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상주 자전거전용도로는 지난 95년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본격 추진되었다.
ⓒ 전득렬
나와 자전거의 첫 인연은 '세발자전거'였다. 서너 살로 기억되는 70년대 초반의 어린 시절, 유독 기억나는 것이 아버지가 사 주신 그 세발자전거다. 그 자전거로 거실 마룻바닥 위를 타고 다니며 너무나 기뻐했던 그 장면이 어렴풋이 기억나는 걸 보면 어린 마음에 자전거가 어지간히 좋았던 모양이다.

이후 초등학생이 되면서 '두발자전거'는 아주 고가여서 한 번씩 친구자전거를 빌려서 타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통학용인 나의 전용자전거가 생겼다. '중고' 자전거였지만 항상 정성들여 반짝반짝 닦았던 기억이 난다. 자전거 핸들에 '경보기'를 달고 '바람개비'도 달면서 자전거를 보물 1호로 애지중지했던 것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는다.

1980년대 학창시절, 그때가 자전거 천국

80년대 초,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나는 학교 안에(대구 수성구 소재 동중학교) 자전거 전용주차장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슬레이트 지붕이 고작이었지만 학년별로 주차할 수 있도록 만든 100여 미터에 이르는 자전거 주차장은 늘 붐볐고 자리확보 경쟁도 치열했다. 먼 거리에 집이 있는 학생은 대부분 자전거로 통학했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 고교생이 되면서 더 먼 거리를 통학하게 되었다. 그때는 속도를 좀 더 낼 수 있는 '폼'나는 '사이클(경주용 자전거)'을 타고 다녔다. 고3이던 옆집 형의 멋있는 '사이클 통학'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자전거 뒷자리에 가방을 동여매고 도로를 쌩쌩 달리다 소나기를 만나 옷이 흠뻑 젖은 기억을 떠올리면 살짝 웃음이 나온다. 정류장마다 멈추는 버스와 경주를 하며 결승점이던 학교에 먼저 도착해 두 손을 번쩍 들며 기뻐하던 그때를 생각하면 어지간히 겁이 없었던 것 같다.

▲ 1983년 중2 때 학교 안의 자전거주차장은 학년별로 구분되어 100여 미터에 이르렀다. 왼쪽 사진은 생애 최초의 중고자전거를 타는 모습이며, 오른쪽 사진은 평행봉 뒤로 '2학년'이라고 적힌 자전거주차장이 보인다.
ⓒ 전득렬
2006년 '자전거 천국' 상주를 가다

지난 시절 나의 자전거는 성인이 된 지금 돌이켜 보면 지금의 자동차처럼 분명 생활의 중요한 일부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자동차가 많지 않았던 것이 지금과 다르다면 다른 상황이었다. 그 시절을 추억하며 나는 '자전거 천국'이라 불리는 경북 상주시를 찾았다.

'자전거 천국'이라는 '상주'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학창시절이던 1980년대로 되돌아간 느낌을 받았다. 앞을 봐도, 옆을 봐도, 뒤를 봐도 모두 자전거뿐이었다. 어린 꼬마부터 80대 노인까지 걸어다니는 사람보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더 많아 보였다.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들, 장보러 가는 아줌마, 약국에서 약을 산 할아버지, 앞뒤로 아이를 태운 주부, 이웃에 마실 가는 할머니, 친구와 속삭이며 걷는 여학생, 짐을 싣고 가는 사람들 모두가 자전거와 함께였다. 정말 자전거가 많았고 흔했다.

▲ 자전거 수송분담률은 네덜란드의 43%에 비하면 턱 없이 모자라지만 우리나라의 전체평균치인 2.4%를 훨씬 웃도는 18.6%나 된다. 가히 자전거 천국이라 할 만하다.
ⓒ 전득렬
상주의 자전거 타는 풍경은 자전거 모양과 옷차림 그리고 건물만이 현대적으로 변했을 뿐 1980년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길가 자전거 주차장에 길게 늘어서 있는 수많은 자전거가 그랬고, 여기저기 편한 대로 세워져 있는 자전거가 그러했다.

그렇다면 상주는 왜 이렇게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은가? 가장 궁금한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마침 신호를 기다리는 한 할머니에게 물었다. 70평생을 자전거 타는 사람을 보면서 살았다는 정춘임(72·상주시 남원동) 할머니는 69세 때 자전거를 처음 배워 3년째 타고 다닌다고 말했다.

