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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먼 라이트 워치 월드 리포트 2006
ⓒ hrw.org
지난 1월 중순 국제인권단체인 '인권 감시(Human Rights Watch)'가 <2006년 세계 인권 보고서(Human Rights Watch World Report 2006)>를 펴냈다.

세계 각국의 인권 침해 사례를 규칙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1978년 조직된 이 단체는 거의 해마다 인권 보고서를 펴내고 있는데, 2006년 보고서는 2005년의 인권 침해 사례를 담고 있다.

뉴욕에 본부를 두고 워싱턴·런던·제네바·베를린 등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 활동의 공정성을 꾀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어느 정부의 자금도 일체 받지 않는 철저하게 독립적인 비정부기구다.

여기서 펴낸 2006년 보고서의 핵심 주제는 미국의 인권 탄압 정책 때문에 인권 침해가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06년 1월 31일까지 이 단체의 홈페이지(www.hrw.org) 가운데 첫머리 부분엔, "Human Rights Watch World Report 2006"라는 큰 제목과 "U.S. Policy of Abuse Undermines Rights Worldwide"라는 부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New evidence demonstrated in 2005 that torture and mistreatment have been a deliberate part of the Bush administration's counterterrorism strategy, undermining the global defense of human rights."

2005년 부시 행정부가 고문과 학대를 테러에 대한 대항 전략의 일환으로 삼아온 것이 세계적 차원에서 인권을 보호하는데 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북한 관련 5쪽, 미국 관련 10쪽

이 보고서는 약 70개국의 인권 상황을 포함하고 있는데, 500쪽이 넘는 분량을 전부 읽기 어렵다면 이 단체의 케네스 로스(Kenneth Roth) 대표가 쓴 약 40쪽의 서문만이라도 읽어보기 바란다. 그도 부담스럽다면 우리가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인권 문제로 오랜 동안 서로 갈등을 빚어온 북한과 미국에 관한 부분만이라도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 관해서는 약 5쪽, 미국에 관해서는 약 10쪽 분량이다.

먼저,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나라들 가운데 하나로 인권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임의적 체포와 상습적 고문이 이루어지며, 정당한 법 절차가 무시되고 공정한 재판이 없다. 정치적 반대나 노동 운동이 조직되어 있지 않고, 시민 사회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며, 정보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도 없다.

선거가 주기적으로 실시되지만 모든 후보는 정부쪽 단일 후보나 다름없고 투표는 거의 공개적으로 이루어진다. 정치범들은 전 가족에 대한 집단 처벌을 받게 되며, 김일성이나 김정일에 대한 개인숭배와 관련된 범죄는 특히 가혹한 처벌이 뒤따른다. 정치적 성분에 따라 교육, 노동, 보건 의료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차별이 이루어진다.…

많이 보고 들어온 내용이다. 북한의 인권과 관련해서는 국내외의 워낙 많은 매체로부터 들어온 터라 새로운 것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서문에서부터 미국의 인권 침해에 관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이 다루고 있다. 미국의 인권 상황을 가장 심각하게 그리고 가장 크게 다룬 이유는 미국이 가장 "악랄한" 인권 침해국이라서가 아니라 가장 "영향력 있는" 인권 침해국이기 때문이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세계 문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이 고문과 학대를 공식 정책으로 삼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합법화하는 "세계 유일의 정부"가 됨으로써, 다른 나라들도 이를 따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고문과 학대는 평시에든 전시에든 누구에게나 어떠한 조건에서도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감옥이나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 등에서 드러났고 중앙정보부장이나 법무부장관이 인정했듯, 고문과 학대는 테러 혐의자들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심문 전략이나 기술 가운데 핵심 부분이 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동맹인 영국이나 캐나다는 물론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들도 인권 탄압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위선이 세계 인권 위협"

이 보고서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비롯되거나 더 나빠진 미국의 인권 탄압 정책 말고도 열악한 감옥 상태, 지속적인 사형 집행, 카트리나 태풍에 의해 생생하게 드러난 인종 차별, 외국인들의 망명이나 이민에 관해 갈수록 엄격해지는 정책들에 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세계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투옥시키는 나라이기도 하다. 인구 1000명당 7명 이상을 감옥에 가둬놓고 있는데, 집행유예와 가석방을 포함하면 인구 30명당 1명을 죄인으로 다루고 있다. 이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적절한 보건 의료 정책 때문에 죽어나간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겠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을 고소나 재판 없이 감금하고 그들을 고문하며 학대하는 등 인권 탄압에 앞장서고 있으니 얼마나 위선적인가. 바로 이러한 "미국의 위선이 세계적으로 인권을 보호하는데 심각한 위협"이며 오히려 테러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권을 증진시키며 테러의 위험을 궁극적으로 없애기 위해서는 미국이 "수치스러운" 정책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는 게 필수적이며, 인권 존중을 도덕적, 법적, 실용적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미국 시민들뿐만 아니라 동맹국과 우방국들로부터 압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중국이 "미국, 너나 잘 하세요" 대꾸한 까닭

