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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9, 날씨 맑음, 6시50분 차로 려산(廬山, 庐山, LúShān, Lu2Shan1)으로 출발

내가 이렇게 일찍 일어나다니 드문 일이다. 아마 천장에 달린 언제 떨어져 자는 나를 덮칠지 모를 부실하게 달린 선풍기 탓에 신경이 곤두선 탓일수도….

▲ 구강 버스터미널에서, X레이 검색대와 웃통벗은 아저씨가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지요. ^^
ⓒ 최광식
중간에 표 파는 곳에서 려산풍경구 입장권 구입, 135위안(元) 정말 비싸다. 지역주민인 듯한 사람들은 표를 안 산다.

내리자마자 삐끼 아줌마들로 둘러싸였다. 7월이면 성수기인데 장사가 안 되나? 이리 많아! 모두 물리치고 터미널에 붙어있는 관광안내센터로.. 생각치도 않은 한글 안내서가 있다. '노산은 관광객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나름대로 려산관광국에서 준비를 많이 한 듯싶지만, 노산은 흔히 산동 청도에 있는 노산(嶗山, 崂山, LáoShān, Lao2Shan1)을 말한다. 아마 밥그릇 노(盧)와 오두막집 려(廬)를 혼동한 까닭이리라.

▲ 려산관광국에서 만든 노.산 관광안내서
ⓒ 최광식
'중국 강서성 노산풍경명승구관리국'에서 힘들게 만들어 놓은 려산안내서 일부를 소개하자면

"강서성북부에 위치하고 잇는 여산은 북쪽에 중국의 제일 큰 강인 장강과 인접해있고, 동쪽에는 중국의 제일 큰 담수호인 파양호(鄱陽湖)를 끼고 있어, 대강, 대호와 대산이 혼연일체를 이루워, 준험하고도 아름답고 굳셈과 부드러움이 서로 융합되여, 옛날부터 <웅위롭고 기이하며 준험하면서도 아름답다>고 세상에 소문났습니다.

여산은 국내외에 유명한 풍경명승구 이며 또 세계의 자연풍경유산지입니다. 기원 756년, 당나라시인 이태백은 <내가 천하를 돌아다녀, 유람해본 산수는 매우 많은데, 아름답고 웅위로우며 기이하고도 특별함은, 이산을 초과하는 곳이 적드라, 정말천하의 절승이로구나>라고 여산을 칭찬한 바가 있습니다. 여산풍경명승구역의 면적은 302평방킬로미터이며, 최고 산봉우리는 해발 1484미터인 대한양봉(大汉阳峰)입니다."


무슨 말인지 대충 이해가 된다만, 짧게 평하자면 한글이 중국와서 고생좀 한다.

이 노.산.풍경명승구관리국이 하고 싶은 말을 정리 좀 해서 사족을 덧붙이자면..

'중국산수시의 발원지, 중국산수화의 발상지로, 도연명, 사령운, 이백, 백거이(자티주: 안내서에는 백거역으로..), 소식(자티주: 안내서에는 소시로.. 아마 오타일지도) 왕안석등의 시인묵객들이 자주 찾았온 곳'

'기원 940년에 창간한 백록동서원(자티주: 안내서에는 백녹간(澗, 涧, jiàn)으로)은 중국 고대 4대 서원 중 으뜸이다.'

'기원 4세기 동진고승인 혜원(蕙遠)스님은 동림사(東林寺)에서 정토종(靜土宗)을 창립했고, 선종의 8대조사인 마조(馬祖)의 중요한 활동지로 임제종과 위앙종 두개종을 세운 스님이다.'

' 려산은 세계문화유산이며 중국 국가 지정 4A급 풍경명승구중 첫 번째이고, 19세기말~20세기초 당시 열강들이 세운 별장이 1000채가 있다.'

관리국에서 준비한 6p 분량의 한글 안내서를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 아참! 려산은 중국인들이 주장(?)하는 2대 명산중 하나로 또 하나는 안휘성'황산'이다. 또한 세계지질공원이기도 하고..

▲ 세계문화유산이며 지질공원입니다.
ⓒ 최광식
중국현대사를 배우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중국인들에게는 려산회의로 유명한 1959년 중국공산당 정치국확대회의, 1961년 중앙공작회의, 1970년 9회 2중총회 등 모택동 주석이 주최한 삼개 중요회의로 유명하다. 약 직간접적으로 2700만명을 사망케 한 '대약진'운동에 대한 비판으로 '*팽덕회(彭德懷)'가 모택동주석에게 팽(烹)당한 곳이기도 하다. (자티주: 대약진운동으로 인한 사망자수는 2000만~4000만명으로 주장이 분분하지만, 일반적으로는 2000만명설이 많습니다.)

