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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장주식을 1년 이상 보유하고 있기만 하면, 액면가액 3억원까지는 배당소득에 대하여 비과세(5000만원 이하) 또는 저율과세(5000만원~3억원)의 혜택을 볼 수 있다.(자료사진)
ⓒ 연합뉴스 최재구
세금의 생명은 '형평성'이다. 기부금과 달리 세금은 자발적으로 내는 게 아니다. 따라서, 누구한테는 걷고 누구한테는 안 걷고(또는 누구에게는 경제력에 비해 많이 걷고 누구한테는 적게 걷고) 하면 반드시 반발이 따르게 마련이다.

비과세(非課稅) 감면(減免)은 원칙적으로 거두어야 할 세금을 안 걷거나 깎아주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비과세감면은 대대수의 국민이 동의할 정도로 타당성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인정해주는 것이 맞다.

2005년도 비과세감면으로 새어나가는 돈은 약 20조원으로 국세의 14.5%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 누가 들어도 고개를 끄떡거릴 만한 부분이 얼마나 될까?

1. 핑계는 서민에게 실속은 부자에게

서민에 대한 저축지원의 명목으로 장기저축성보험, 세금우대종합저축 등 특정 금융상품의 이자나 배당에 대한 비과세감면으로 2004년도에 약1조2000억원의 세금이 새어나갔다.

장기주택마련저축 1200만원 : 비과세
장기증권저축 5000만원 : 비과세
장기주식형저축 8000만원 : 비과세
근로자주식저축 3000만원 : 비과세
조합등예탁금 2000만원 : 저율과세
세금우대종합저축 4000만원 : 저율과세
계 2억3200만원

위는 32평형 아파트 1채를 소유한 평범한 월급쟁이가 당장 비과세감면의 혜택을 볼 수 있는 금융상품을 보여주고 있다. 2억원 이상의 현금(부부 개별명의로 할 경우 1세대당 4억원 이상)을 갖고 있더라도 재테크 상담만 제대로 받으면 이에 대하여 전부 세제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상장주식을 1년 이상 보유하고 있기만 하면, 액면가액 3억원까지는 배당소득에 대하여 비과세(5000만원 이하) 또는 저율과세(5000만원~3억원)의 혜택을 볼 수 있다. 액면가액 기준으로 3억원이므로 시가 기준으로는 이보다 더 크다. 예를 들어, 5000원 액면가의 삼성전자 주식의 시가는 2월 13일 현재 67만원이 넘는다. 삼성전자 기준으로 보유액 400억원까지는 배당소득에 대하여 비과세 또는 저율과세의 혜택을 본다는 결론이다.

더욱 더 심각한 것은 장기저축성보험에 대한 비과세이다. 계약기간이 10년 이상인 저축성보험의 보험차익(수령하는 보험금 - 납입한 보험료)에 대하여 이자소득세를 비과세하고 있는데, 고액재산가가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상으로는 중산층 및 근로자의 재산증식을 돕는다는 이유로 각종 금융상품에 대하여 비과세감면의 혜택을 주고 있지만, 그 폭이 너무 커 실제로는 금융자산가가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금융소득종합과세마저 무력화시키고 있다.

'핑계는 서민에게, 실속은 부자에게'

금융상품에 대한 세제혜택이 부자들에게 이용당하는 면도 있지만, 중산층 및 서민에게 혜택이 되는 면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신용불량자는 300만명이 넘는다. 그들에 비하면 몇천만원을 저축할 수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여유롭다. 예산부족을 이유로 신용불량자 구제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금융상품에 대한 이러한 폭넓은 세제혜택이 정당한 것인지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서민들의 쌈짓돈에도 세금이?' 금융상품에 대한 비과세감면을 정리하자는 주장에 대한 보수언론의 예측되는 반응이다.

2. 세금을 깎아주면 사회적 약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 농어민에 대한 지원을 목적으로 현재 농어업용 석유류에 대하여 교통세 및 부가가치세를 면세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불법 유통하는 사례가 자주 적발되고 있다.(자료사진)
ⓒ 안현주
지난 2004년 5월 7일 집회 도중 택시노동자 한명이 분신했다. 그동안 택시노동자의 복지에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 택시회사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50% 감면해주고 있었는데, 택시 회사 측에서 이 감면액을 부당하게 사용했다는 게 주요 이유다. 세금만 깎아주고 당국에서 사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다.

몇 달간의 택시운전 경력을 갖고 있는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이 양대 택시노조의 지원을 업고 택시노동자의 복지를 위해 총대를 메고 나섰다. 택시용 LPG에 대한 세금을 없애는 세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택시용 LPG에 대한 세금을 없애면 택시노동자에게 혜택이 돌아올까?

