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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협상이 타결될 경우 수입농수산물 특히 유전자조작식품(GMO)의 범람이 우려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WTO에 따른 쌀개방으로 식량주권까지 위협받고 있다. 만약 한미FTA가 미국의 요구대로 타결된다면 미래 한국인의 장바구니와 밥상 모습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김은진 전 유전자조작식품반대생명운동연대 사무국장이 20년 뒤 서울에 사는 한 중산층 가족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본다. 이 글은 농산물시장 개방시 예상되는 여러 상황을 토대로 쓴 가상 시나리오임을 밝힌다. <편집자주>
▲ 2006년 한 과일가게 뒤로 장대비를 맞으며 한미FTA 반대 가두행진을 벌이는 농민들이 보인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2026년 7월 어느 날 아침 6시. 오늘 아침도 빵 세 쪽에 소금에 절인 양배추가 반찬의 전부다. 부랴부랴 먹고 출근 준비를 한다.

6년 전인 2020년 미국에서 인류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던 유전자조작식품(GMO) 때문에 수백 명이 죽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 밥상이라고 해야 차릴 것이 없어졌다. 유전자조작농산물을 심던 농지에 농산물을 재배하면 종자가 오염되기 때문에 그 오염된 땅을 정화하는 데도 엄청난 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최소 5년을 기다려야 했다.

2020년 유전자조작농산물 재배 전면 중단!

그래도 2000년에 미국에서 터진 스타링크 사건(유전자조작한 사료용 옥수수를 식용으로 판매한 사건ㆍ편집자 주) 이후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스타링크 옥수수가 발견되던 시절에 비하면 5년이라는 세월은 나아진 것이라고 희망을 가져야 하나?

▲ 2002년 유전자조작식품 수입 반대 퍼포먼스를 벌이는 시민·환경단체.
ⓒ 오마이뉴스 권우성
유전자조작식품을 무상 원조받던 가난한 나라들에서 아이들이 이름 모를 병으로 죽어가던 2010년에도 그 원인이 절대 유전자조작식품이 아니라던 미국은 결국 10년이 지나 자기 나라에서 국민이 죽어가자 진실을 밝혔다. 제2의 광우병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표적인 유전자조작농산물이던 옥수수와 콩은 말할 것도 없고 15년 전 상업적 재배를 시작한 유전자조작쌀, 10년 전부터 상업재배를 시작한 배추, 고추까지 모두 재배가 중지되었다.

쌀이나 콩이 없으면 밥상 차리기가 힘든 우리나라는 더욱 힘들어졌다. 김치, 된장이나 고추장은커녕 쌀도 구하기가 힘들다. 지금 먹는 쌀은 그나마 동남아시아에서 비교적 싸게 수입하는 장립종쌀이다. 그래도 10kg에 20만원은 줘야 한다.

전 세계 농지의 70%에 유전자조작농산물을 심어댔으니 농산물량이 졸지에 70% 이하로 뚝 떨어졌다. 그나마 5년이 지나 이제 서서히 농지가 되살아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운 형편이라 농산물 생산량이 쉽게 늘어나지 않는다.

오늘 점심도 '미국산 냉동식품 3종 세트'

아침 8시. 오늘은 회사에 본사 사장이 납시는 날이다. 그래서 각종 브리핑 준비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매달 한 번씩 겪는 일이지만 미국에서 사장이 한 번씩 나오는 날이면 사무실 청소에서부터 서류정리까지 며칠은 꼬박 보내야 한다. 오늘 지나면 조금 쉴 수 있으려나.

낮 12시. 회사 지하 식당으로 내려간다. 오늘 식단은 뭘까? 햄버거, 감자튀김, 쇠고기 통조림. 모두 냉동식품으로 미국에서 건너온 것들이다. 그나마 식당에서 주는 이것이라도 먹지않으면 안 된다. 밖에서 사먹는 밥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20년 전에는 한 끼에 4000원이면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외식하려면 3만원은 줘야 한다. 그나마 밥에다 멀건 고깃국, 절인 양배추 몇 쪽, 산나물 한 접시, 거기다 생선 한 토막이나 고기 몇 점이 나온다.

1식 3찬이라는 백반의 법칙을 지키고 있지만 그렇게 몇 끼를 먹으면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월급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물가가 워낙 올라 300만원 월급에서 식비로 나가는 돈이 200만원이 넘기 때문에 외식을 하면 한 달을 버틸 수 없다.

