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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서울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관에서 열린 '황우석 사태로 본 한국사회의 현재와 미래' 토론회.
ⓒ 오마이뉴스 안홍기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으로 한국 사회 전반이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정부·정치·언론·학계 등의 책임을 짚어보는 토론회가 열렸다.

생명공학감시연대가 18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관 강당에서 연 '황우석 사태로 본 한국사회의 현재와 미래' 토론회에는 학자·언론인·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과학기술계 '박정희 패러다임'이 황 교수 사태의 한 원인"

주제 발표를 맡은 김환석(국민대 교수) 시민과학센터 소장은 "이번 사태의 핵심은 논문조작이고 이는 과학계에서 검증·자정되는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면서 "그러나 정부와 언론의 '황우석 영웅만들기'에 의해 논문조작 사건이 국가적 혼란 사태로까지 번졌다"고 비판했다.

▲ 김환석 시민과학센터 소장(국민대 교수)
ⓒ 오마이뉴스 안홍기
김 소장은 "이번 사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정책의 산물이지만 그 정책의 뿌리는 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며 '박정희 패러다임'을 주요 원인으로 제시했다.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된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과학기술을 경제성장의 도구로 여겼고, 과학기술인들은 전문지식과 기술만 열심히 추구할 뿐 과학기술의 사회적 역할이나 영향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른바 '박정희 패러다임'이 아직도 강력히 남아 있다는 것,

김 소장은 "국가가 수십년간 조장한 이러한 지배 이데올로기 때문에 국민들은 과학기술을 단지 선진국 진입의 비법과 같은 것으로만 신비화 했다"며 "그 결과 과학기술 연구에 반드시 수반돼야 할 생명윤리 및 연구윤리, 과학기술의 사회적 이해 등은 매우 소홀히 취급했다"고 지적했다.

또 김 소장은 "진실을 밝히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브릭(BRIC, 생물학정보센터)이 익명으로 운영되지 않았다면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연구에 문제가 있을 때 연구원들이 제대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실험실 민주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PD수첩 > 취재윤리 비판한 언론들, YTN에는 침묵"

이번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언론의 문제점도 빠지지 않고 지적됐다. 정은경 <미디어오늘> 기자는 언론이 MBC < PD수첩 >과 YTN의 취재윤리 위반에 대해 이중잣대를 들이댔다고 밝혔다.

< PD수첩 >의 취재윤리 위반을 모질게 비판했던 KBS·SBS 등 방송사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주요 신문은 YTN이 지난 3일 취재윤리 위반과 '청부취재'를 시인하는 사과방송을 했음에도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 기자는 "< PD수첩 >의 강압취재도 심각한 문제지만 기자의 황 교수팀 돈 운반, 줄기세포 검증 미보도, 취재원으로부터 경비를 지원받는 등 YTN의 취재윤리 위반이 더욱 심각하다는 게 중론"이라며 "(YTN의 취재윤리 위배에 대해 눈 감는) 일부 언론의 행태는 < PD수첩 >의 취재윤리 위반 비판이 진정성 있는 문제제기가 아니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기자는 또 지난 5일 <오마이뉴스>를 통해 제기된 '표완수 YTN사장의 황 교수 관련 보도 개입 의혹'을 언급하면서 "더 절망적인 것은 (표 사장에 대한 YTN의) 내부 비판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 교수팀이 YTN에만 영롱이와 줄기세포 검증의 기회를 준 점 ▲안규리·윤현수 교수의 피츠버그행에 YTN이 동행한 점 ▲< PD수첩 > 제보자의 3개월치 전자우편이 황 교수 쪽에 전해진 점 등을 아직 풀리지 않은 의혹으로 꼽은 정 기자는 "검찰 수사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탐사보도를 통해 언론 스스로 밝히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명윤리법에 '황우석 전용 구멍' 있다"

한재각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은 "이번 사태를 한 개인의 사기극으로 볼 것이 아니라 황 교수를 정점으로 해서 정부·정치권·언론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만들어진 '황우석 게이트'로 봐야 할 것"이라며 정부의 책임론을 집중 부각했다.

한 연구원은 "지난 2005년부터 발효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에도 '황 교수 전용 구멍'이 있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생명윤리법 부칙조항 3항에는 '3년 이상 체세포복제배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였을 것, 관련 학술지에 1회 이상 체세포 복제배아에 관한 연구논문을 게재한 실적이 있을 것'으로 복제배아연구를 할 수 있는 자격을 정해두고 있다.

한 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이 조항을 통해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보건복지부 장관 승인을 받은 연구자는 황우석 교수가 유일하다. 조건을 충족시키는 연구자가 황 교수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정책연구원은 "정부가 황 교수의 연구를 어떻게든 승인하려고 한 것이며, 황우석 사태를 방조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연구원은 또 충분한 사전검토나 연구성과에 대한 검증 없이 졸속으로 이뤄진 황 교수에 대한 총 676억원(1988년~2005년)에 달하는 정부의 예산지원 행태도 비판했다.

