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을 다룬 영화가 개봉될 때 조직폭력배에 대한 미화여부가 논란이 되곤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왜 한국에서는 조폭영화만 주로 나오고 그 밖의 다른 액션영화들은 잘 안 나올까'에 대해 다룬 글은 드물다.

이 글의 목적은 조폭영화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폭영화가 나오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즉 액션이 관건이 되는 영화장르가 부족한 우리 현실에서 조폭영화가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조폭영화가 많은 게 문제가 아니라, 액션영화 장르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상대적으로 액션 블록버스터물이 많이 나오는 할리우드와 우리 영화를 비교해 보는 작업을 해보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조폭영화가 자주 나오게 되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하나 나온다.

한국영화, 슈퍼히어로물 부진... 볼거리 주는 유명스타의 악역 필요

 수퍼맨과 대적하는 렉스 루더역의 케빈 스페이시. 공동체의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가 곧 '악당'이다.
ⓒ warnerb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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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할리우드 액션영화는 '절대 선'과 '절대 악'의 대결구도를 바탕에 깐 영화들이 많다. 수많은 <수퍼맨>, <스파이더맨>, <배트맨> 같은 슈퍼히어로물들이 그렇다.

이때 슈퍼히어로들 만큼이나 슈퍼히어로를 괴롭히는 악당 역을 할리우드의 유명스타가 맡아서 한다. 이에 비해 슈퍼히어로 역은 상대적으로 신인이나 비중이 낮은 배우들이 맡는 경우가 있다. <배트맨>에서 배트맨 역의 마이클 키튼과 조커 역을 맡은 잭 니콜슨, 그리고 최근의 <수퍼맨 리턴즈>에서 수퍼맨 역의 브랜든 라우스와 렉스 루더 역의 케빈 스페이시가 이런 경우이다.

사실 한국 영화계에서 활성화가 되지 않은 대중영화 장르가 바로 이 슈퍼히어로물이다. 국민배우로 일컬어지는 안성기씨가 평생에 해본 악역이라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의 장성민 역 밖에 없는 것도 바로 슈퍼히어로물이 부진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슈퍼히어로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만화영화 <마루치 아라치>나 <전자인간 337>같은 작품들은 크게 보아 슈퍼히어로물에 포함시킬 수 있는데, 문제는 이 작품들이 영화로 다시 만들어지지 않고 그냥 만화영화로만 머물고 있다.

사실 슈퍼히어로물은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그것을 영화화한 것도 크게 보면 '아동영화'라는 범주에 넣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영화에서 또 잘 만들어지지 않는 장르가 바로 '아동영화'이다. 물론 <집으로>와 같은 아동이 주인공인 영화가 나오긴 하지만 <스파이 키드>같은 영화는 잘 안 나온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아동영화' 장르에서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여주는 영화는 심형래 감독의 영화들이다. <우뢰매> 시리즈나 <영구> 시리즈 같은 것을 어떻게 발전, 변화시킬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해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우리 영화, '절대 선'과 '절대 악'의 대결 폭이 좁다

 <인디애나 존스>의 한 장면.
ⓒ Paramount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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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선'과 '절대 악'의 구분에서 할리우드는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있다. 세계 현대사에서 미국은 나치독일을 무찔렀고, 공산주의 소련과 맞섰고, 국제 테러리스트들과 싸웠다. 그래서 스파이물이나 스릴러물에서 절대 악의 범주에 넣을 만한 '악당'들이 한국보다 많다. 심지어는 가상의 전 세계적인 악당도 설정할 수 있고, 영향력이 막강한 부패한 거대기업이나 군·산 복합체, 심지어는 자국 내 첩보기관의 부패한 세력도 절대 악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대중영화에서 절대 악의 범주에 넣을 만한 것은 공산주의 북한과 일본 제국주의 두개 밖에 없었다. 그나마 남북 화해무드 속에서 북한은 절대 악의 범주에서 벗어나 수많은 코미디 영화에서 희화화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한국 군대에 무기를 납품하는 군·산 복합체의 비리를 캐거나, 쿠데타를 기도하는 부패한 정치세력, 뭐 이런 세력들이 등장하는 한국영화를 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한국영화에는 절대 악으로 상정할 만한 세력이 마땅치가 않다.

오히려 절대 선과 절대 악을 상정하기보다는, 등장인물이 악한이 되는 것은 '천성은 착하지만 그가 처한 상황 때문에 그렇게 된다'는 설정이 더 많다. 그리고 '비록 악한이 되긴 했지만 나름대로 순정이나 착한 구석이 있게 마련'이라는 류의 이야기가 많다.

