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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에 따라 생각의 깊이도 달라진다

책방에 갈 때면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습관처럼 여행서를 뒤적거리게 된다. 그러나 책방의 한쪽 서가를 넘치도록 채우고 있는 여행서를 대충 살피다 보면 그저 그렇고 그런 내용에 금세 실망하고 만다.

느리게 산다는 건 결코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음미하면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어딘가를 여행할 때 어지간한 거리라면 그냥 걷는 쪽을 택하게 된다. 걷다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과 사물들을 온몸으로 느끼고 음미할 수 있어 좋다.

가끔 자치단체들이 주관하는 팸투어에 초청이라도 받아 가게 되면 유명한 여행작가들을 만나는 기회가 생긴다. 평소 그들이 쓴 여행기를 읽으면서 "저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 맛깔나게 여행기를 잘 쓸까?"라고 감탄했던 처지다보니 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보고 베우려고 애쓴다. 그 결과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 발견한 사실이 하나 있다.

여행작가들을 두 부류로 나누는 게 가능하다면 바다를 주로 소개하는 사람과 산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겠다. 그분들의 글을 읽다보면 대체로 바다를 주로 소개하는 사람의 글보다는 산을 주로 소개하는 사람의 글이 훨씬 윤기 있고 깊이가 있다는 걸 느낀다.

나는 그 미묘한 차이가 '차량여행'과 '도보여행'이라는 공간 이동 수단의 차이에서 오는 거라고 믿는다. 바다 여행은 차량만으로도 다녀올 수 있는, 별로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되는 여행이다. 그러나 산은 걷지 않고는 결코 오를 수 없다.

산을 오르게 되면 눈앞에 경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에 따라 생각도 곁들여 시시각각 파노라마처럼 전개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자연히 주로 바다에 대해 쓰는 여행작가보다 산을 주로 쓰는 작가의 글이 훨씬 깊이를 갖게 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나는 차량으로 하는 여행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힘들게 발품을 팔아야만 하는 도보여행기에 유독 관심을 갖게 된다.

최근 내가 흥미진진하게 읽은 두 가지 도보 여행기가 있다. 한 권은 조선시대 선비 정시한이 쓴 <산중일기>라는 책이며 다른 한 권의 책은 베르나르 올리비에라는 프랑스 사람이 쓴 <나는 걷는다 1,2,3>권이다.

3년 동안 전국의 사찰 300여 곳을 여행하다

▲ 책 표지.
ⓒ 도서출판 혜안
정시한(1625~1707)이 쓴 <산중일기>는 햇수로 치면 3년, 개월 수로 따지면 22개월, 총 600일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전국의 사찰을 여행했던 기록이다.

<우담선생문집> 19∼20권에 수록되어 있는 이 일기 속에서 정시한은 1686년(숙종 12) 3월 13일에 강원도 원주 본가를 출발하여 청주 공림사를 거쳐 속리산 법주사 등 강원, 경상, 전라, 충청 등 각 도의 명산과 고찰을 돌아보고 여행지 근처에 있는 친척집까지 두루 방문한 다음 1688년 9월 19일 원주 대야의 본가로 돌아올 때까지의 일을 일기식으로 상세하게 기록했다.

기행은 1686년~1688년까지의 첫 번째 시기와 1689년~1694년까지의 두 번째 시기로 나누어 이뤄지는데 <산중일기>는 첫 번째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평지를 다닐 때는 노새나 말을 타기도 했겠지만 산속 깊이 자리한 사찰을 오를 때는 도보로 다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니 62살이라는 노구에 얼마나 힘들었을 것인지를 능히 상상할 수 있다. 그의 일기 속에 유난히 "온힘을 다하여 산에 올라갔다"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산중일기>의 저자 우담 정시한은 자는 군익, 호는 우담이다. 퇴계 이황의 계승자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여러 차례 관직을 제수 받았지만 평생 동안 단 한차례도 벼슬을 하지 않는 등 정치판과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세상이 바르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는 결코 이를 좌시하지 않았다.

1696년 숙종이 희빈 장씨의 소생을 원자로 책봉하려하자 '만인소'를 올리기도 했으며 서인을 몰아내고 남인이 집권했던 기사환국 때는 그 자신이 남인에 속해 있으면서도 서인 계열인 인현황후의 폐위를 잘못이라고 간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던 올곧은 선비였다.

유교를 숭상하는 선비가 숭유억불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조선 사회에서 그것도 예순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그가 그렇게 오랫동안 사찰여행에 매달린 이유는 무엇일까.

내 나름대로 그 까닭을 유추해보자면 노년에 힘겨운 사찰 순례를 시작하는 데는 부모를 여윈 슬픔을 추스르기 위한 게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그의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부터 순례길에 오르기 때문이다. 아니면 진작부터 마음속에 원대한 여행 계획을 품고 있다가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고 나자 비로소 실행에 옮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 쓰여 졌던 간에 <산중일기>는 옛 사찰의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가치 있는 책이다. 석굴암에 대한 묘사를 예를 들면.

석문은 돌을 무지개처럼 쌓아 올렸으며 그 가운데에 커다란 석불상이 마치 살아 있는 듯 생생히 모셔져 있다. 좌대석도 바르고 고르게 되어 있어 그 기이한 기교가 돋보인다. 굴 위에는 뚜껑돌과 여러 돌들이 올려져 있는데 바르고 깔끔하여 기울어지거나 흠이 있는 곳이 하나도 없다. 불상들이 살아있는 듯 열을 지어 있다. 참으로 기괴하여 그 모습을 말로 다 할 수 없다. 이런 가관은 보기 드물다. - <산중일기> 421쪽

석굴암뿐 아니라 골굴암 등 경주 남산 일대의 암자들의 풍경이라든가 속리산 법주사 근처의 암자 풍경 등 3년 동안 답사한 사찰 300여 개가 등장한다. 노정에서 만났던 스님의 숫자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300년의 시공을 넘어 옛 사찰의 생긴 모습이나 분위기, 자신이 만났던 스님들의 이름과 성격, 특징까지 꼼꼼하게 기록해 놓은 덕분에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옛 절의 고즈넉함을 맛보고 더 나아가서는 거기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향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기쁨을 누린다.

