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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병아리와 어미닭
ⓒ sigoli 고향
봄날 노란 병아리 보는 기쁨

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동물이 뭘까? 염소? 아니다. 토끼는 조금 가까워졌다. 하지만 이도 아니다. 태어나자마자 걸어 다니는 긴 다리의 송아지나 망아지도 아니다.

닭이다. 아니 닭이 낳은 병아리다. '뼝아리'나 '삥아리'라 불렀던 앙증맞은 노란 '달구새끼'다. 병아리를 손에 올려 만지작거리며 골똘히 쳐다보면 정말이지 눈물이 날 것 같다. 귀여워서 죽는다.

작은 발이며 솜털보다 더 보드라운 털하며 가녀린 부리마저 눈에 넣고 싶다. 날개도 없는 것이 쪼르르 제 어미를 따르며 바닥을 후벼 파는 시늉을 하거나 곡곡 모이를 쪼는 짓이 그렇고 담장에 제들 마냥 쏙쏙 고개를 드미는 새싹을 뜯는 모양새가 더없이 복스럽다.

깔따구와 씨름하노라 앙감질을 하고 세상에 나온 지 며칠도 안 된 놈들이 형아들 싸움박질 흉내를 내노라면 난 도저히 자리를 뜨지 못한다. 게다가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쳐다보는 맵시는 천사 그 자체다. 아기천사다. 봄바람에 사르르 떨리는 털은 뒷전이고 아해들 넘어질까 걱정이 앞선다.

요때 제 어미인 암탉은 잔뜩 독을 품고, 누군가 자기 새끼를 데려가기라도 할라치면 푸다닥 날아 할퀼 태세다. 스무 하루 동안 날마다 모이를 주고 물을 떠다 둥우리 앞에 갖다 바쳐도 요년이 제 새끼만 중한 줄 알지 안면몰수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발칙한 것이 봄을 맞아 새 깃으로 갈아입는 속털까지 치켜세우고 눈을 부라리고 쪼려하니 낸들 감히 함부로 하질 못하고 때론 쩔쩔매고 더러는 살살 구슬려도 본다. 어디 그뿐인가. 담배 한 대 참만 병아리를 빌려달라고 아쉬운 듯 애걸복걸도 해봤다.

그리하여도 작대기를 들고 있던 내가 늘 참아주었던 건 당해낼 재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당분간은 애들을 돌봐줘야만 한 여름 요긴하게 날 수 있음이다. 평소라면 마당은 물론이거니와 마룻바닥에 닭똥을 찍찍 깔겨대니 닦아도 고약한 냄새 쉬 가시지 않고 닥닥 눌러 붙어 있으면 환장에 기절초풍이다.

허나 어쩌랴 먹을 게 없기도 했지만 사다 먹을 처지도 아니고 쫄깃하고 씹을수록 참즙이 진한 것을. 두엄자리를 요절을 내놓아도 다리몽둥이 부러뜨리지 못하는 까닭이다.

▲ 곧 털갈이에 들어갈 예쁜 잿빛 토끼 눈이 유난히 빨갛다.
ⓒ sigoli 고향
둥우리 만들어 달걀 넣어주고 스무 하루를 보살폈던 소년

종자로 쓸 볍씨는 씨나락이다. 병아리를 부화하려면 수탉 한 마리에 적어도 너덧 마리 씨암탉을 남겨뒀다. 동짓달엔 몇 마리 사람뿐 아니라 싸가지 없는 쌀가지 살쾡이와 고양이가 서리한답시고 축내니 여유롭게 남겨둬야 설날 한 마리 잡아 상에 올린다.

이제 정말 살림 규모에 따라 두엇이거나 서넛이다. 알을 낳는 족족 아버지께 비리지도 않은 날달걀을 이로 톡톡 깨서 드시라하고 얼지도 그렇다고 너무 뜨겁지도 않은 광에 하나 둘 모아나가면 스무 개, 마흔 개, 예순 개 쌓인다. 꿩알만큼 작고 오래된 두어 개를 깨서 휘휘 젓고 밀가루 풀어 뒤섞어 온 식구 두 숟가락씩 먹는 겨울이 참으로 행복했네라.

그리하야, 정월도 보름이 지나고 이월 초하루 하인들에게 공손히 대접하던 '하드렛날'이 다가올작시면 암탉도 달라진 계절이 풍기는 공기를 느끼며 하루 이틀 알 낳기를 게을리 하니 이 때가 비로소 알을 품을 적기다.

▲ 둥우리에 유정란 달걀을 열댓개에서 스무개 남짓 넣어주면 꼭 스무하루 만에 부화한다.
ⓒ sigoli 고향
아버지와 어린 나는 짚으로 만든 닭둥우리를 꺼내고 없으면 부랴부랴 새 둥지를 만든다. 바닥에 짚을 움쳐 깔고 박 바가지에 담아온 달걀을 깨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깔아놓으면 본능의 동물 씨암탉이 깊은 뜻을 품고 엉덩이를 쓱쓱 흔들며 자리를 잡는다.