* 팽덕회

후난성[湖南省] 샹탄현[湘潭縣] 출생. 후난 강무당(講武堂)을 졸업하고 국민혁명에 참가하였다. 1928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핑장[平江] 폭동을 일으켜 공농홍군(工農紅軍) 제5군을 조직하여 군장(軍長)이 되었으며, 1934∼1935년 대서천(大西遷;장정)에 참가하였고, 1936년 제1방면군사령이 되었다. 항일전쟁 때는 주더[朱德]의 밑에서 부총사령을 지냈다. 1945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 전후의 국내전쟁에서는 서북인민해방군사사령(西北人民解放軍事司令), 중공정부 수립 후에는 중앙인민정부위원회 부주석 ·서북군정위원회 주석 등의 요직을 맡았다.

1950년 소위 인민지원군 총사령으로서 한국전쟁에 참가하였고, 1954년 이후 국방위원회 부주석 ·국무원 부총리 ·국방부장 ·당중앙정치국원 등을 역임하며 군의 근대화를 추진하였으며, 1955년 원수가 되었다. 그러나 1959년 제2차 5개년 계획인 ‘3면홍기(三面紅旗, ‘총노선’ ‘대약진’ ‘인민공사’)’정책에 반대함으로써 마오쩌둥[毛澤東]과 대립하여 1959년 9월 국방부장에서 해임되고, 1965∼1966년에 모든 공직을 빼앗겼다.


대약진운동의 많은 실패중 하나는 (강)철을 만든다고 수만개의 제철소를 만들어 철을 녹인다고 숲과 나무를 베고 수천만명이 달라붙어 철만들기에 나선 이유고, 그 까닭에 홍수, 기근, 생산성 저하등등이 발생되어 쌀생산량 감소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 원인은 누군가가 모택동에게 자가제철소에서 '철'생산이 가능하다는 황당한 보고를 했기 때문에 그 걸 믿은 비전문가 모택동에 의해 중국인민에게 대재앙이 생긴 것이다.

비슷한 예는 대한민국에도 있었다. 1970년대 모 도지사가 박정희대통령에게 쌀생산량을 부풀려 보고하는 바람에 충성경쟁비슷하게 각 도지사분들의 노력에 의해 전국 쌀생산량이 전 해에 비해 두배정도 초과달성하는 바람에, 숫자상으로, 북한에 쌀주겠다고 큰소리 친 배경이 됐다.

이런 건 '민주(?)주의', '사회주의'같은 정치체제 문제가 아니라, 관료주의의 공통점이다. 높은 분 눈도장 찍히는 것이 생존목표인..

하여간 '박통'이 쌀주는 건 '평화통일'노력이고 '김통', '노통'이 쌀주는 건 퍼주기가 되는 이상한 나라가 대한민국인것도 사실이다. 중국의 공산당은 나름대로 내부모순을 극복하고 조금씩 진화, 진보하고 있는데, 이 땅의 민주(?)주의는 갈수록 퇴보하는 것같으니 그것도 참... 중국에 와서 한국현대사를 들여다보면 늘 뒷맛이 개운하지가 않다.

하여간, 려산은 려산풍경구와 수봉, 동림사, 백록동서원을 통틀어 말한다. 내가 표를 끊은 곳은 려산풍경구.(후기 : 미련하게 준비부족탓에 이백폭포가 려산풍경구가 아닌 수봉쪽이라는 것은 다음 날 알게됐다.)

오늘은 려산풍경구 안쪽을 보고, 내일은 삼첩천(三疊泉)과 오로봉(五老峰)을 보고, 모레는 수봉, 이백폭포, 백록동서원을 보고, 글피는 남창으로 가야지..

