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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을 상상해 본다. 때가 쏙 빠지는 세제와 섬유 유연제로 세탁한 옷을 입은 당신은 식기 세척제로 말끔히 씻은 그릇으로 점심을 먹고 일회용 포장의 인스턴트 커피를 마신 뒤 그곳에 앉아 있을 것이다.

언제나 무한대로 뽑힐 듯한 각 티슈와 종이컵 그리고 비닐 포장 제품이 당신의 청결성을 축복한다. 하수도와 쓰레기통은 당신의 기품을 손상시키지 않을 만큼 모든 것을 빠르게 삭제한다. 세제 거품과 쓰레기의 최종 종착지를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는 이 현대적 시스템은 당신을 포함한 모두가 과잉 소비의 대열에 끼어들도록 열렬히 부추긴다.

물론 '환경오염'을 향한 수많은 경고 또한 만만치 않지만,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는 이 식상한 담론은 현실에서 곧잘 힘을 잃는다. 경제 개발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목소리까지 함께 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 <에코토이, 지구를 인터뷰하다>
ⓒ 효형출판
그런데 자본주의 최전선인 유럽에서 성장한 세 청년이 이러한 상황에 '딴지'를 걸며 '쓰레기통 밖'으로 모험을 감행했다. 1979년식 토요타 자동차 '에코토이'에 몸을 싣고 아프리카·아메리카·아시아·유럽을 누비며, 각 나라의 환경단체 운동가·기업가·넝마주이·산림노동자·토착민 등과 함께 과연 이 지구상에 희망이 있는가에 대해 직접 이야기 나눈 것이다. <에코토이, 지구를 인터뷰하다>는 1년여에 걸친 이들 여정의 기록이다.

유명 관광지와 거리가 먼 이들의 여정은 물론 쉽지 않았다. 서사하라 사막에서 길을 잃는가 하면, 가나에서는 '닭고기'로 변장한 '쥐고기'를 대접받고, 나이지리아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그 지역 '어깨'들과 협상하기도 한다. 코스타리카에서는 왼쪽 폐에 구멍이 나는 심각한 부상을 당하기도 하고, 중국 사람들과 '자리 쟁탈전'을 벌였던 3일간의 기차 여행은 '최악의 순간'으로 소개된다. 하지만 이 여행에서 무엇보다 그들을 놀라게 했던 것은 결코 이 지구가 '안녕'하지 못하다는 엄연한 사실이었다.

가난한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서는 '에너지 기근'이 문제다. 벌목으로 숲이 황폐화되면서 부르키나파소에서는 "냄비 아래의 연료가 냄비 안의 음식만큼 비싸거나 어떨 땐 더 비쌀" 지경이다. 전기와 수돗물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자유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수도에서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세네갈의 한 단체는 아프리카 땅에 적합하면서도 비용도 적게 드는 폐수 처리 기술을 개발했지만, 정작 정부가 이를 외면했다고 전한다. 너무 비용이 저렴해서 국제통화기금(IMF),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에 융자 신청할 건수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아프리카를 돕겠다며 한국·일본·러시아 같은 수자원 강대국들은 트롤선(바다 밑으로 트롤망을 끌며 고기를 잡는 원양 어선)을 150여 척이나 제공했지만, 이 배들 모두 해안가에 방치된 채 삭아들고 있다. 정작 배를 모는 데 필요한 인력 교육을 하지 않은 탓이다.

▲ 누아디브 해변가에서 낡아가고 있는 트롤선. 잘못된 국제 원조의 전형이다. 사진제공 효형출판
ⓒ 김금희
경제 개발 위주의 정부 정책은 어디서나 폐해를 낳고 있었다. 남미의 니카라과는 토지 개발로 산림이 황폐화되면서, 1998년 태풍 '미치'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중국에서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아직도 환경 단체의 활동은 보장되지 않고 있다.

같은 공산주의 국가였던 러시아의 경우도 비슷하다. '자연'을 경제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보았던 공산주의 시절의 국가 이념은 아직까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환경 문제에 가담하면 해코지 당하거나 고발이나 세무 감사를 받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지구의 '안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하지만 여정 곳곳에서 에코토이 일행은 희망을 발견한다. 빈곤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작열하는 태양이 희망을 부른다. 말리의 베르스피렌 신부는 선교 대신 기아와의 싸움을 선택한 뒤 태양열 에너지를 개발해 생활용수를 충당하고 농사를 짓고 있다. 아프리카 산 바나나에 밀려 한때 '농업 위기'를 겪었던 코스타리카는 국토의 30%를 보호 구역으로 설정해 생태 여행지로 거듭나면서, 이제 한 가구당 1명은 여기서 수입을 얻고 있다.

또 프랑스 시멘트 기업 라파르주는 필터나 개량 연료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해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소시키고 있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세 청년은 '필요 없는 세제 사지 않기',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리기', '방에서 나올 때 전등 끄기' 같은 일상의 사소한 습관들을 바꾸어보자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당신이 세제를 조금 '덜' 넣는다면, 일회용 컵 대신 머그잔을 사용한다면, '쓰레기는 쓰레기통에'라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만 지킨다면, '그뤼예르 치즈'처럼 구멍이 숭숭 난 슬픈 아마존을 목격하지 않을 수 있다.

이렇듯 에코토이 일행은 400일간의 생태 여행에서 '모든 희망은 작은 변화에서 시작된다'는 결론을 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그들의 흥미진진한 여행담을 한동안 따라갔던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덧붙이는 글 | <에코토이, 지구를 인터뷰하다>의 편집자입니다.


에코토이, 지구를 인터뷰하다 - 태양, 물, 바람과 함께하는 좌충우돌 생태 여행

리오넬 오귀스트.올리비에 프뤼쇼.토마 가이 지음, 고정아 옮김, 효형출판(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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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월간 잡지에서 편집 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기자로 등록합니다. 제 관심 분야는 주로 문학에 집중되어 있으며, 앞으로도 책과 관련된 에세이를 쓸 생각입니다. 딱딱하기보다는 단단한, 쉽고 재미 있으며 삶이 녹아 있는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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