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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제가 살고 있는 20층 짜리 아파트의 모습입니다.
ⓒ 김귀현
지난 봄, 어머니 다리가 편찮으셔서 학교를 휴학하고 집에서 어머니를 간호했습니다. 이 기간은 제 인생의 유일한 백수 기간이었습니다. ‘재수’없이 한번에 대학 입학, 그리고 2학기 기말 고사가 끝나고 일주일 후, 바로 입대, 제대 후 칼 복학까지… 제 인생에는 쉼표가 없었습니다.

비록 어머니 건강상의 문제로 학교를 쉬는 것이었지만, 집에서 백수생활을 하며 자그마한 여유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집에만 있으면서 알게 된 것은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이 자주 집에 방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많이 응대한 사람은 바로 J일보의 영업사원입니다. 최신형 자전거에 10만원어치 백화점 상품권 그리고 1년간 구독료를 안 받겠다는데, J일보를 정말 싫어하는데도 마음이 흔들린 적이 많았습니다. 구독률 1위의 신문,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손님은 교회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올칼라 전단지를 주면서 이래저래 설득을 하는데, 처음에는 많이 귀찮았지만 이 후에는 1시간씩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신념이 강한 사람과의 토론 스킬을 확실히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옆집 아주머니가 영업 사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낯선 여자 분께서 대낮에 저희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심심하던 차에 깊은 토론이나 한번 해볼까 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문을 열자 그 여자 분은 갑자기 “아 잠깐만요” 하며 걸려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자 분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작은 쇼핑백, 또 무언가 팔러 오신 분이라는 판단이 들었고, ‘물건 팔러 오셔서 기다리라고 하는 건 무슨 경우인가’ 하는 생각에 살짝 기분 나쁠 뻔했습니다.

그 분의 통화는 길어졌고, 기다림에 지쳐, 그냥 문을 닫으려는 순간, “잠깐만요” 하며 그 여자 분은 닫히는 문을 손으로 당기셨습니다. 마침 통화를 마치자마자 친근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이 집 큰아들이죠? 와, 많이 컸네. 고등학생일 때 처음 봤는데.”

‘누구신데, 날 알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난 분명 모르는 분인데…’ 하고 생각하던 찰나, 그 여자 분이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옆집 아줌마예요.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되었어요. 8년간 정들었는데 아쉽네요. 이거 어머니께 전해주세요.”

쇼핑백에는 롤케이크가 하나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옆집 아줌마도 몰라본 것입니다. ‘어떻게 8년간 옆집에 살고 있는 사람을 모를 수 있느냐!’ 하시는 분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 정말 몰랐습니다.

▲ 우리집 베란다에서 본 옆집 아파트의 모습. 호수가 있어 경관이 좋습니다.
ⓒ 김귀현

8년 전 이 아파트로 이사왔을때 저는 고등학생이었고, 옆집에는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살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옆집 색시 아가씨 같이 예쁘더라” 고 하셨습니다. 이사 왔다고 인사를 할 때 얼굴을 보니 정말 예쁘장하게 생긴 누나였습니다.

이후, 대학 서울로 가게 되어서 수원 집에 있던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다녀오고 또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그러는 사이 제게 이웃사촌이란 존재가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8년이 지난 지금 저는 군대도 다녀온 아저씨가 되었고, 옆집 누나는 아이가 둘이나 있는 아주머니가 되었습니다.

케이크를 손에 들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럼 잘 있어요” 하며 그 옆집 누나, 아니 옆집 아주머니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순간 너무 죄송하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도 몰라본 제 자신이 한심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전에 살던 아파트에서의 이웃들이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5층짜리 아파트의 추억, “보고싶다 친구야”

5층짜리 계단식 아파트에 살았던 저는 소년 시절, 동네 친구들과 노는 것이 제일 좋았습니다. 5층에 살았던 저는 내려가면서 4층부터 한 명씩 불러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말뚝박기, 다방구, 얼음땡을 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습니다.