택시용 LPG에 대한 세금을 없앨 경우 택시업계에 돌아가는 추가적인 혜택은 약 2400억원이 된다. 이 중 1200억원 정도는 개인택시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1200억원이 회사택시에 돌아간다. 택시용 LPG에 대한 세금을 없앨 경우 LPG 가격이 싸진다는 게 혜택이다. 따라서, LPG 연료비를 택시노동자가 부담하는 경우에는 택시노동자에게 혜택이 돌아가지만, 회사에서 연료비를 부담하는 경우에는 회사의 이익으로 돌아가게 된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22조에 의하면, 운수사업자는 운수종사자가 수령하는 요금을 전액 납부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택시회사가 택시노동자로부터 수입금액 전액을 납부받고 연료비 등 운송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함을 의미한다. 결국, 이 법을 어기고 도급제(매일 일정금액의 사납금을 받고 모든 운송비용을 택시노동자에게 부담시키는 제도)로 운영하는 경우에만 택시노동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농어민에 대한 지원을 목적으로 현재 농어업용 석유류에 대하여 교통세 및 부가가치세를 면세하고 있다. 이로 인해 2004년에 약 1조5000억원의 세수가 감소되었다. <동아일보>는 지난 2월 9일자 기사를 통하여, 한 유류도매업체가 수산업협동조합의 전현직 간부와 짜고 50억원 어치의 면세유를 불법 유통시키다 붙잡혔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언론을 통하여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는 1조5000억원의 세수감소분 중 상당부분이 불법 면세유로 인해 새어나간 것임을 알려주는 사건들이다. 그럴 바에야 1조5000억원의 세금을 다 거두어 농어민을 위한 지원에 직접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세금 깎아서 사회적 약자를 도와준다는 것이 실제로는 새어나가는 세금만큼 그 효과를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장은 계속 호응을 얻고 있다. 세금에 대한 막연한 반감 때문일까?

3. 비과세감면의 원칙을 세우고 과감히 정리해야

각종 비과세감면 조항을 모아놓은 조세특례제한법이라는 세법이 있다. 각 개별세법은 과세의 원칙과 기준을 말하지만, 조세특례제한법은 그에 대한 예외사항을 말하는 세법으로서 꼬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법이 세법 중에서 가장 내용이 많고 복잡하여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조세특례제한법에 규정된 그 많은 비과세감면 조항을 따져보면, 원칙이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원에 대한 이익집단의 청원과 로비에 의해 이루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조세특례제한법 제87조의5는 선박투자회사의 주주에 대한 세제혜택을 규정하고 있다. 선박투자회사의 주주가 양도하는 주식에 대하여 양도소득세를 비과세하고, 주주가 받는 배당소득에 대하여도 비과세 또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배제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유독 선박투자회사의 주주에 대하여만 이러한 광범위한 혜택을 주어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는 찾을 수가 없다.

개별세법에도 이와 유사한 조항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가 있다. 특별소비세법에서는 폐광카지노 입장에 대한 특소세를 5만원에서 3500원으로 대폭 감면해주고 있다. 강원랜드로 인하여 과열된 도박문화가 사회문제가 되는 시점에서 이들에게 특소세 감면 혜택을 주어야 할 이유는 없다. 소득세법에는 기자의 취재수당과 초중등 교사가 받는 연구보조비 등에 대하여 비과세하고 있다. 특정 직업에 대하여만 비과세 해주어야 할 합리적인 이유 역시 찾을 수가 없다. 법인세법에는 기관투자자가 상장회사로부터 받는 배당에 대하여 비과세해주는 특혜를 주고 있다.

합리적 이유 없이 새어나가는 세금이 여기저기 너무 많이 숨어 있어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것들을 하나씩 거론하다보면 이미 기득권화된 이해집단의 반발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사실상 대응하기가 불가능해진다.

세금 깎아주어야 할 이유는 수없이 많다. 이래서 깎아야 하고, 저래서 깎아야 하고…. 그러나, 깎아준 세금을 정리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상식적인 원칙뿐이다. 형평성과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뿐. 수백 가지의 개별적 이유와 상식적인 원칙 간의 논쟁은 '수백 대 일'의 싸움 형국이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는 수십년간 관행적으로 누적되어온 세제혜택을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기도 한다. 그냥 포기해야 할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은 직접적인 재정지원을 통하여 하고, 비과세감면과 같은 조세지원은 외부경제효과에 한정한다'는 원칙을 새로 정하자. 그리고, 이 원칙에 적합하지 않는 모든 조항은 일거에 정리하자. 이것만이 가능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 환경보호 시설투자나 연구개발투자와 같은 분야는 그 투자의 효과가 특정 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공유된다. 이처럼 투자의 효과가 공공성을 지니는 경우에는 투자를 유도하기 위하여 조세지원을 해줄 필요가 있다. 그 외에 사회적 형평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비과세감면조항은 모두 정리하고, 이로 인한 세수증가분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직접적인 재정지원에 쓰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비과세감면 조항은 누구도 제대로 손댈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 있어, 하나씩 정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과감한 방법이 더 수월할 수도 있다.

비과세감면 조항만 과감히 정리해도 단기간에 10조원의 세수 확보는 충분히 가능하다. 이로써 무상보육과 무상교육에 크게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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