그래도 직원식당이 있는 우리 회사는 형편이 나은 편이다. 미국회사라 본사직원과의 형평을 위해서 식단이 조금 나은 편이기 때문이다. 다른 회사들은 직원식당을 아예 없앴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밥 한 그릇에 소금에 절인 양배추 몇 쪽이 다인 회사도 많다고 하니 말이다.

태풍 '앳포카스', 농지를 삼키다

▲ 2006년 밥쌀용 미국산 칼로스쌀을 수입하자 성난 농민단체 회원들이 항의 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저녁 6시. 퇴근이다. 7시까지 우리 농산물 직거래장터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오늘은 한 주에 한 번 있는 국산채소 사는 날이다. 오늘을 놓치면 또 한 주일을 밥 한 그릇으로 버텨야 한다.

지난주엔 비가 많이 와서 채소시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파장이었다. 조금만 늦어도 살 수 없으니 오늘은 일찍 서둘러야 한다. 그나마 직장 다니는 사람을 위해 저녁에 장이 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처음 한미FTA가 타결된 후 10년 동안에는 수입농산물 값이 워낙 싸서 다들 수입산을 사 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국산의 반도 채 안 되는 값에 유기농산물까지 수입되는 통에 다들 우리나라 농업이 망한다고 농민들이 시위를 하면 혀를 끌끌 차며 '그러게, 진작에 국제경쟁력을 키울 것이지'라며 비웃었다.

그러나 10년 전 태풍 '앳포카스(atfokasu; USA-Ko FTA를 거꾸로 조합함ㆍ편집자 주)'로 인해 큰 피해가 생기고 나서 그나마 있던 농지가 다 쓸려 가니 기다렸다는 듯이 농지에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어차피 자연재해에 무방비인 농업을 하느니 자연재해에도 끄떡없는 공장으로 바꾸자는 정부와 기업들의 주장이 비로소 먹혀들어갔다. 그래도 싼 농산물을 얼마든지 수입할 수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는 정부의 홍보를 철썩 같이 믿었다. 사실 한미FTA협상 이후 농산물값이 엄청나게 싸졌기 때문에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국산채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그러나 '앳포카스' 이후 세계적으로도 기상이변이 심해져 농산물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나라마다 자기 나라 국민 먹일 식량도 없다며 갑자기 수출량을 대폭 줄여버렸다. 지금껏 미국산 쌀, 호주산 쇠고기, 남미산 과일, 아시아산 채소를 사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우리나라는 졸지에 식량 문제가 가장 심각한 나라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20년 전 180만ha이던 농지는 이제 50만ha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나마 논은 20만ha이만 유전자조작벼를 심던 15만ha가 아직 정화되지 않아 5만ha 남짓한 논에서 생산하는 쌀을 1인당 5kg 정도씩 가을에 배급받는다. 이건 그야말로 특별한 날을 위해 아껴두어야 한다.

인구의 반 이상이 농민이었던 시절도 있었다는데 이제 100만 명도 채 안 되는 농민들이 그야말로 산비탈이나 외진 곳, 공장이 들어설 수 없는 땅에 조금 짓는 농사다 보니 국산채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다.

거기다 직거래 장터다 보니 가격도 시중에 파는 수입농산물보다 훨씬 싸 요즘은 이 채소시장이 가장 큰 인기다. 여전히 시중 농산물값에 영향을 받지 않고 생산비 기준으로만 파는 농민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1990년대 말부터 약 1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20만 이상의 도시민들이 귀농했다고 한다. 그들과 원래 땅을 지키던 농민들은 한미FTA에서 농업을 지키기 위해 전통적인 가족농·소농 방식을 고집하며 땅을 지켜왔다.

한 가구당 고작 2000평 남짓 농사를 짓다 보니 그렇게 생산량이 많지는 않다고 한다. 그래도 자신들이 먹을 걸 남겨두고 나머지는 이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인근 대도시에 와서 직거래장터를 열어 도시민들에게 판다. 그리고 한 사람이 사재기 못하도록 양까지 제한해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사갈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

▲ 2005년 쌀협상 비준안이 통과되는 날 국회 본관 앞에서는 '우리 농산물 지킴이' 행사가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부유층 상대 채소 암시장 성행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은 씨앗을 받아다 도시민들에게 집에서 채소를 길러 먹는 방법까지 알려주고 있다. 나도 1년 전에는 상추씨를 얻어다 집에서 나무상자를 구해 상추를 길러 먹었다. 올해는 씨 나눠주는 날 회사 야근이 겹쳐 씨를 얻지 못했다. 20년 전부터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암시장이 이젠 드러내놓고 장사를 하는 마당이니 그분들에 대한 감사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암시장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권력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이 암시장을 제 집 드나들 듯이 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정부에서도 이 암시장을 알고도 모른 척한다고들 한다.