아직도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삐끼아줌마를 따라간 곳은 일본어로 환영합니다 라고 써있는 여관이다. 침대하나 달라니 50위안 달라고 한다. 잉? 무신 50위안이나? 하여간 먼저 보고 결정하기로.. 아마 내 정확한(?) 중국어 발음을 못알아들었는지 중국인들이 태평간(太平間, 太平间, tàipíngjiān, tai4ping2jian1)으로 부르는 시체안치실 비슷한 곳으로 데려간다. 아마 이 건물 생기고 첫번째로 문을 연 것은 아닐까 할 정도 곰팡이로 인해 하얀 회벽일 공간이 전부 새까맣다. 이 방에서 흰색이라고는 이불과 시트뿐. 환기라도 좀 시키지 하고 둘러보니 창문도 없다. 내 경험상 이 정도면 15~20위안 이하 수준이다. 아니 10위안이라도 안잔다. 이런 곳은.. 두어군데 비슷한 수준의 숙소를 헤매다 운중(雲中)파출소라고 이름은 운치있는 파출소에 정부(政府)빈관으로, 30위안짜리 침대하나 달라니 아까 그 태평간 수준이다. 질린 내 표정을 보더니 좀 나은 곳이 있다고 다른 방으로 안내한다. 안내한 곳은 그래도 창문은 있어, 바닥만 좀 척척한 것빼고는 그냥 잘 만하다. 침대 3개중 가운데.. 이불이 눅눅하다. 김삿갓이 이 동네 여행이라도 왔으면 '동네 인심 고약타' 한 마디 했을지도..

려산지도 3위안, 물 한병 2위안..

전생에 죄가 많아서인지 유명하다는 한국명산인 '금강산', '묘향산', '백두산'은 구경도 못하고 옆나라 산만 보고 다니니.. 이런 이런..

하여간 계곡에 물이라도 많으면 그런데로 봐줄만 할텐데 산위에 물을 막아 시내물은 졸졸졸졸 수준이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아마 수력발전용?, 댐을 만들었겠지만 중국인들은 호수를 얻은 대신 계곡을 잃었다.

▲ 려산 풍경
ⓒ 최광식

벌써 대여섯시간 연장 걸어서 다리가 아프다. 내일 일정을 미리 땡길까해서 이정표에 2Km 떨어져있다는 함파구(含鄱口)로 가서 오로봉하고 삼첩천이나 볼까 하고 택시를 잡았는데 '15위안(元)' 달랜다. 어쭈! 왠 바가지! 다른 차들 잡았는데 '20위안'달랜다. 그냥 가라고 하니까 기본이 10위안이니까 10위안달랜다. 그럼 이 인간아 처음부터 10위안 부르던가!! 다시 지나가는 택시잡았더니 손가락을 세개핀다. 그거 무슨 뜻이냐? 3위안이냐니까 30위안달란다. 여러가지 한다. 정말. 어쩐지 중국인민들 태반이 걸어다니더라.. 여기는 저 바가지 단합 택시들 외에는 교통수단이 완벽히 없다. 단체외의 개별여행객은, 바가지에 신경안쓸 부르조아외에는 다 걸어다닌다. 한국의 프롤레타리아도 어쩔수 없다. 걸어다닐수 밖에..

일정 포기. 걸어서 노산 박물관까지.. 잉 나까지 노산이라고.. 려산박물관까지

려산을 방문한 시인묵객들 면면을 곰곰이 볼려고 했는데.. 거진 일곱여덜시간 걸은 터라. 눈에 안들어온다. 한국에가서 찾아보기로 하고 모택동주석이 려산오면 쉬어갔다는 방구경.. 서실인지 몰라도 모주석이 여산와서 본 서적들 목록이 있다.

스탈린, 마르크스, 레닌, 앵겔스.. 등등의 사회주의서적들
자치통감을 비롯한 중국역사서들
노신전집

▲ 모주석이 려산에서 읽은 서적 목록
ⓒ 최광식

특이하게 '안데르센 동화집'과 '삼국지집해'가 눈에 띈다. '논어'와 '대학중용'도..

그 사람의 독서편력으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면 이 려산에서 읽은 모주석의 편향을 판단할 수 있다면 과언일까?

후에 '비림비공(批林批孔)'으로 영원한 2인자 주은래를 견제하게 된 빌미도 '공자'를 읽은 탓일까? 스탈린주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모택동의 권력독점력은 어떤가? 역사책을 통해서 모택동은 과연 뭘 깨닫았을까? 초인(超人, 주: <철학>기성(旣成) 도덕을 부정하고 민중을 지배하는 권력을 행사하면서, 자기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실현한 이상적인 인간. 니체 철학의 근본 개념이다)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미국기자가 말한데로 '황제'가 되고 싶었던 걸까?

이 시대의 풍운아인 '모택동'에 대한 평가는 모택동 사후의 평가는 중국인들에게 맡기자.