"복지부 장관에 유시민? 내년에 '제2황우석' 나올라"

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 사진)는 '황우석 사태'를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에 비유했다.

홍 교수는 "삼풍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부실공사였지만, 관할구청 등이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는 등 부패 문제가 바탕에 깔려있었다"며 "황 교수 사태도 IRB, 국개생명윤리위원회, 과학기술부,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등 수십개의 감시 기구가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홍 교수는 황 교수를 맹목적으로 지지한 정치인들을 통렬히 비판했다. 홍 교수는 "황우석은 이 나라 최강의 '언터처블'이었다"며 "황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과 <조선일보>가 동시에 열렬한 지지를 보낸 유일한 사람"이라고 비꼬았다.

홍 교수는 "황우석을 국가 영웅으로 처음으로 총애한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것을 확대 재생산했다"며 '황금박쥐'모임 즉 황우석, 김병준(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박기영 (대통령비서실 정보과학기술보좌관), 진대제(정보통신부장관) 4명의 모임을 예로 들었다.

그러나 홍 교수는 "가장 주목해야 할 사람은 (황 교수와) 서울대 72학번 동기인 이해찬"이라며 이 총리가 2004년 8월 YTN과의 인터뷰에서 "황 교수의 배아줄기세포가 (교육부장관 시절 추진한) BK21 프로젝트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 발언을 소개했다.

사태가 전개되는 중에도 황 교수에 대한 강력한 지지의 뜻을 밝힌 정동영·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도 홍 교수의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황 교수는 노 대통령과 <조선일보>가 동시에 지지한 유일한 인물"

홍 교수는 특히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임명에 대해 "황 교수 사태에 대해 보건복지부도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부서인데 황 교수를 일방적으로 옹호한 정치인이 그 장관으로 앉는 격"이라며 "바로 내년에 '제 2의 황우석'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홍 교수는 "한나라당에도 황우석의 광팬들은 우글우글하다"며 ▲'보배 중의 보배'라고 추며세우고 황우석 논란을 이념대결로 몰고 가려고 한 박근혜 대표 ▲황우석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악인'이라며 격리해야한다고 주장한 손학규 경기도 지사 ▲비판에 신경쓰지 말고 연구에 전념하라고 한 이명박 서울시장 등 정부 여당보다 더욱 강렬한 애정을 표현한 '광팬'으로 꼽았다.

"황우석을 지지한 정치인들의 태도는 개발독재를 통해 이 사회의 고질병으로 퍼진 결과주의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한 그는 "그나마 민주노동당만이 이번 사태를 올바로 파악하고 있어 한국 정치의 체면을 살려주었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난자 대부분 버려져...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정은지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원은 "조사할수록 늘어나고 있는 난자의 숫자는 연구를 위해 대상화 돼 온 여성 인권의 현주소"라며 "우리 사회에서 난자는 배출되어 없어질 소모품으로 보는 의식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황 교수에게 난자를 기증한 여성 중 20%가 부작용을 호소하고 있고 3~4회 난자를 적출한 여성도 있다"며 "황 교수의 표현대로 대부분의 난자는 버려졌음에도 난자기증의 의미를 크게 부각했던 우리 사회가 난자 제공 여성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난자와 관련된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이전에 난자매매 브로커가 적발됐을때 비도덕적 행위라고 비난하던 것과는 달리 황 교수가 사용한 연구용 난자에 대해서는 아주 관용적인 입장을 띠었다"며 "언론은 교묘하게 난자를 매매용과 연구용으로 이분화해 난자기증에 힘을 실었다"고 비판했다.

정씨는 "현재의 생명 윤리법은 연구를 위한 목적을 우선으로 하며 여성건강 및 인권에 대한 고려는 빠져 있다"며 "난자 및 정자의 채취에 관한 규정 및 인공수정시술 등에 대한 절차, 대리모 금지 조치 등을 포함하는 '인공수정에 관한 법률' 제정을 통해 이를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론,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도움되지 않겠나"

발제에 이어진 토론에서 강양구 <프레시안>기자는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제라도 탐사보도를 통해 남은 의혹을 제대로 보도해야 한다'는 주장에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이번 사태를 제대로 처리하는데 도움되지 않겠냐"고 꼬집었다.

강 기자는 "언론이 과학기술을 여전히 경제성장의 도구로만 인식하고 있는 한 이번 사태를 보도했던 행태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과학기술에 대한 언론사, 기자들의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이미영 여성환경연대 사무국장,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박상훈 <후마니타스> 편집주간 등이 토론자로 참석, 이번 사태에 대한 저마다의 의견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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