[상주에 자전거가 많은 이유 ①] 오르막 내리막이 거의 없는 지리적 조건

할머니는 "도시 자체가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의 없는 평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노인들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에 매우 편리하다"고 말했다. 나이 들면서 적절한 '운동거리'를 찾다가 손쉬운 자전거를 택했다는 정 할머니.

할머니는 이웃 마실 나갈 때 타고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에 자전거를 배웠는데 보는 것 이상으로 타는 재미가 쏠쏠하며 편리하다고 설명했다.

할머니의 설명처럼 상주는 평균표고가 70m 내외로 평탄한 분지형이다. 5% 이하의 완만한 경사지가 넓게 퍼져 있어 누구나 자전거를 쉽게 탈 수 있다. 시내를 중심으로 원하는 목적지까지 20분 이내면 도달할 수 있어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기에도 무난하다.

▲ 70대 할머니, 80대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는 풍경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 전득렬
[상주에 자전거가 많은 이유②] 넉넉한 경제력과 이른 자전거문화 도입

상주시의 총면적은 1254.72㎢로 우리나라 면적의 1.3%를 차지한다. 이는 서울의 2배 크기로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6번째로 넓다. 이중 도로, 하천 등이 11%를 차지하며 임야가 67%, 논 15%, 밭 면적이 7%다. 때문에 1차 산업이 전성기였던 시절에는 곡창지대여서 경제력이 매우 넉넉했다고 한다.

상주의 자전거는 일제시대인 1910년 일본인들이 보급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낙동강 상류를 낀 넓은 평야를 낀 곡창지대였던 당시 상주 사람들은 넉넉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1대에 30원(현시가 100만원 정도)이나 했던 고가의 자전거를 손쉽게 구입하여 타고 다녔다고 한다.

이후 1924년 11월 김천-상주(36km)를 잇는 경북선 개통 기념으로 '조선 8도 전국자전거대회'가 상주기차역 광장에서 개최되면서 자전거 역사가 시작되었다. 일제 강점기였던 당시 사이클 선수로 활약하면서 민족적 자긍심을 높여준 엄복동 선수와 상주 출신 박상헌 선수가 함께 대회에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두 선수가 일본인 선수를 물리치며 1, 2위를 나눠 가졌고, 때맞춰 자전거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상주에 자전거가 많은 이유③] 지자체의 적극적인 노력

상주시의 적극적인 노력도 자전거문화가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상주 자전거전용도로는 지난 95년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본격 추진되었다. 상주시는 이와 함께 도시 교통문제를 정비하고 에너지 절약과 건강 증진 그리고 환경오염문제 해결을 위한 캠페인을 함께 했다.

자전거 이용 활성화사업 추진계획에 따라 상주시는 자전거 이용시설 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1996년 12월부터 1997년 8월까지 총사업비 4억 6000여만 원을 들여 자전거시범도로를 개설하기 시작했다.

또한 오는 2007년까지 12억 4천여만 원을 투자해 상주시내 도로 45개 노선(127㎞)을 확장하고 자전거 보관대 1만 2430대분과 367곳의 보도 턱을 정비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상주시내 자전거전용도로 폭은 인도의 70%나 차지한다. 특이할 만한 일이다. 많은 자전거가 동시에 지나다닐 수 있도록 넓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 자전거운전면허증
ⓒ 전득렬
게다가 지난 2001년 전국 최초로 자전거운전면허증을 발부했다. "자전거운행에 관한 구속력이 없는 면허증이지만 초·중고생들을 대상으로 자전거를 안전하게 타는 안전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상주시청 새마을과 자전거담당 최한영 주사가 설명했다.

지난 5년간 이론교육과 필기 및 실기시험을 통과한 1만 6156명의 학생들이 자전거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 자전거안전문화에 기여하고 있단다. 상주냉림사회복지관이 단체위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지난 1999년 '제1회 상주전국 자전거축제'를 개최하면서 4, 5회 태풍 피해 때를 제외하고는 지난해까지 7회째 대회를 이어왔다. 해마다 대회 규모를 확대하고 참여 인원을 늘려왔으나 지난해 10월, 3일간의 행사 중 마지막 날 발생한 가요콘서트 압사 사고로 2006년 자전거축제 개최는 불투명해졌다.

4억여 원에 달하는 예산을 배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상 올해 자전거축제는 없을 것이라는 게 상주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신 오는 10월 17일 김천에서 개최되는 제87회 전국체육대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전국체육대회 41개 종목 중 MTB 경기가 상주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상주에 자전거가 많은 이유④] 생활 속의 자전거 타기

▲ 30년 자전거 경력의 베테랑 주부 최은아씨는 두 아이들과 종종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를 한고 한다.
ⓒ 전득렬
앞뒤로 아들·딸을 자전거에 태우고 자주 나들이를 한다는 최은아(37·상주시 낙양동)씨는 어린 시절부터 자전거를 타면서 자랐다. 올해로 자전거를 탄 지 30년째. 이젠 운전 베테랑이다.