암시장에선 쌀이며 고기며, 건어물이며 모든 게 국산이라고 표시를 해 놓고 시중 가격의 10배쯤에 판다고 하는데, 시중 농산물도 비싸서 쉽게 살 수 없는 우리 같은 월급쟁이들에겐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가끔 이 암시장에도 원산지를 속여 파는 농산물이 많다는 소문이 들릴 때면 한 편으로 있는 사람들 속는 모습을 상상하며 고소해할 때도 있지만 그것도 잠시, 속아도 좋으니 그 시장 한 번 가봤으면 할 때가 더 많다.

고춧가루가 '금가루'...값싼 중국산도 옛말

저녁 8시. 겨우 몇 가지 반찬거리를 샀다. 꼭 필요한 것만 샀는데도 1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상추 한 근에 5천원, 미역 한 다발에 1만원, 멸치 한 근에 4만원, 배추 2포기에 2만원, 콩나물 5천원어치를 샀다. 그리고 정말 큰 맘 먹고 쇠고기 100g을 2만5천원에 샀다.

직거래라고 해도 워낙 생산비가 비싸다 보니 아주 싼 값으로 사기는 어렵다. 그래도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는 30% 정도 싸기 때문에 우리에겐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집에 오는 발걸음이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밥다운 밥을 먹을 걸 생각하니 오늘 주위의 눈총에도 일찍 퇴근한 것이 갑자기 대견하게까지 느껴진다.

부랴부랴 저녁상을 차린다. 오늘은 장터에서 사온 멸치 몇 마리와 상추를 밥상에 올릴 수 있겠다. 고춧가루가 귀하니 김치는 꿈도 못 꾼다. 20년 전 한 근에 1만2000원 하는 유기농 고추도 비싸다고 야단이었다는데 이젠 그 몇 배인 10만원을 주고도 일반 고춧가루조차 구할 수 없다.

값싼 중국산 고춧가루란 말도 옛말, 이젠 중국도 자국 시장 보호를 위하여 고추를 쉽게 수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추에 간장과 고춧가루를 무슨 보물인 양 조금 뿌려 겉절이를 한다. 며칠째 밥만 달랑 놓여있던 밥상에 이 한 접시의 반찬과 가족 모두에게 몇 마리씩 나눠준 멸치만으로도 참으로 풍요로워 보인다.

▲ 한미FTA 협상 중단 집회를 벌이는 농민과 시민단체 회원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밥상을 차리면서 TV 뉴스를 본다. 뉴스를 보지 않으면 농산물 시세를 알 수 없다. 그때그때 변하는 농산물값 때문에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뉴스를 보다가 값이 내린 채소나 과일, 고기가 있으면 바로 동네에 있는 대형할인매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뉴스를 보는 사람이 나뿐 만은 아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기회를 놓친다. 오늘을 시세에 별 변동이 없다. 불행 중 다행이다. 오늘은 가족들이 느긋하게 저녁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밥을 먹으려는데, 20년 전 우리가 그토록 한미FTA 협상 타결을 기뻐할 때 그래도 끝까지 버티면서 미국과의 협상을 거부하던 먼 어떤 나라는 지금 전 국민이 자국농산물을 먹으면서 걱정 없이 산다는 소식이 나온다. 어쩐 일인지 밥이 껄끄럽게 느껴지면서 넘어가지 않는다. 이런 날은 어린 시절 밥에 넣어 쓱쓱 비벼먹던 된장찌개가 생각난다.

다음날 아침 6시. 오늘은 큰아이 10번째 생일이다. 작년에 배급받아 아껴 두었던 우리 쌀로 만든 밥에 미역국을 끓여 놓고 큰아이를 깨운다.

"일어나, 밥 먹어야지."
"엄마, 조금만 더 잘게요."

"안돼, 엄만 좀 있다 나가야 해. 오늘은 네 생일인데 가족이 함께 미역국에 밥 먹자."
"뭐? 미역국에 밥이라고?"

아이가 벌떡 일어나다 밥상을 걷어찼다.

"안돼!"

비명소리에 눈떠보니 낯선 곳이다. 여기가 어딜까?

한참 주위를 둘러본다. 아, TV에서 한미FTA 협상을 저지하기 위한 시위 장면이 나오고 있다. 그럼 지금까지 꿈이었나. 정말 다행이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서. 정신 차려야겠다.

한미FTA가 우리에게 보랏빛 미래가 될 수 없다. 오늘 아침 밥상에 올라온 된장찌개와 김치가 이렇게 반가울 수 없다. 이 행복을 뺏기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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