주말에는 한 집씩 돌아가면서 점심을 준비했습니다. 저는 4층에서 먹을 때가 가장 좋았습니다. 저보다 1살 많았던 중학생 누나가 아주 예뻤기 때문입니다.

일요일 아침이면 아파트 물청소를 했습니다. 이때는 일체 열외 없이 전 주민이 다 나와서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했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이때도 서로 물 뿌리면서 즐겁게 놀았습니다. 아직도 4층의 현아누나, 현정이, 3층의 수현이형, 기태, 2층의 동엽이가 다 생각납니다. 아주머니, 아저씨들도 다 생각나구요.

그리고 지금의 20층짜리 아파트로 이사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옆집에도 누가 사는지 모릅니다. 분명 5층짜리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살 텐데 한 명도 모르겠습니다.

8년만에 그녀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습니다

▲ 엘리베이터를 모르는 이웃과 타는 함께 타는 것은 곤욕이었습니다.
ⓒ 김귀현

8년 전, 이사를 처음 왔을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여고생을 한 명 보았습니다. 동년배로 보이는 그 여고생은 제가 찾던, 한마디로 제 이상형에 근접한 외모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뽀얀 피부에 긴 생머리, 그리고 단정한 교복, 그녀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있을 땐 제 가슴이 떨려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13층, 그녀는 14층에서 내렸습니다.

등교시간에 잠깐이나마 마주칠까 집에서 나올 때마다 머리에 물도 묻히고, 교복 넥타이도 더 바짝 조였습니다. 유행하던 쇠무 구두를 신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습니다. 문이 열릴 때마다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녀가 타고 있을까 하는 설레임에 매일 아침이 즐거웠습니다. 그녀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을 때의 그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습니다. 내성적이던 성격이 한몫 했습니다. 예쁜 여자에게 특히 약했던 저는 한마디도, 인사조차도 못해봤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8년이 지난 지금, 엘리베이터를 타면 누가 타던 눈인사도 간신히 건넬 정도로 저는 이웃들과 무심히 지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탄다면 애꿎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언제 올라가나’ 층수 올라가는 계기판(?)만 죽어라 쳐다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즈음에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엘리베이터에는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문이 닫히는 순간 누군가가 뛰어와 엘리베이터를 잡았습니다.

문이 스르륵 열리자 저는 타려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심장이 둥둥 뛰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의 그 8년 전 여고생이었습니다. 이제 여고생 그녀는 숙녀가 되었습니다. 예쁜 모습은 그대로였습니다.

▲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던 시간 1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김귀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한층 한층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8년만에 만난 그녀가 무척이 반가웠지만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녀와 저는 여태껏 한마디도 나눠보지 못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탓에, 그리고 8년 전의 그 감정 덕에, 이젠 거의 철면피가 되어버린 제가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습니다.

침묵의 시간이 흐르던 순간 밑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하나 올라왔습니다. “안녕하세요!” 그 꼬마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는 우리 둘에게 큰 목소리로 인사했습니다. 우린 작은 목소리로 “안녕~” 하며 답해 줬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왜 둘이는 인사도 안 해요? 이웃끼리는 인사해야 해요.”

그 아이 말대로 우리는 “안녕하세요”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서로 작은 미소를 띠었습니다. 꼬마 아이 덕에 드디어 8년만에 그녀와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 아이는 7층에서 내렸고, 이젠 우리 둘만 남았습니다.

“14층 사시죠?” 이것이 내가 한 말의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13층에서 내렸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치 8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애틋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음에 그 꼬마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사줘야겠습니다.

얼마 전 어머니께서 14층의 그녀가 곧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결혼해서 출가하기 전에 인사 한번 나눴다는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8년 전의 제 마음,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오지만, 엘리베이터에서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순수한 마음만은 영원히 간직하고 싶습니다.

저는 요즘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참 잘합니다. 모르는 분이어도 인사를 합니다. 조금씩 이웃의 얼굴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몇 층에 누가 사는지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이젠 엘리베이터를 타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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