처음에는 아이 한 명을 태우고 다니는 것도 버거웠지만, 이젠 두 자녀를 태우고도 자유자재로 운행할 수 있다고 한다. 그녀에게 자전거 도시 상주는 특별하지 않다.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익숙하게 보아온 풍경들이기 때문이다.

최씨는 자전거가 건강에 좋고 아이들과 함께 이동하기에 편리하다고 설명한다. 버스를 타면 아이를 안거나 업고 타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많이 걸으면 아이들이 피곤해 하기 때문이라는 것.

시내 벗어나면 전용도로 없어 타기 어려워

아쉬운 점도 있다. 그녀는 자전거 도로 개설이 더 많아져서 시내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를 자전거로 다닐 수 있는 순환로 연결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아직 상주시 전체를 다니기에는 부족하다는 설명. 게다가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는 곳에서는 뒤에서 빵빵거리는 경적소리와 골목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자동차 때문에 종종 놀란다고.

그는 자전거전용도로 표시를 해놓으면 자전거 이용자들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상주시 새마을과 자전거문화담당 조식연 과장은 "1차 산업이 대부분인 상주는 인구가 계속 줄어들어 먹고 살기도 힘든데 자전거도로에만 투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을 부탁했다.

조 과장의 말처럼 실제 상주시는 인구는 계속 감소 추세다. 2006년 6월 30일 현재 상주시는 4만 2847세대에 인구는 10만 9737명. 2005년 11만 892명에 비해 6개월 만에 1천여 명이나 줄었고 재정자립도는 전국 최하위 수준인 15.3%에 불과하다.

자전거 문화 확대가 자전거를 달리게 한다

▲ 상주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72.5%, 통학과 통근은 66%나 된다.
ⓒ 전득렬
상주가 자전거 천국인 이유는 무엇인가? 해답은 간단했다.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우수하다거나 더 보급이 잘돼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생활 속 자전거 문화'가 상주에 있기 때문이었다.

상주시 조사 결과 매일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72.5%나 된다고 한다. 이중 통학과 통근이 66%를 차지한다.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도 50.3%다. 자전거 수송분담률은 네덜란드의 43%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지만 우리나라의 전체평균치인 2.4%를 훨씬 웃도는 18.6%나 된다. 가히 자전거 천국이라 할 만하다.

80년대에는 자전거전용도로가 없어도 자전거가 많았고 자전거가 편하게 달릴 수 있었다. 지금은 자동차에게 길을 빼앗기면서 궁여지책으로 자전거 전용도로가 생겨났다. 교통문화의 변화로 자전거는 달릴 자리를 잃어버렸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상주에서만큼은 자전거 문화가 살아 있다. 상주 자전거문화를 어떻게 전국으로 확대할 것인지가 우리의 과제일지 모른다.

"인구가 계속 줄어 자전거 활성화 어려워요"
[인터뷰] 상주시청 새마을과 자전거담당 조수진 계장

▲ 조수진 계장
"아직 부족한 게 너무 많습니다. 타 도시보다는 자전거 타는 환경이 좋지만 '자전거천국'이라는 명성은 사실 부담스럽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진정한 자전거 천국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상주시청 새마을과 자전거담당 조수진 계장은 상주시민의 자전거문화 수준을 제대로 뒷받침할만한 자전거문화의 인프라 구축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재정의 뒷받침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5.3%에 불과한 재정자립도로는 시민들이 만족할만한 자전거환경 구축이 어렵고, 타 도시에서나 외부인이 '정말 가보고 싶은 관광 자전거 도시'가 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최근에는 상주시민들이 자전거를 많이 타는 소식이 알려져 정부 차원에서도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조 계장은 "유동인구가 많아야 자전거문화가 소문이 나고, 타 도시에서 관심을 가지고 벤치마킹을 할 텐데 상주는 인구가 점점 줄어들어 도시자체가 노령화 되어 가고 있다"고 밝히면서 자전거에만 전념할 수 없는 답답한 마음을 알아달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1차 산업인 농업의 비중이 많은 상주가 도약하려면 대기업을 유치해서 산업공단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오히려 상주가 잘 사는 도시가 되는 길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라며 상주의 넉넉했던 지난날을 아쉬워했다. / 전득렬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