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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한가운데 위치한 구소련 군인의 동상. 동상 주변에는 접근을 금지하는 바리케이드와 함께 경찰이 24시간 지키고 있다.
ⓒ 서진석
8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 탈린의 구시가지는 북유럽·서유럽·제정 러시아 등 유럽의 주요 건축양식이 한 곳에 모여 조화를 이루고 있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유럽 건축양식의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불린다.

게다가 지난 세기 초 에스토니아가 소련의 공화국으로 편입되면서, 여기저기 지어지기 시작한 소련식 건물들과 주택밀집지역 역시 탈린의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가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소련의 잔재 역시 이 도시의 중요한 일부분이 된 지 오래인 것이다.

소련의 몰락과 함께 도시 곳곳에 세워져있던 레닌과 스탈린 동상같은 공산주의 상징물들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런데 수백년 된 고풍스런 건물들이 현대식 건물들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는 찬사를 받고 있는 탈린 구시가지에서, 소련의 유물 때문에 불거지는 문제들로 요즘 시끄럽다.

검은 동상을 둘러싼 스킨헤드들

▲ 철모를 손에 들고 고개를 숙인 모습의 동상. 에스토니아 시민들에겐 침략과 압제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 서진석
지난 12일 탈린에서는 역사상 두번째 동성애자 거리축제가 열렸다. 처음 치러졌던 작년에는 별 물리적 폭력이나 방해없이 비교적 원만하게 끝났지만 올해는 사정이 좀 달랐다.

스킨헤드를 자처하는 이들이 모여서 계란을 던지며 행진을 방해하고 나선 것. 이들은 급히 투입된 경찰들에 의해 물러났지만, 그 날 일정은 단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행사가 끝나자 그들은 에스토니아 국립도서관 앞에서도 또 목격됐다. 도서관 앞 광장에 자리잡은 한 검은 동상의 철거를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도 경찰의 저지에 의해 맥없이 물러나야 했지만, 그 동상은 대체 무엇이었길래 스킨헤드들의 혐오 대상이 된 것일까.

스킨헤드들이 모여들었던 국립도서관은 구시가지에서 좀 떨어져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지만, 도서관 자체라든가 에스토니아의 학술사정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한 번 정도 방문할 만한 곳이다.

그러나 요즘 최근 몇달간 도서관 앞 광장에는 바리케이드를 친 경찰의 감시가 삼엄하다. 그렇게 감시가 삼엄한 광장 한가운데는 우울하게 고개를 내려뜨린 동상이 하나 서 있다.

광장 한가운데, 붉은군대 용사들

이 동상은 2차대전 당시 사멸한 군인들을 추모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상징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에스토니아 현지인과 러시아 이주자들이 거의 반반씩 섞여있는 수도 탈린에서, 이 동상은 새로운 이념 문제를 양산하며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평범해 보이는 동상 옆에는 에스토니아어로 '2차 대전 중 사멸한 군인들을 위하여'라는 비문이 적혀있어서 이념과 아무런 상관없는 동상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 동상은 1949년 에스토니아가 소련에 편입된 직후 조성된 동상이다. 2차 대전 중 독일에 맞서싸우다 숨진 러시아 붉은군대의 용사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세워진 기념물인 것이다.

1944년 에스토니아는 동지에서 적으로 변했던 독일과 러시아의 전쟁터로 변했고, 러시아 붉은군대는 에스토니아를 독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전투를 벌였다. 그 해방전쟁에서 14명의 용사들이 전사했고, 1949년 그들의 시신을 옮겨와 묘를 조성하고 그 위에 동상을 세웠다.

동상 밑에는 군인들의 시신이 안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당시에는 현재 적혀 있는 비문 대신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은 영원히 찬양받을지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 동상 밑에는 정말 용사가 묻혔을까

▲ 탈린 구시가지 한가운데 있는 19세기 러시아 정교회 건물.
ⓒ 서진석
2차대전이 끝난 직후 소련의 일개 공화국으로 전락한 에스토니아의 시민들이 침략과 압제의 상징인 그 동상을 곱게 볼 리 없었다.