어떤 처자는 서너 날 앞서 에디슨소년처럼 빈방에 신접살림을 차리듯 웅크리고 있기도 했다. 드디어 첫날이 지나고 닷새까지는 요지부동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음침한 광에 둥우리가 두 개, 정지 나무청에 또 하나, 닭장 위 헛간에 올리고 엇가리를 씌워야 쥐새끼들이 드나들 일이 없이 스무날 하고도 하루를 무사히 넘길 수 있다.

휴식 차 나와서 일을 보고 햇볕을 쬐노라면 쌀을 한줌 오복이 쏟아주고 다른 닭은 얼씬거리지 못하게 한다. 모시를 콕콕콕 찍어 먹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둥우리가 있는 뒤뜰 광에 갔다. 달걀이 따뜻하다. '몇 마리나 깰까? 스물두 마리 다 나올까? 아니지 몇 갠 아예 깨어나지 못할지도 몰라.'

어린 난 행여 배고파서 둥지를 나와 복귀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루 두세 번은 최고급 영양식 싸라기와 맹물을 갖다 바쳤다.

"엄니, 쩌건 맨날 밖에 나와서 들어갈 줄 모르요."
"삥아리 까기는 틀렸는갑다. 나돌아 댕길 줄만 알지 성격이 온순하지가 않아서 안 될 것이여."
"글면 어쩌끄라우?"
"며칠 둬봐. 다 수가 있응께."

끝내 잿빛 깜순이는 제가 품고 있던 달걀껍질 세 개를 쪼아서 쪽쪽 빨아먹고는 밖으로 나와 날이면 날마다 마당을 후벼 파고 놀기만 했다.

안되겠다 싶어 싸늘히 식어가는 아직은 미지근한 온기가 남아 있는 달걀을 옆에 있는 암탉이 바깥바람을 쐬러간 사이 넣어주었다. 처음 스무 개씩 넣어줬으니 몇 개만 더 건져도 어디인가?

▲ 둥우리 하나도 정성들여 멋지게 짰던 그 시절. 우린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 sigoli 고향
껍질 깨고 나오는 생명을 보았다

열이레 쯤 지났을까 암탉이 무척 수척해졌다. 나는 "구-구-" "꾸~구~" 부르지를 않고 마루에 신발을 신은 채 얼른 쌀뒤주가 있는 광으로 달려가 맵쌀을 양손에 들고 나와 또 오복이 쏟아주었다.

'콕콕 코고곡 콕콕' 땅을 찍으며 모래까지 야무지게 먹는다. 다른 닭이 와서 빼앗아 먹을까 한 톨도 남지 않을 때까지 지키며 '오냐, 넌 큰일헝께 많이 묵어라. 내가 밥 두어 숟가락 줄이면 되잖녀'하고 어서 먹으라고 용기를 불어넣어줬다. 곧 몸을 추슬러 둥지로 향한다.

날수가 쌓일수록 닭다리가 더 굵어보였다. 열아흐레를 넘기고 스무날이 되던 날까지 달력에 날짜를 지워나갔다. 틀림없이 스무날 째다. 아침밥을 먹기 전부터 세상에 이보다 더 사나울까 싶게 변해버린 암탉 주변에 슬그머니 다가가 숨을 죽였다.

귀를 쫑긋 세우고 무슨 소리라도 나는지 한 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래 한 마리는 벌써 깼나보네. 또 없을까.' 모기소리보다 가늘게 "속속 쏙쏙"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갓 깨어난 병아리는 어미젖을 빨 것처럼 쏙닥거린다.

"엄마, 엄마."
"아직부터 왜 그려? 뭔일 났냐?"
"아니, 고것이 아니고라우 삥아리 소리 들렸당께요. 고것도 두 마리나 들렸당께라우."
"하마, 오늘은 텨져 나올 것이여, 지기 아부지 스무날째제라우?"
"하믄."

밥숟갈이 손에 잡힐 리 없었다. 안절부절 못하기는 처음이다. 어른들이 송아지 나올 날을 꼽는 것보다 더 속이 탔다. 밥을 먹자마자 평소 제일 아끼는 노란바탕에 까만 줄무늬가 있는 닭에게 갔다. 오늘부터 하루 이틀 사이에 웬만큼 깨고 나오니 5분대기조라도 된 듯 옆을 떠나지 않았다.

▲ 삐약삐약 어서 나오너라. 봄 다 됐다. 봄나들이 가자.
ⓒ sigoli 고향
그때였다. 절호의 찬스였다. 암탉이 엉덩이를 씰룩쌜룩 거리더니 살며시 둥우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온다. 멀찌감치 비켜서 있다가 어미가 마당 쪽으로 간 사이 들여다봤다. 그새 깨어난 것까지 다섯 마리다. 나머지는 일부가 균열이 되어 금이 선명하다.

