원에 후송되어 검사를 받기도 했다.

이 기사에 대해 민주노총 경남본부와 전농 부경연맹 간부들은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24일 '<경남도민일보>는 농민·노동자의 절박한 절규가 술 주정으로 들리는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했다.

이 단체들은 논평에서 "추운 날씨에 몸을 녹이기 위한 한 모금의 술로 그들의 처절한 분노가 도매금으로 넘어가야 하는가? 뼈골이 쑤셔 들판에서 일을 하다가도 아픔을 잊기 위해 한 잔 술을 했다고 그 늙은 농민들의 고통과 절망, 분노가 보이지 않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약자를 위한 신문, 도민주주 신문이라는 기대가 컸기에 배신감도 크다"며 "총보다 강하다는 펜이 후빈 가슴은 쓰리기만 하다"고 밝혔다. 이 단체들은 또 "이런 비판을 하는 것은 아직도 <경남도민일보>에 대한 애정 어린 기대가 있기 때문"이라며 "<경남도민일보>는 '지방조선일보'라는 오명이 붙기 전에 뼈아픈 반성과 상처 입은 노동자·농민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 경남본부, <경남도민일보> 취재 거부

24일 오후 민주노총 경남본부 강당에서는 '한미FTA 저지 경남도민운동본부'가 향후 투쟁 일정을 밝히는 기자회견이 열렸지만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경남도민일보> 기자의 취재를 거부했다.

이흥석 민주노총 경남본부장은 "22일 집회는 매도 당할 만큼은 아니었고, 경찰과 협의 하에 이루어진 집회였다"면서 "경남도민운동본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오늘 <경남도민일보> 기자의 취재를 거부한다"고 말했다.

한병석 전농 부경연맹 의장은 "22일 집회와 관련해 일부 언론에서 농민들의 정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농민들이 술을 드신 것은 사실이나 집회장에 왔기에 먹은 게 아니고, 농민들은 들에 가거나 집에 있거나 늘 술과 생활하는데, 그 날도 평소에 하던 행동을 그대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부 언론에서 연세 많으신 농민들을 농민조직, 즉 농민회에서 억지로 모셔와 폭력을 유도했다는 식으로 보도를 하는데, 농민들은 자의적으로 집회에 참석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남도민일보> "절박한 심정은 알지만 …"

한편 <경남도민일보> 기자는 24일자 신문에 '절박한 심정은 알지만…'이란 제목의 취재노트를 통해 견해를 밝혔다.

취재노트에서는 "하루종일 이 기사로 적지 않은 항의전화를 받았고,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을 침소봉대해 집회의 전체 의미를 부정하고 농민을 매도했다는 게 항의 요지였다"면서 "아무리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집회참가자의 돌발행동으로 불상사가 발생할 경우, 반FTA 투쟁 전반이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또 "다행히 22일 집회에서 1.5리터 물병에 머리를 맞고 실신한 기자는 안경이 깨진 것 외에 큰 부상은 없었다"면서 "하지만 집회 현장에 등장한 술은 그보다 더한 사고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많은 인원과 비용을 들여 집회를 여는 이유는 정부에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보다 많은 사람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함이다"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널리 알리기 위해 취재 중인 기자에게 물병을 집어던지는 행위는 집회의 목적에도 맞지 않다"고 밝혔다.

끝으로 "하지만 그 기사로 인해 벼랑 끝에 몰린 농민들의 울분과 대다수 집회참가자들의 선의가 묻혀버린 것처럼 읽혔다면, 그 또한 기자의 의도가 잘못 전달된 것"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농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제대로 전달하는 데 한층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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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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