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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69년에 조어도 주변 해역에 석유자원이 매장되어 있다는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부터, 조어도 영유권을 둘러싼 중화인민공화국-일본-중화민국(대만) 간의 신경전이 가열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미국이 조어도를 일본에 넘겨준 1972년 5월부터 당사국 간의 분쟁이 가시화되었다.

1972년 이후 조어도분쟁과 관련하여 일본이 취한 자세는 대체로 '방어전' 혹은 '굳히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중국 등이 취하는 대응법은 대개 '현상 파괴'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럼, 그간에 있었던 구체적 대립 양상을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일본이 조어도를 점유한 이후인 1978·1988·1996년에 '일본청년사'라는 우익단체가 조어도에 등대를 설치하자, 중국·대만·홍콩에서 대규모 반일시위가 발생했다. 중국에서 발생한 반일시위의 경우에는, 그 형식은 비록 민간 시위라 해도, 중국 사회의 특성상 이것은 사실상 정부의 영향력 하에서 이루어지는 시위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조어도에 설치된 등대는 2005년 2월에 일본의 지도에 실리기도 했다.

구소련 붕괴 이후 동북아 역내(域內) 환경에 탈냉전 기류가 흐르기 시작하자, 중국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한 단계 강화된 접근법을 취하기 시작했다. 이른 바 강수를 취한 것이다.

중국은 1992년 9월 영해법을 발표하여 조어도를 자국 영토에 편입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물론 그같은 중국의 편입 조치는 지금으로서는 법률적 차원에 그치는 것이다. 그리고 1995년 5월에 중국측은 해양조사선을 파견하여 조어도 해역에 대한 자원 탐사를 실시했으며, 동년 6월에는 인민해방군 공군 전투기 2대를 조어도에 접근시키기도 했다. 중국 공군 전투기가 접근하자, 일본 자위대 F-15기 2대도 대응 발진했다. 그리고 인민해방군은 다음 해인 1996년 10월에는 조어도 북서쪽 해역에서 해상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조어도를 둘러싼 중·일 양국의 긴장이 물리적 충돌 일보 직전으로까지 치닫는가 싶더니, 양측은 1997년 11월 어업협정 체결을 통해 분쟁을 봉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로는 양측의 민간단체들이 다시 분쟁을 일으켰다. 1998년 9월에는 홍콩 시민단체 회원들이 탑승한 100톤급 선박이 조어도에 접근하다가 일본 해안경비대의 저지를 받고 침몰한 사건이 있었으며, 2000년 5월에는 일본 우익세력이 조어도에 상륙하여 영유권을 주장하기도 했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조어도 주변 수역에 석유자원이 매장되어 있다는 기대감, 이 수역이 동북아 해상교통로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점, 조어도 분쟁이 역내의 다른 영유권 분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 때문에 각 당사국들은 지금도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조어도 분쟁의 진행 과정에서 있어서 미국의 역할을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제1편에서 논의한 바 있듯이 미국은 1972년에 분쟁도서인 조어도를 일본에 '신속히' 넘겨줌으로써 분쟁을 가열시킨 측면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미국 때문에 분쟁이 억제되는 측면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중국이 영해법 선포/해양조사선 파견/공군 전투기 파견 등의 강수를 던진 시점과 양국이 어업협정으로 갈등을 봉합한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측이 물리적 충돌 직전까지 갔던 시기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탈냉전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될 조짐을 보이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동북아 역내에서 한중수교, 한러수교, 남북합의서 체결, 북일수교 논의 등 '현상 파괴적'인 양상들이 두드러졌다.

이 시기에 미국은 동북아 국가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1993년부터 북·미 간의 핵문제를 조장했다. 비록 1994년 제네바합의서로 북·미 간의 대립이 불완전하게 봉합되기는 했지만, 미국은 이를 계기로 동북아 국제환경의 급속한 변화를 막을 수 있었다. 이 시기에 미국은 남북 간의 교류는 물론 북일 간의 접근에도 제동을 걸 수 있었다.

이처럼 미국의 역내 패권이 다시 안정되는 조짐을 보이는 시기에, 중·일 양국은 어업협정을 통해 상호간의 갈등을 봉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의 동북아 국제환경 하에서는, 패권국가인 미국도 역내 질서의 동요를 막기 위해 가급적 분쟁을 막으려 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역내 국가들 역시 미국의 영향력이 존재하는 한은 섣불리 현상 변화를 도모하기도 힘들다.

그러므로 미국 때문에 조어도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된 측면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미국 때문에 갈등의 분출이 억제되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역내 패권이 서서히 약화되고 있으며 또 언젠가는 미국이 태평양을 건너 돌아가지 않을 수 없음을 고려한다면, 조어도 등 동아시아의 영토분쟁은 잠재적으로 '억제된 충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영향력이 현저히 약화되는 시기가 되면, 조어도 등을 둘러싼 역내 국가들의 갈등은 물리적 충돌로도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 시기가 되면 독도에 대한 일본의 불법적 '의욕'도 물리적 접근의 양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하지만 동북아 국가들은 그러한 충돌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도 가급적 법률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쉼 없이 전개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어도 분쟁의 폭발 가능성에 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 한편, 각 당사국들이 어떤 법률적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럼, 다음 제4편에서는 조어도를 둘러싼 국제분쟁의 핵심 쟁점이 무엇인지를 정리해 보기로 한다.

(제4편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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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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