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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관방장관은 상하이주재 일본총영사관 직원의 자살 사건과 관련하여 28일 중국정부를 향해 강한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일본측의 주장에 따르면, 이 영사관 직원이 여자 문제를 무기로 외교정보를 빼내려는 중국인의 협박을 받고 자살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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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몇 가지 측면에서 볼 때에 일본측의 문제 제기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첫째, 28일 오후 일본 외무부(일본측 표현은 '외무성') 대변인이 밝힌 바 있듯이, 상하이 총영사관 직원이 자살한 시점은 2004년 5월 6일이다. 이미 1년 반도 넘게 경과한 사건이다. 일본 외무부 홈페이지에 소개된 바에 따르면, 이제 와서 문제 제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일본 외교부 대변인은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둘째, 일본정부는 사건의 진상에 대한 명확한 공개를 꺼리고 있다. 일본 외무부 대변인도 '유족의 희망'을 이유로 자세한 설명을 피했다. 유족이 원치 않기 때문에 진상을 명확히 공개할 수 없다면서 뒤늦게 문제 제기를 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다. 유족이 사건 자체의 공개까지만 동의하고 그 진상의 공개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 얼른 납득되지 않는 것이다.

이같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측면들을 볼 때에, 우리는 일본 측이 단순히 진상 규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의도를 갖고 있을 가능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를 두고 중국측은 '이미 다 해결된 사안'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만약 일본이 자국 영사관 직원에 대한 중국측의 부당한 압력과 관련하여 명확한 진상 조사를 원했다면, 일본은 분명 사건 발생 직후부터 강력하게 문제 제기를 했을 것이다. 또 그렇게 했어야 한다.

물론 중·일 양국이 그동안 이 문제를 두고 논의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1년 반 동안 일본이 강력하고 공개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동안 중국의 태도에 대해 별다른 불만이 없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만약 중국이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면, 사건 발생 1·2개월 후부터 일본은 이 문제를 국제 쟁점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양국 정부 사이에 '이미 다 해결된 사안'이라는 중국 측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1년 7개월 동안 일본이 보여 준 태도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이 이처럼 뒤늦게 엉뚱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사건 자체보다는 다른 의도와 관련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측의 의도를 파악함에 있어서 특히 문제 제기의 시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시점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총선 승리를 계기로 금년 상반기의 외교적 수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재도약'을 준비하는 시기다.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외교적 재도약을 하려면 중국과의 관계를 반드시 풀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은 일본이 또 다른 동아시아 국가인 북한에 대해서도 소위 '납치 피해자' 문제를 빌미로 끊임없는 공격을 하고 있는 시기다.

이러한 시기적 특성을 고려해 볼 때, 고이즈미 총리가 동아시아 내에서의 수세를 벗어나기 위해 중국을 겨냥하기 시작하였으며, 그처럼 중국에 반격을 가하는 데에 있어서 북·일 간의 소위 '납치 피해자' 문제로부터 '힌트'를 얻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정부가 북한에 대해 소위 '납치 피해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과거의 원죄를 희석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과거사를 반성하고 피해를 배상하라며 도덕적 비난을 가하는 북한에 맞서, 북한을 도리어 '도덕적 패륜아'로 만들어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려는 것이 일본 지도부의 의도다.

사실 이 같은 일본정부의 의도는 어느 정도 주효했으며, 북한측도 일본의 전략에 휘말려든 측면이 있다. 소위 '납치 피해자' 문제가 북·일 간에 끊임없이 문제가 되고 또 국제연합(UN) 대북 인권결의안에까지 '외국인 납치 문제'가 거론된 점들을 볼 때, 일본정부의 전략이 단지 '꼼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총선 승리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에서 입지 축소를 만회하려는 일본정부는, 북한과 더불어 대일(對日) 공격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루는 중국에 대해서도 도덕적 역공을 가하기 위해 '이미 다 해결된 사안'을 다시 끄집어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본의 원죄를 들추어내는 중국을 거꾸로 도덕적 패륜아로 만들어 역공을 가함으로써, 야스쿠니신사 문제나 교과서 문제 등을 무기로 한 중국측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이 북일관계를 중일관계에까지 적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일본의 전략을 통해서 볼 때, 향후 일본은 이 사안 혹은 유사한 사안을 빌미로 중국의 도덕성 문제를 국제 쟁점으로 부각시킴과 함께, 이러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쟁점화시킬 양자 혹은 다자간 국제회담 시스템을 만들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도덕적 역공을 통해 자국 내 양심세력이 국내 여론의 지지를 얻을 가능성을 차단함과 함께 중국 내부의 여론을 교란함으로써 일본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약화시키는 것이 일본측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거 일본이 보여 준 전례(前例)들을 볼 때에, 일본은 외국 주재 자국민의 보호를 명분으로 단지 외교적 공격뿐만 아니라 무력적 도발까지도 감행할 수 있는 나라다.

다음 2편에서는 그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살펴보면서 우리 나름의 대비책을 강구해 보기로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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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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