[1981년 6월 27일 6중 총회의 '역사결의(건국이래의 역사적 무제에 관한 당의 결의)' 제 7항 '모택동 동지의 역사적 위치와 모택동 사상'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모택동 동지는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이며,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전략가, 이론가이다. 그는 10년에 걸친 '문화 대혁명'에서 중대한 과오를 저지르기는 했지만, 그 전 생애를 통틀어서 보면 중국 혁명에 대한 공적은 과오를 훨씬 능가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는 공적이 제 1이고, 과오는 제 2이다. ]
- 모택동 비록 p305~306'


다시 힘들게 걸어 해지기전에 숙소도착. 화장실 겸 샤워실에서 샤워, 남자용은 불이 안 들어와 문을 닫으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여자용으로.. 누가 오면 변태로 몰릴 상황이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후다닥 샤워. 더 찝찝해진다.

앞 식당에서 먹으려니 좀 비싸다. 맥주만 싸도 먹을텐데. 맥주가 5위안이나. 안.먹.어

다른 식당으로 고기요리라고 시켯는데, 두부만 잔뜩. 어쩐지 아무도 없더라. 맥주 5위안달란다. 안.마.셔 그러니까 원래 5위안인데 3위안에 주겠단다.

야시장 있냐니 없고, 동네 시장은 도로 아래에 있다고 한다. 참! 그러고 보니 노점상 안보이는 거의 유일한 동네가 '려산'이기도 하다.

지역 주민들은 깨끗한 도로밑 더러운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판다. 주객이 전도된 듯하다. 뭘 위한 사회주의인지, 뭘 위한 관광행정인지 지역주민들은 배제된 듯하다. 천안문의 모주석이 지팡이라도 들고 일어설지도 려산을 보면.. 사회주의국가 중국은 이제 '관념'속에만 남아있는지도..

여러가지로 우울해졌다. 이백폭포는 안보기로.. 왠지 흥이 안난다. 배가 고파진 탓일지도. 나는 허기가 지면 우울해진다.

좀 싸보이는 시장어구 식당으로.. 비싸다. 동네 맥주 3위안, 48도인지 52도인지 백주 한병, 물 한병, 안주 하나로 술을 좋아햇던 전 세계 모든 시인들을 위해 건배. 주태백 이백과 달이 뜨면 뜬다고 한 잔, 안뜨면 안 뜬다고 한잔했던 우리 시인 임제를 위해 한 잔, 동가식 서가숙했던 내 여행선배 우리 김 삿갓을 위해서도 한 잔.

천리길행장 지팡이 하나에 기대고 (天里行裝付一柯)
남은 돈 칠푼은 외려 많은듯 (餘錢七葉尙云多)
너만은 주머니 속에 꼭꼭있으라 타일렀건만 (囊中戒爾深深在)
들녘 주막 석양에 술을 보니 어찌하리. (野店斜陽見酒何)
- 김삿갓 '탄음야점(嘆飮野店)'


려산의 달은 술잔과 함께 기운다.


<7월 19일 사용경비 내역>

* 계산 편의를 위해 사사오입

ㅇ 이동비 : 없음
- 구강 > 려산 (버스, 10위안)
ㅇ 교통비 : 10위안
ㅇ 숙박비 : 30위안
ㅇ 식 비 : 14 위안
-아침 : 건너뜀
-점심 : 비상용 식량(한국에서 사간 초코파이와 오뜨)로 때움.
-저녁 : 자칭 고기요리인 두부요리(12위안) 밥 (2위안)
ㅇ 관람비 : 135위안
ㅇ 잡 비 : 41위안
려산지도(3위안), 물 세병(1.5위안, 2위안, 2위안), 아이스바(2위안), 술한잔(고기안주, 물한병, 백주한병, 맥주한병, 약 30위안)
ㅇ 총 계 : 약 230 위안

덧붙이는 글 | ㅇ이 기사는 한겨레-차이나21-자티의 여행나라(http://ichina21.hani.co.kr/)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ㅇ 중국어 발음과 해석은 네이버사전(http://cndic.naver.com/), 인물은 네이버백과사전를 참조했습니다. 

ㅇ 중국 1위안(元)은 2006년 8월기준으로 약 120~130 원입니다.  

ㅇ 많은 여행지 사진은 여행자의 상상력을 헤친다고 믿기에 최소한으로 했습니다. 스포일러(영화의 줄거리나 주요 장면 따위를 미리 알려 주어 영화의 재미를 크게 떨어뜨리는 사람)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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