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해당 연구자료를 통해 화룡, 용정, 연길을 가로 지난 1000여 년 전 옛 고구려장성이 용정시 구간에서 원 팔도진 서북쪽을 에돌았고 구수하를 건너 쌍봉촌으로 해서 평봉산으로 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고구려장성이 잘 보존되었다는 성벽구간이 어딘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 일을 두고 고심하다가 일전에 연길에서 팔도출신의 용정 황상박 선생과 얘기를 나누었더니 팔도땅엔 옛 장성흔적이 수두룩하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체면불구하고 70고개를 눈앞에 둔 황상박 선생한테 길안내를 부탁드렸다.

1월 24일 오전 9시, 필자는 약속대로 연길시 서시장 뻐스역에서 황상박선생을 다시 만났다. 우리를 태운 택시는 반시간만에 연길서 서쪽으로 23킬로미터 떨어진 팔도진에 이르렀다. 현재는 용정시 조양천진에 귀속된 팔도촌이었다. 헌데 황상박선생은 팔도~삼도만 갈림길에서 북으로 2킬로미터쯤 떨어진 쌍봉촌으로 택시를 안내하였다.

“옛 성벽이 잘 보존되었다는 구간이 길성저수지 부근이 아닙니까?”
“글쎄 가보면 안다니까!”

황상박 선생은 사람 좋게 시물시물 웃을 뿐이었다. 잠간 새에 우린 큰 길가 비둘기바위 동쪽가 쌍봉촌에 이르렀고 황 선생의 소시적친구 한재운씨가 반가이 맞아주었다. 알고보니 사전에 전화연계가 되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는 황선생의 소행이 고맙기만 하였다.

한재운씨는 1937년 생으로서 황상박 선생보다 한해 위였다. 황 선생과 더불어 팔도소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는 한재운씨는 1969년부터 1980년까지 쌍봉촌 회계, 1980년부터 1984년까지 회계에 촌장, 1984년부터 팔도진 경영관리소 회계,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쌍봉촌 촌지서로 몸을 잠가 온 경력자였다. 한씨는 황 선생을 통해 답사사연을 알았다면서 옛 장성 흔적이 이곳엔 여전하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곤 군소리 없이 필자와 황 선생을 북쪽 산너머로 통하는 부암골 길가로 안내하였다.

날씨가 무척 수그러들었다지만 부암골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은 여전히 맵짰다. 방한모도 쓰지 않고 엷은 옷차림인 한씨는 가끔 두손을 귓가로 가져갔다. 그러는 모습이 안스러워 필자가 옛 장성구간만 가리켜 달라고 했더니 한재운씨는 마을 뒤 동북쪽 산기슭을 가리키며 저기 밭지경에 보이는 도드라진 부분이 옛 말무덤자리라고 했다. 시야에는 봉긋하게 솟은 흙무덤이 안겨들었다. 보매 2~3리(1리가 500미터)가량 되여 보이었다. 마침 황상박 선생도 신병에 시달리는 몸이라 필자는 두 분을 만류하고는 단신으로 답사행에 나섰다.

말무덤으로 이어진 개울가 오른 쪽은 시골의 밭이었다. 금방 밭머리에 들어섰는데 밭가운데 길이가 200~300미터 되어보이는 도드라진 흙무지가 동쪽으로 곧추 말무덤까지 뻗어있었다. 필자는 대번에 옛 장성 흔적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밑변의 길이 3메터쯤 되고 높이가 한두자쯤 되여도 옛흔적은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벌써부터 필자는 흥분에 들떴다.

말무덤에 이르니 길이가 10여m, 너비가 10m 안짝인 흙무덤이 덩실하게 솟아있었다. 높이는 불과 몇 미터에 지나지 않았지만 서쪽 구간 단면으로 보아 생땅이 아닌 인위적축조라는 것이 알리였다. 타원형으로 남아있는 말무덤에는 누군가 드릅나무를 심어놓아 드릅나무가 말무덤을 온통 덮고 있었다. 전혀 관리와 중시가 따르지 않은데서 말무덤의 현실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말무덤에는 돌들이 가끔 섞이었는데 서쪽 면은 파헤친 흔적이 역연하여 보는 이들의 가슴을 허비었다.

어찌하든 말무덤의 발견은 충격적이었다. 길성저수지 부근이 아닌 쌍봉촌 구간에서도 옛 장성 흔적이 발견되고 말무덤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경이로운 사건이 아닐수 없었다. 필자를 보다 흥분시킨 것은 말무덤아래 밭가운데를 가로 지른 옛 장성 흔적이 말무덤을 지나 동쪽 이깔나무 숲사이로 계속 뻗어갔다는 점이다. 한 500미터쯤은 되여 보이었다. 오늘은 전면 답사가 아닌 사전의 고찰이고 마을에서 황상박 선생이 기다리는데서 돌아서야 함이 유감이라 할까.

아쉬운 대로 후일 답사로 미루고 떠나려는데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질 않았다. 이때 말무덤 윗쪽 수림쪽에서 웬 사람 하나가 내려오더니 생소한 필자를 기이하게 바라보았다. 당지 농민 같아 필자는 다가가 말을 건네였다.

"이곳 분이십니까?"
"그런데요."

낯선 사람의 시선은 의문에 넘쳐 있었다. 때 아닌 산기슭에 웬 사람이냐는 뜻이였다. 필자는 인차 낯선 사람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저는 연길에서 왔는데요. 황상박 선생이 동행했고, 저 아랫마을에서 기다립니다. 혹 황 선생을 아시는지요?"
"오, 알다 뿐이겠습니까, 너무도 잘 알지요."

그제야 낯선 사람의 의문의 눈길은 풀리고 필자를 반가이 대해주었다. 황상박이라는 존재는 이렇듯 우리 사이를 대번에 가까이 만들어 주었다.

황상박 선생은 1938년생이고 연길현으로 불리운 용정시 원 팔도진 팔도촌 수북천 출신으로서 1958~1974년 팔도향(그때는 향이였음) 우편배달부, 1974~1981년 향서점의 도서발행원, 그다음은 1998년에 정년퇴직하기까지 용정시 방송국의 기자로 근무했었다.

한 때는 연변조선족자치주와 길림성 로동모범, 전국 선진생산자이고 과외로 문학창작활동을 반세기나 꾸준히 펼쳐온 시인으로서 지난 80년대 이전시기를 거치어온 팔도사람들은 황상박이라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낯선 사람도 마찬가지었다. 뒤미처 필자가 말무덤을 찾은 연유를 이야기하고 옛장성 흔적이 말무덤 윗쪽에도 계속 뻗었더라고 소감을 터놓으니 옛 장성은 이 구간 뿐이 아니라면서 주동적으로 필자를 말무덤 윗 구간에로 안내하였다.

덧붙이는 글 | 리광인 기자는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학술 교류부 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