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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박노해, 백무산과 함께 노동문학의 대표적인 시인이었던 김해화가 이상한 책 한 권을 우리들 앞에 내놓았다. <김해화의 꽃편지>(삶이보이는창, 2005)라는 책이 그것이다. 그는 이미 <인부수첩>(실천문학사), <우리들의 사랑가>(창비), <누워서 부르는 사랑 노래>(실천문학사)라는 세 권의 시집을 상재한 바 있다. 이 세 권의 시집들에는 20년 경력의 철근공이라는 시인 자신의 힘겨운 그러나 건강한 삶의 체험이 오롯이 녹아 있다. 그의 시편들은 오롯이 한국노동자 문학의 귀중한 자신이다.

이번에 그가 새롭게 펴낸 <김해화의 꽃편지>는 우리 꽃들의 사진 위에 시인의 편지와 시를 얹어놓은 독특한 형태의 책이다. 책 속에 들어 있는 천연색의 꽃사진 아래에는 찍은 곳과 설명이 기록되어 있다. 연봉 천 사오백만 원 노동자 시인 김해화가 우리 산과 들판에 피고 지는 우리 꽃들을 장기 월부로 산 카메라로 시인이 모두 직접 촬영한 것들이다.

그 꽃들 위에다 그 꽃과 연관된 또 시인의 삶과 연관된 시와 편지글을 얹어놓은 것이다. 소중하고 귀중한 책이 아닐 수 없다. 순천이라는 같은 지역에 사는 박두규 시인은 그를 이렇게 말한다.

"김해화는 요새 연애하러 댕긴다. 일은 안 하고 맨날 꽃 찍으러 가서 꽃에게 찍히고 온다. 김해와의 꽃은 사람이고 눈물이다. 김해화는 꽃이다. 처자식 먹여 살리려면 하루라도 더 철근을 매고 땀을 쏟아야 하는데 한사코 꽃허고 연애질만 한다. 술 먹으며 詩나 세상 이야기라도 좀 하려면 꽃이 詩고 사람인데 무슨 말이냐고 꽃 이야기만 한다. 열여섯에 고향 떠난 분이는 얼레지꽃, 여순사건 때 총 맞아 죽은 아재는 히어리꽃, 늙은 철근쟁이 이씨는 광대나물꽃, 렌즈를 들이대면 꽃들은 세상을 비껴간 사람들, 잃어버린 사람들이 되어 말을 걸어 온단다."

그렇다. 그의 꽃편지는 우리꽃(야생화)으로 쓴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다.

뒤숭숭한 꿈자리 털고 일어나
고운 아내가 챙겨준 새벽밥 먹고 일 나왔던 비계공 최씨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 온몸으로 꽃 피워놓고
다시는 집에 돌아가지 못합니다.

이렇게 나뉜 사랑
세상에 또 상사화로 핍니다.


'이렇게 나뉜 사랑 - 상사화'라는 시다. 또 풍접초라는 꽃사진 옆에 놓인 '아내의 봄비'라는 아래의 시는 정말 감동적인 시편입니다.

순천 아랫장 파장 무렵 봄비 내렸습니다.
우산 들고 싼거리 하러 간 아내 따라갔는데
난장 바닥 한 바퀴 휘돌아
생선 오천 원 조갯살 오천 원
도사리 배추 천 원
장짐 내가 들리고 뒤따라오던 아내
앞서 가다 돌아보니 따라오지 않습니다

시장 벗어나 버스 정류장 지나쳐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비닐 조각 뒤집어 쓴 할머니
몇 걸음 지나쳐서 돌아보고 서 있던 아내
손짓해 나를 부릅니다
냉이 감자 한 바구니씩
이천 원에 떨이미 해가시오 아줌씨
할머니 전부 담아주세요
빗방울 맺힌 냉기가 너무 싱그러운데
봄비 값까지 이천원이면 너무 싸네요
마다하는 할머니 손에 삼천원 꼭꼭 쥐어주는 아내

횡단보도 건너와 돌아보았더니
꾸부정한 허리로 할머니
아직도 아내를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꽃 피겠습니다


시장바닥의 할머니와 아내, 김해화 시인 이런 사람들이 모두 우리 사회의 아름다운 꽃입니다. 이 꽃들이 소중합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이 꽃들이 활짝 피어나야 합니다. 나는 이 책을 시인의 친구로부터 선물로 받았습니다.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책 한 권으로 시집과 꽃첩과 편지 묶음이라는 세 권의 책을 가진 셈입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많이 선물해야겠습니다. 먼저 여러분들에게 선물합니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카페 '시와 사랑, 우리꽃을 찾아서'(http://cafe.daum.net/kimhaehwa)에 회원으로 가입하면 매일 아침 꽃편지를 받는 지복(至福)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김해화의 꽃편지

김해화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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