제들끼리 키 재기를 하는 병아리 두 마리를 손에 올려 보았다. 진짜 뭐라 말하지 못할 기쁨이었다. 곧 돌아올 테니 자리를 비켜주기로 했다. 괜스레 침입자로 오해받으면 요년에게 얼마나 할퀼지 모르잖은가.

곧 돌아와 밟히지 않게 앉는다. 먼저 깬 병아리는 겨드랑이 사이와 성긴 털 사이로 뾰쪽뾰쪽 고개를 내밀며 "쪽쪽" 거린다. 한 시간쯤 뒤에 또 어미닭이 일어섰다. 밖으로 나올까 싶었는데 부리로 조심조심 콕콕 알을 쪼아주니 한꺼번에 여섯 마리가 나왔다.

이제 11마리나 된다. 이런 과정을 몇 번 더 하고 나니 세 개를 제외하곤 해질 무렵엔 다 껍질 밖으로 나왔다. 다음날 따스해지자 둥우리째 들어 밖으로 옮기며 보니 한 개는 애초에 곤달걀이었고 두 마리는 털이 밖으로 삐쳐 나온 걸로 보아 발생초기 문제라기보다 마지막에 숨통이 막힌 듯했다.

▲ 그 시절 전형적인 닭장. 위에 걸린 건 한 무리 닭을 가둬 침입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엇가리이다. 위에 꾹 돌을 눌러준다.
ⓒ sigoli 고향
아버지와 나는 곤달걀 잔치를 벌였다

세 개를 모으고 다른 데서 다 모아보니 열두어 개다. 아버지는 오래된 양재기에 물을 붓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삶고 계셨다. 처음에 난 아버지가 삶아서 돼지밥이나 누렁이에게 줄 생각이신 줄 알았다. 찬물에 헹구더니 정지바닥에서 판을 벌이셨다.

"한 번 묵어볼텨?"
"뭔디라우?"
"곤달걀이다."
"닭다리랑 털이 다 있는디라우?"
"글도 묵어봐. 소곰 찍으면 냄시도 안 난다."
"아이구 징그러워. 아부지 드싯쇼."
"털 없는 것으로 먹어라."

오래 되거나 평평한 방바닥에 또르르 굴려봐서 곧장 멈추는 곯아빠진 달걀을 곤달걀이라 한다. 어떨 때는 곤달걀만 열댓 개에서 스무 개 삶아서 먹어보긴 했어도 이렇게 털복숭이 시체를 먹는다는 것은 불쌍함을 떠나 여간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아버지는 소주를 두어 잔 따르면서 비위도 좋게 털을 솔솔 뽑고 죽지와 다리를 찢었다. 아직 살이 덜 된 노른자는 핏줄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가리지 않고 날고기를 잘 먹었던 나는 아예 생명과는 무관한 푸르스름하면서 거뭇한 달걀 2개를 먹고는 말았다.

▲ 병아리를 깐 어미닭은 사납기가 어떤 동물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림도 잔뜩 성이나 있다.
ⓒ sigoli 고향
한 가족은 스무 마리, 또 한 가족은 열일곱 마리다. 새댁 씨암탉 가족 둘은 각각 여덟 마리밖에 되지 않는다. 노란병아리, 노란바탕에 갈색점이 박힌 병아리, 흰병아리, 까만병아리, 줄무늬병아리지만 거의 노랗다. 꺼병이를 닮은 놈도 있다.

3월 초 따스한 봄볕이 내리쬐고 있는 마당엔 대가족을 거느린 옹골진 암탉으로 가득했다. 겨우내 조용했던 마당 깊은 집엔 생기가 돌았다. 네 가족이 알아서 각각 구역을 차지하고 어미는 먹이를 물어다 주고 병아리는 그걸 서로 빼앗아먹느라 여념이 없다.

닷새 뒤였을까 벌써부터 수탉은 암탉 주위를 맴돌았지만 콧물도 없었다. 며칠 있으면 생존경쟁에서 몇은 도태되어 고개를 떨구게 될지 모르지만 봄은 언제나 탄생하는 계절이라 좋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을 보면 그 시절 병아리가 왜 이리 자꾸 생각이 나는 걸까? 이제 아무 걱정 말고 병아리야 어서 나오너라. 아, 참을 수 없는 향수여! 내년부턴 좋은 종자를 골라 닭을 기를까보다.

▲ 병아리 털이 보숭보숭 애처롭도록 부드럽지만 시장에 나오느라 많이 지쳐있다.
ⓒ sigoli 고향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 여행 함께 떠나시지요. 이 기사는 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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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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