상상할 수 있는, 그러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긴 여행

▲ 책 표지.
ⓒ 효형출판
베르나르 올리비에(Bernard Ollivier. 1938~)가 쓴 여행기 <나는 걷는다 1,2,3>은 그가 1999년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4년간(1099일)에 걸쳐 실크로드 1만2000㎞를 걸어서 여행하고 나서 쓴 3권의 여행기다. 그는 우담 정시한 선생 보다 한 살 늦은 63세에 실크로드 여행을 시작했다.

프랑스 망슈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를 그만둔 뒤에 외판원과 웨이터, 노동자 등으로 일하다가 1964년 독학으로 바칼로레아에 합격하고 CFJ(프랑스 기자협회의 공인을 받은 저널리즘 부분의 그랑제콜)를 졸업했다.

그리고 '르 피가로' 등 신문과 잡지사에서 30여 년 동안 기자로 있다가 은퇴한 그는 터키를 횡단해서 이란 국경에 이르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 다음 이란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까지 걷고 마지막엔 마침내 눈 덮인 파미르와 아직까지도 천일야화 시대와 같은 생활상을 볼 수 있는 도시 카스를 거쳐 중국 시안까지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열렬한 독서광이라고 한다. 그가 실크로드 여행을 시작한 것은 역사 분야를 탐독했던 독서의 결과였다. 그는 동양에 진 빚을 갚는 심정으로 1999년부터 4년간에 걸쳐 봄부터 가을까지 기간을 정해서 단 1km라도 빼먹지 않고 걸어서 실크로드를 여행했다.

마르코 폴로는 물론 몇 몇 대상들이 남긴 여행 기록을 꼼꼼히 살핀 그는 실크로드를 샅샅이 추적해 간다. 마르코 폴로가 남긴 기록을 토대로 대상 숙소의 모양과 쓰임새, 역사를 설명하기도 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칭기즈칸, 진시황과 한무제 등 실크로드의 역사에 관여했던 여러 왕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는 결코 바삐 여행을 서두르지는 않는다. 느리게,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면서 자신을 비우는 법을 터득해 나아간다. 그것은 은퇴 후 사회적 소수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삶을 재활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다리는 점점 더 힘을 잃었다.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빵을 한 조각 먹으려고 했지만, 빵 냄새를 견딜 수 없었고 구토가 치밀었다. 나는 길을 떠나지 못하고 다시 좁은 길 위에 멈춰 섰다. 이가 딱딱 부딪쳤다. 배낭은 엄청나게 무거웠다. 다시 길을 떠났지만 똑바로 걸으려고 해도 저기, 작은 고개를 향해 뻗은 평평한 길 위에서 내가 비틀거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다행히 자동차와 트럭이 드문 길이었다. 자칫하면 갈기갈기 찢길 판이었다. - <나는 걷는다 1> 401쪽

그렇게 고통스럽게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긴 길을 걸어갔다. 하루하루를 걷고 또 걸어야 했지만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기쁨이었다. "왜 이렇게 매번 더 멀리 가려고 고집하느냐?"라는 출판사 편집자의 이 물음에 그는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가 의식했던 의식하지 못했던 어쩌면 그의 여행은 과정을 중시하는 여행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삶에서 진정으로 추구할 것은 목적이 아니라 삶의 과정이라는 고전적인 삶의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길은 끝나도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

<나는 걷는다> 1권은 서울여대 불어불문학과 임수현 교수가 나머지 2,3권은 서강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불어불문학을 공부한 고정아씨가 번역했다. 번역을 나눠서 하는 바람에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스러운 흐름을 유지하지 못한 게 흠이다.

<산중일기>는 사찰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있는 신대현씨가 번역하고 주석을 달았다. 525쪽이라는 방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역자가 가나다순으로 사전처럼 배열해 놓은 '찾아보기'를 수록해 놓음으로써 금세 원하는 대목을 찾을 수 있게 한 배려가 돋보인다.

<산중일기>와 <나는걷는다 1,2,3>라는 두 여행기. 동양과 서양, 비록 현재와 과거로 이 두 사람의 삶의 시간이나 공간은 다를지라도 두 분 모두 60세가 넘은 나이에 시작한 여행이었으며 또한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거리를 걸었다는 게 공통점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동안 문득 문득 감회에 사로잡히곤 했다. 내게도 젊은 시절에 했던 거의 1년에 가까운 무전여행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게으른 나는 아무런 기록도 남겨놓지 못했다. 겨우 이따금 떠오르는 몇 가지 기억을 끄적거려 놓았을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막급이다. 길은 끝나도 기록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삶은? 물론 계속돼야겠지. 삶을 추동하는 원동력으로서의 여행과 여행기를 읽는 일까지도.

덧붙이는 글 | *<산중일기>/정시한 저. 신대현 번역,주석/도서출판 혜안/28,000원

*<나는 걷는다 1>/베르나르 올리비에 저. 임수현 역, <나는 걷는다 2, 3> 베르나르 올리비에 저. 고정아 역/효형출판/ 1,2,3 권 각 9,800원>


나는 걷는다 세트 - 전3권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고정아 옮김, 효형출판(2004)


산중일기 - 17세기 선비의 우리 사찰 순례기

정시한 지음, 신대현 옮김, 혜안(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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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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