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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페이든의 <성스러움의 해석>은, '종교는 무엇인가'란 거대담론을 제기하는 종교 입문서들에 비해 좀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종교해석, 종교비판론, 그리고 이에 대한 응전으로서의 비판과 성찰 등을 재구성한 책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종교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진 느낌이어서 기왕이면 더 많은 독자들이 이 책과 인연을 맺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이 책은 자기가 믿는 종교가 '절대적'이란 생각에서 한 걸음 물러나 다원주의, 상대주의로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풍부한 인문학적 자양분을 제공하는 노작(勞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옮긴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삶의 모든 의미를 종교 속에 던져 놓고 '오직 믿음뿐'이라는 신념 속에서 생활하는 종교인들" 입장에선 선뜻 손이 가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특히 현대 한국 사회의 한 축을 구성하는 종교 체계가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명제들이 독소 조항처럼 포진해 있어 독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면이 없지 않다.

가령 '한 걸음 물러서기' '척도가 현상을 만든다' 등의 명제들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는 독자들이라면 그것이 종교적 신념과 충돌하는 지점을 어렵지 않게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불온한 시각으로 경계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종교를 읽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는 데 있을 뿐, 종교적 신념을 침해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으니까.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종교를 해석하는 일은 순수한 지적 작업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행위를 유발하는 사회적 행동의 일종"이다. 다만 이 책의 내용을 체내 깊숙이 흡수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절대적 관점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 그건 절대적 관점의 한계성에 기인하는데,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관찰의 시점은 대개 고정되어 있고 단일하며 자기변호적이다. 종교적 이론들과 학문적 이론들은 한결같이 단일한 위치에서만 바라본다. 그것들은 단 하나의 입장만이 유효할 수 있다는 생각이나 종교에 대해 오직 하나의 근본적인 의미만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마치 옳은 해석의 지표인 것처럼 여긴다.

종교를 개념적으로 파악하려는 욕구 때문에 해석이라는 영역은 그 언어를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에게서만 존립 가능한 의미론적 조각들을 맞추어 이어 간다. 그리고 그 의미론적 조각들의 절대적이고 전체주의화된 설명 방식은 다른 것들을 배제시킨다. 접근 방법 상호 간에 작용해야 하는 관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를 배제시키는 일은 일종의 사회 언어학적인 카스트 제도를 보여 주는 것이다.(p.17)


그럼 이제부터 종교 해석의 다양한 관점들 중 일부를 살펴 보기로 하자.

종교 해석의 여러가지 관점들

사실상 '종교 해석'이란 용어는 종교 비판론을 내포하고 있다. 거기엔 무신론자의 종교 비판에서부터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종교 비판론까지 뿌리 깊은 계보가 함의되어 있다. 윌리엄 페이든은 종교 비판론을 사회학적 계열, 심리학적 계열 등으로 구분해 한 장(chapter)씩 할애해 설명해 놓았다.

그 중 사회학적 계열 종교 비판론의 계보를 살펴 보면, 우선 18세기 이래로 보편화된 합리주의를 들 수 있다.

"18세기 이래로 종교를 설명하는 가장 일반적인 비종교적 작업 틀은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이었다. … 그것은 이성이 세계에 대한 유일하고 정당한 지식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초자연적인 사고를 자연주의적 사고로 대체하려는 시도이다. … 합리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초자연적인 신앙은 비과학적이고 근거 없는 것이며, 원시적이고 무비판적인 사고의 산물이다.

이 점에서 종교는 사유의 유년기를 나타낸다. 종교는 일종의 잘 꾸며진 동화로서, 미지의 힘 그리고 자연, 인생, 죽음이 지닌 무섭고 두려운 힘을 생각해 내고 설명하려는 초기 단계 인간의 시도를 나타낸다. 이러한 사고의 틀을 통해서 볼 때, 종교는 이성적인 표준을 통해 교육받지 못한 정신 상태로, 사실과 상상 사이의 경계를 알지 못하고 있다."(p.40)


합리주의는 이후 다양한 변형을 통해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하며 생명을 연장해 간다. 합리주의의 변종들로는 17~18세기 프랑스와 영국에서 유행한 이신론(理神論), 데이비드 흄의 철학, 다윈의 진화론, 애니미즘, 실증주의 등이 있다.

또 다른 사회학적 계열의 노선에는 '신의 죽음'을 선언한 니체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의 등장과 맞물려 명저 <기독교의 본질>을 저술한 포이어바흐에서 칼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계보가 태동한다. 이들은 "어떻게 종교가 인간의 욕망과 투사로부터 만들어지는가를 보여 주었다. 종교는 우리 자신의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상징과 체험으로 구성된 하나의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종교를 이런 방식으로 설명하는 시도는 종교가 단지 정신의 오류라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 본성 안에서 종교의 실제 생성 원인을 발견해 내려고 하는 것이다. '신성'은 단지 착각이라기보다는 인간의 힘과 느낌이 다른 형태로 위장되어 있는 상징이다"(p.43)고 한다.