동상은 초기부터 시민들의 혐오와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동상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지어냈고, 그 동상 밑에 있는 시신은 전쟁영웅들의 것이 아니라 가게에서 술을 훔치다 죽은 군인들의 것이라는 소문까지 퍼지고 말았다.

소문이 상당한 파급력으로 전국에 퍼져나가자 에스토니아 정부는 동상 아래 안치되어있는 시신을 다시 꺼내 누가 묻혀있는지 확인작업까지 해야했다. 몇 시간에 걸친 작업 결과, 동상 아래에는 '군인'이 묻혀있는 것은 확인됐지만, 그들이 정말 조국해방전쟁에서 전사한 사람들인지는 확실치 않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렇게 초기부터 비방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왔던 그 동상은, 에스토니아가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비문의 내용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그 자리에서 위압적인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에스토니아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소련의 상징인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탈린 인구 중 40%를 차지하는 러시아인들은 그 동상을 러시아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말해주는 상징물로 여겨 철거를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2차 대전 종전기념일인 5월 9일과 나치 독일로부터 에스토니아를 탈환한 9월 22일이 오면 이 동상은 에스토니아인들과 러시아인들간의 이념싸움 장소로 변한다.

5월 9일이면 동상 주변에서 러시아의 붉은군대 용사들의 행적을 기리는 기념식과 더불어 발트 3국의 소련 지배를 상징하는 동상을 철거하라는 시위가 동시에 열린다. 그리고 9월 22일이면 붉은군대 용사로서 해방전투에 참가했던 군인들의 후손들이 행하는 헌화식과 그 헌화식을 반대하는 시위가 함께 열린다.

한쪽에선 기념식, 한쪽에선 반대시위

청동군인상은 몇년간 줄곧 테러의 대상이 되어왔다. 밤이 되면 그 동상 얼굴에 붉은 페인트가 칠해졌고, 침략자 소련을 비방하는 낙서로 어지럽혀지곤 했다. 낮이 되면 지우고 밤이 되면 다시 칠하는 일이 계속됐다.

철거 여론이 다시 일기 시작하자, 에스토니아 내 극우 러시아단체들은 만약 그 동상을 철거할 경우 어떤 보복도 서슴지 않겠다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올해 5월부터는 '야간기동대'가 동상 주변을 순찰 돌면서 불필요한 충돌을 막아보려 했지만 실효를 보지 못했다. 끝내 6월 21일 안드루스 안십 총리가 직접 나서 동상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24시간 경찰이 감시하도록 결정을 내렸다. 에스토니아인·러시아인·심지어 외국인까지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통경비를 한 결과 문제는 잠시 조용해지는 듯 했다.

그러나 동상 경비를 위해서 드는 예산이 갈수록 올라가고, 미동도 하지 않는 청동상을 감시하느라 지루해진 경찰들이 모여서 카드놀이를 하는 장면을 포착한 사진이 일간신문에 실리면서 또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식민의 유물, 조화 이룰 수 있나

▲ 유럽의 다양한 건축양식이 한가운데 모여 조화를 이루는 이 곳에, 소련의 유물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 서진석
현재 이 동상은 철거보다는 인적이 드문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 역시 그다지 쉽지가 않다.

현재 에스토니아 최대정당인 중립당 '케스케라콘드'는 지난 선거에서 러시아인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대 러시아 관계에 지극히 민감한 처지인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 관계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은 극도로 자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현재 탈린의 시장 역시 케스케라콘드당 출신이므로 동상 철거에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그런 중요한 구도의 한 가운데 서있는 동상을 인적이 드문 곳으로 옮기는 것 자체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의견이 높다.

탈린 구시가지에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고 지나간 여러 건물들도 알고 보면 수백년간 이곳을 지배했던 강대국 지배의 족적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지배와 피지배자의 이념이 사라진 지금, 그것들은 구시가지의 아름다운 기념물로 보존되고 있다.

하지만, 소련의 유물들은 언제쯤 다른 것들과 조화와 화합을 이룰 수 있게 될까? 지배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에스토니아에서, 어쩌면 그것은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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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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