이런 절대적인 악과 싸우는 미국의 주인공들은 딱히 미국에서만 이들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나라에까지 가서 악과 대결한다. <인디애나 존스>, <미션 임파서블>, <툼레이더>, <본 수프리머시>, <패트리어트 게임> 같은 영화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고고학적 탐사라는 이름하에 남의 나라 유물을 파내서 가져와 본 적도 없고, 악당이 그의 연인을 납치해서 지구 반대편까지 끌고 갈 정도로 그렇게 대단한 스파이도 없다. 이는 전 세계를 상대로 정보전을 펼쳐본 경험도 별로 없고, 한 번도 제국주의 국가였던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류의 이야기를 만들기 어렵다. 우리의 의식 자체가 동북아, 특히 남북관계 중심의 한반도에 국한되어 있어서 그런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는다.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를 보면 과거에 인기가 있었던 텔레비전 시리즈들을 영화판으로 리메이크하는 경우가 있다. <찰리스 엔젤>, <스타스키와 허치>, <미션 임파서블>, 그리고 곧 나올 <마이애미 바이스>가 이런 범주에 든다.

이 작품들은 결국 미스터리물이거나 아니면 형사물들이다. 한국 텔레비전에서 가장 성공한 수사물은 <수사반장>인데, 이를 영화화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사실 <수사반장>에 버금갈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수사물도 없었다. 그런 수사물은 아니지만 수사물의 성격을 뗬던 <암행어사>는 왜 다시 영화로 안 만드는지 모르겠다. 사실 강제규 감독의 <쉬리>가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이미 오래 전에 없어진 <113수사본부>류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이야기의 소재 폭이 좁은 한국영화... 주로 내용이 '실패담' 속편 기대 어려워

 공공의 적 포스터.
ⓒ 시네마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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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또 하나의 특징 중 하나는 대다수 영화들의 내용이 실패담이라는 점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대체로 성공담이 많다. 성공담이기 때문에 야기되는 것 중 하나는 속편을 기획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에 비해 한국영화의 주요 걸작들은 실패담인 경우가 많다. 주인공의 실패와 좌절, 또는 죽음에서 관객들은 짙은 느낌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가벼운 오락영화 속편으로 기획하기는 어렵다.

속편이 가능했던 경우는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인데, 그것은 1편에 나온 강철중의 캐릭터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더티 해리>시리즈의 해리 캘러한과 비견될 만한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영화가 될 만한 이야기의 소재 폭이라는 것은 결국 그 영화를 낳는 문화권의 제약을 받기 마련이다. 한국은 한 번도 다른 나라를 내 집 드나들 듯이 하는 제국주의 국가였던 적도 없고, 우주개발을 위해 뛰어들어 외계인들과 만나는 꿈을 꿔본 적도 드물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상상하는 경우가 무척 드물고, 또 그렇다고 해도 그럴듯하게 만드는 경우도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액션을 집어넣을 수 있는 장르는 조폭영화나 형사영화, 그리고 과거를 배경으로 한 무술영화인 것이다. 그나마 조폭영화와 형사영화는 등장인물이 결국 형사와 조폭이라는 점을 보면 외관상 두 장르는 무척 흡사하다.

아울러 조폭영화는 코미디영화와 결합되어 <두사부 일체>나 <가문의 영광>, <조폭 마누라> 시리즈같이 관객동원에 성공하게 되었다. 코미디영화와 결합된 형사영화는 <공공의 적>과 <투캅스> 정도이다.

사실 한국영화의 연평균 생산량은 80편 정도인데, 이 정도 생산량을 가지고 수백 편 넘게 제작, 발표하는 할리우드에 비견될 만한 장르적 다양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간간이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나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같은 독특한 작품들이 생산되곤 하는 것으로 봐서 한국영화가 생산량에 비해 그렇게 단조로운 것은 아니다.

당분간은 한국영화가 만들지 못하는 액션 블록버스터는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아쉽지만 우리 조폭영화나 형사영화, 무술영화를 보면서 누구나 공감할 만한 우리만의 새로운 대중영화, 새로운 액션영화가 나오기를 기대해 보자.

덧붙이는 글 노광우 기자는 뉴욕대에서 영화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01년부터 뉴욕한국영화제를 위해 일했습니다. 현재는 서던 일리노이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이 글은 필자의 사이월드 미니홈피와 시네21 블로그 '사과애'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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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영화보고 책보고 글쓰고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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