이와 달리 미국은 거의 해마다 2~3월에 세계 각국의 인권 상황을 다룬 보고서(Country Reports on Human Rights)를 발표하고 있다. 국무부가 의회에 보고하는 형식을 취하는데 여기엔 미국의 인권 상황이 빠진다는 큰 특징이다. 자국의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눈을 꼭 감고 다른 나라들의 인권 침해를 시비하는 꼴이다. 그래서 중국은 이에 맞서 작년에 미국의 인권 백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의 시비에 남한의 유행어처럼 "미국, 너나 잘 하세요"라고 대꾸했던 것이다.

미국은 특히 북한의 인권에 대해 크게 비난해왔다. 2004년엔 '북한 인권법'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우리 사회에서의 반응이 이상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날 군사 독재를 유지하거나 강화하는데 힘을 보태며 인권 탄압에 앞장서거나 방조했던 이른바 "수구 꼴통"들은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옹호하는데 반하여, 군사 독재 아래서 민주화 운동을 펼치며 인권 보호를 부르짖었던 진보적인 사람들은 미국의 정책에 침묵을 지키거나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으로, 더구나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어느 정도 직접 보고 느끼기도 하지만, 북한의 인권 상황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선뜻 지지를 보낼 수 없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먼저 그들의 동기나 목적이 불순하거나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들이 북한 주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게 아니라, 북한 통치자들에 대한 원한과 증오를 품고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인권을 들먹거리며 탈북을 부추기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은 반미 정권을 제거하는 것이 목표이기에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북한 체제의 붕괴가 아니라 평화와 통일이기에 붕괴 이후를 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만에 하나 북한 체제가 무너져 수천만 또는 수백만 아니 수십만의 주민들이라도 남한으로 오게 된다면 우리가 그들을 기꺼이 도와줄 수 있을까.

몇 만 명도 되지 않은 탈북자와 조선족 동포에게도 온정을 베풀지 못하고 온갖 멸시와 천대를 가하는 남한 사회가 수십만이나 수백만의 탈북자들을 껴안고 더불어 살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는 말이다. 북한의 체제가 바람직하거나 북한 지도자들이 좋아서가 아니라, 혼란과 혹시 뒤따를지 모를 폭력이나 전쟁을 막기 위해 북한 체제의 붕괴는 바람직하지 않다.

한편,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총체적인 경제난과 사회주의권의 붕괴 그리고 미국의 봉쇄 및 위협 등 나라 안팎으로부터의 어려움 때문에 인권보다 국권을 보호하는 게 더 시급하다는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성은 가질 수 있겠지만, 나라의 자주권 때문에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증진하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남한이 북한의 인권 상황을 떳떳하게 비판할 수 있는 처지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남한의 인권 상황이 썩 훌륭한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 지향하는 가치와 체제가 다르기에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기는 곤란하지만, 보편적인 기준으로 따지면 미국이나 남한의 인권이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낫다고 할 수도 있다.

북 인권 시비 걸기 전에 국가보안법부터 없애야

미국의 인권에 관해서는 앞에 소개했으니 남한의 인권에 관해서만 간단히 소개한다. 과거엔 남한의 인권 탄압에 방조하거나 침묵하다가 요즘 북한의 인권 탄압을 폭로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굴종하듯 극진하게 떠받드는 미국의 국무부가 2005년 2월 발표한 인권 보고서의 남한 관련 부분을 그대로 옮긴다.

"정부는 시민들의 인권을 일반적으로 존중한다. 그러나 몇 몇 분야에서 문제가 있다. 요즘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경찰과 교도소 인사들은 구금된 사람들에게 때때로 육체적으로나 말로 학대를 가한다.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 평화적 집회와 결사, 그리고 여행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가정 폭력, 강간, 어린이 학대는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여성과 소수파들은 지속적으로 법적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통일뉴스에도 기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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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위한 통일운동 대표 평화통일 문제, 남북관계, 북미관계, 북한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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