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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본회의장 풍경.
ⓒ 오마이뉴스 이종호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1561~1626)은 인간의 앎에는 4가지 우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 4가지 우상을 우리의 지식에서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는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없고, 따라서 인류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 4가지 우상은 각각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특히 정치판은 이러한 우상이 지배하는 사회다. 우상이 타파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점점 희망이 없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러한 우상의 지배는 정파를 가리지 않지만, 특히 '반노무현 = 집권'이라는 우상숭배에 사로잡힌 한나라당이 더 심한 편이다.

베이컨의 4가지 우상

첫째로, 종족의 우상은 인간이라는 종족 그 자체에 장치되어 있는 우상으로, 인간이라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생겨난다고 한다. 베이컨은 우리의 감각이 울퉁불퉁한 거울과 같을 수 있다고 했다. 엉터리 거울은 사물을 엉터리로 비춘다. 또한 종족의 우상에 갇히면 우리는 우리 종족이 믿고 싶어 하는 것만 믿으려고 한다.

오늘날 우리 정치판에는 정당이라는 종족이 지배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이라는 종족은 무척이나 결속력이 강하고 종족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 자신의 종족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판단한다. 예를 들면 1가구2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시키고 종부세 기준을 9억원으로 올리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또 전효숙 후보자가 헌재소장이 되면 헌법이 파괴된다고 굳게 믿는다.

반면 정부나 청와대는 울퉁불퉁한 거울을 보며 현재의 아파트 값 폭등은 공급부족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신도시를 발표하고, 그 때문에 아파트 값이 폭등하니 아직도 공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또 신도시를 더 만들려고 한다. 이제 아파트 값 때문에 우리나라가 '구역별 신분사회'가 되어가고 있는데 아직도 시장 원리라는 우상을 받들고 있다.

둘째로, 동굴의 우상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비롯된 것인데, 개인의 좁은 소견에서 빚어지는 착각들, 개인의 호오나 편견, 만족이 빚어내는 우상을 말하는 것이라 한다. 어떤 동굴에 죄수들이 갇혀있는데 이 죄수들은 자세와 목이 고정되어 있어 어두운 벽만 쳐다보게 되어있다. 그래서 뒤쪽의 불빛에 반사된 다른 죄수들의 그림자만 보고 살게 되어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우물 안 개구리를 말하는 것이다.

14일 오후 국회 교육·사회·문화 대정부질문이 끝나자마자 한나라당 의원 20여명이 단상으로 올라가 의장석을 점거한 뒤, '헌법파괴 전효숙 헌재소장 원천무효'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농성에 들어갔다고 한다.

한나라당의 모든 시각과 안목은 오로지 반노무현이라는 그림자만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 전효숙 헌재소장 지명자를 반대하는 사실상 유일한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헌재소장이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 하다.

한나라당 사람들의 자세와 목은 오로지 반노무현 정권이라는 벽면에 고정되어 있다. 지나친 정쟁이 성난 민심의 역풍을 초래한다는 것은 뒤편의 실체가 아니라 앞쪽의 일렁거리는 그림자만 봐서는 모를 일일 것이다.

오로지 반노무현이라는 동굴의 우상

▲ 한나라당이 14일 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 동의안 상정 저지를 위해 국회 의장석을 점거했다.
ⓒ 오마이뉴스 박정호

셋째로, 시장의 우상은 인간의 언어가 빚어내는 우상을 뜻한다. 수많은 말들이 오가지만, 언어가 교류되는 과정에서 개념적 약속이 틀리거나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애매한 말이 사용됨에 따라 파생되는 혼란들이다. 한마디로 시장판에서 장사꾼들의 입씨름이다.

"노무현 정부만큼 여성성을 욕보이고, 반여성적 정부는 없다."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13일 한 말이다. 최초로 여성 총리를 임명하고, 최초로 여성 헌재소장을 지명한 정부가 반여성적인 정부인지, 전효숙 지명자를 정권의 '꼭두각시'로 비난하고 한명숙 총리를 '사죄 전문 총리'로 지칭한 전여옥 의원이 여성상을 욕보인 것인지 잘 분간이 안 간다. 전여옥 의원이 국회의원이 되어 그 동안 해온 발언들을 보면 그가 전형적으로 시장의 우상에 사로잡힌 인물이 아닐까 여겨진다.

여당이나 야당, 정부, 청와대 할 것 없이 서로 공격하고 상처 주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다. 서로의 언어는 교류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날아가 꽂히기만 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화는 없고 시장판의 '악다구니'만 남았다. 이런 정치판에서 전여옥 의원같은 탈여성적 정치인이 하나의 우상으로 자리 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극장의 우상은 나보다 앞서서 성립한 철학체계의 도그마에 속박이 되어 나의 판단을 그르치게 되는 그러한 우상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볼 때 그것이 만들어 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사실인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된다.

성추행 범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최연희 의원이 알고 보니 지역구에서는 성폭력상담소 이사장이었다는 사실, "부동산 불로소득은 철저히 세금으로 환수해야 한다"며 "지금은 집 사지 마라"고 한 청와대 이백만 홍보수석이 사실은 강남 재테크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올렸다는 사실 등이 우리가 극장의 우상에 현혹되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중동의 세금폭탄론, 극장의 우상

또한 우리가 언론이라는 권위를 인정하여 '조중동'의 세금 폭탄론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극장의 우상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일년에 버는 소득이 면세점 이하이고 가진 집이 중과세의 대상에 들지도 않는 대다수의 서민들이 마치 자기에게 이런 폭탄이 떨어질 것처럼 믿는 것은 다 이런 우상을 섬기기 때문이다.

물론 굳이 먼 나라의 철학자 베이컨을 들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섬기는 우상들은 이 밖에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지역주의 우상'이다. 그리고 요즘 가장 심각한 것이 '물신주의 우상'이다. 그런데 점점 우리 사회는 이런 우상들을 더욱 숭배하는 사회로 가고 있다.

그런데 나도 사실 하나의 우상을 가지고 있다. 바로 '국회를 없애면 모든 게 잘 될 것이다'라는 생각이다. 우리 국회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많다. 차라리 인터넷으로 직접 정치를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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