물론 이들의 주장은 잘 알려진 대로 거대한 반발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이런 토양에서 훗날 에밀 뒤르켕이 배출된다. 에밀 뒤르켕은 현대 사회학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3대 사회학자 중 하나로, 그가 인식하는 사회란 "과학과 지식의 도식, 언어, 도덕, 시간과 공간과 인과성의 분류체계 등 문명을 생산해 온 집단적 힘의 체계"이며 "개인의 경험에 선행하는 도덕적이고 개념적인 범주, 이념들, 정감들의 천개(天盖)와 같은 것이다"(p.62).

그리고 뒤르켕이 인식하는 종교는 "황새가 물어다 준 어떤 것도 아니고 단순한 환영(幻影)도 아닌, 바로 이 현실의 힘과 권위와 의미의 체계에 대한 하나의 표현"이다.(p.62) 이들 사회학 계열 종교 비판론자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종교는 인간집단의 요구에 의해 조성된 사회 제도나 인식체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마르크스는 계급 투쟁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이 대리만족을 얻기 위해 종교를 고안해 냈다는 발상을 하기에까지 이른다.

지금까지 단편적으로 살펴 본 사회학 계열 종교 비판론에 대해 굳이 긍정과 부정의 가치판단을 부여할 필요는 없다. 다만 종교 해석의 틀로서 유효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확립하는 걸로 충분하다.

그 다음 장에선 사회학 계열과 더불어 종교 비판론의 핵심적 기능을 수행해온 심리학 계열의 종교 비판론이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여기에는 또 다른 낯익은 계보가 등장하는데, 바로 프로이트, 융으로 이어지는 심리학파 계보이다.

앞서 뒤르켕이 '사회'가 곧 종교요 신이라고 언명했던 것처럼 프로이트와 융은 '정신'이 곧 종교요, 신이라고 언명한다. 뒤르켕의 사회 발전 단계 이론은 프로이트와 융에 의해 자아 발전 단계로 대치되고, 자아 발전 단계 과정에서 "자아가 자신을 억압했던 힘을 객관화 시키는" 과정이 바로 영웅 신화의 근간이 된다.

끝으로, 저자는 종교에 접근하는 합리적인 방식으로 컨텍스트 개념을 소개하고 있는데, 아마도 결론부에 등장하는 '컨텍스트' 개념이야말로 이 책의 주제에 해당할 것이다. 즉, 종교 자체 혹은 종교의 경전 자체를 일종의 텍스트(text)라고 한다면, 컨텍스트(context)란 텍스트를 읽어 내는 다양한 관점과 해석을 의미한다. 따라서 윌리엄 페이든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신앙으로서의 종교와 학문적 대상으로서의 종교는 텍스트와 컨텍스트 개념처럼 병존할 수 있다'는 의미로 요약할 수 있다.

물론 우리에게 신앙으로서의 '종교'란 결코 타협의 대상이 되거나 비교,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절대적 영역이지만, 그렇다고 "삶의 모든 의미를 종교 속에 던져 놓고 '오직 믿음뿐'이라는 신념 속에서 생활하는 종교인"의 절대적 관점에 매몰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종교의 문제는 곧 인간 실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종교의 컨텍스트성을 외면할 수 없다. 비록 사이스의 신비상(神秘像)을 감싸고 있는 베일의 한 끝을 들춰보다 벌을 받을 운명이라고 해도….

덧붙이는 글 | 1. " " 부분은 주로 원전을 발췌, 인용한 대목입니다. 

2. 사이스의 신비상(神秘像): 플루타크가 전해 준 바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의 왕도(王都) 사이스에 있는 신상(神像)은 사람의 눈에는 감추어진 최고의 진리를 뜻하고 있었다 한다. 쉴러의 유명한 시 '사이스의 가리어진 상'에서는 어둔 밤 몰래 베일을 들춘 젊은이는 죽음을 맞는다고 했다. 아마 독일 낭만파에 유래된 이 전설의 양식(樣式)에 의하면, 엉뚱한 청년은 자기를 - 우주의 신비로운 뜻을 모조리 지닌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사람의 인식에는 한계가 있어, 이를 뛰어넘으려는 자는 어김없이 벌을 받는다고 했다.(하인리히 듀몰린, <온전한 사람> 중에서)


성스러움의 해석 - 종교를 읽는 여러 가지 방법

윌리엄 페이든 지음, 이민용 옮김, 청년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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