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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성씨를 사용하는 마을

▲ 야자수와 백사장이 어우러진 보라카이 해변
ⓒ 고봉주
필리핀 내 최고의 휴양지이자 가장 아름다운 섬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아클란주(州) 보라카이섬의 한 작은 마을에는 자신들의 조상이 한국인이라고 주장하는 부족이 살고 있다.

마을사람 대부분이 '킴포(Quimpo)라는 단일 성씨(姓氏)로 자자일촌을 이루고 있는데, 그들이 전하는 전설에 의하면 자신들의 조상이 한(韓)민족이며 한국으로부터 이주를 해 왔다는 것이다.

연대를 알 수 없는 아주 오래 전, 자신들의 조상이 한국의 김포라는 곳으로부터 돛단배를 타고 이 곳 보라카이로 이주를 해 왔는데 고향인 김포를 잊지 않기 위하여 '김포'의 필리핀식 발음인 '킴포'라는 성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관습에서도 그들의 주장은 제법 그럴듯한 근거를 담고 있었다.

한국인을 비롯하여 몽골계 황인종을 구분 짓는 특징 중 하나인 몽골반점이 이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다는데 이는 말레이 계통의 원주민들이 대부분인 필리핀 내에서는 유일한 경우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이자 세계적으로도 부러움을 샀던 대가족제도가 이들에게서는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으며, 아기를 안아서 키우는 필리핀의 전통 육아습관과는 달리 등에 업어 키운다거나 전 가족이 한데 모여서 식사를 하는 습관이 있는 것도 모두 한(韓)민족의 후예임을 입증하는 증거라는 것이다.

▲ 뿔이 날카로운 필리핀 들소
뿐만 아니라 집에서 기르는 가축 역시 필리핀의 여타 지역과는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필리핀의 소는 뿔이 길고 사나우며 등쪽으로 둥그렇게 굽어 있는 물소가 대부분인 반면 이 곳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누렁이라는 황소가 있다는 것이다.

작은 돛단배에다 우람한 황소를 싣고 가는 것이 가능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와 친숙한 황소가 이곳에만 존재한다는 것은 흥미거리를 떠나 학문 연구 대상이 아닌지 모르겠다.

보라카이 마을사람들이 조상의 고향이라고 주장하는 '김포'의 지명이 우리 역사 기록에 최초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고구려 장수왕 63년(475)이다(김포시 역사 참조).

이어 여러 형태의 지명으로 실명(失名)과 원상회복을 반복하게 되는데 고려가 망한 후(1392) 조선 태종 때에는 김포라는 이름조차도 사라지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그 후 다시 이름을 되찾기는 했으나 김포지역이 역사적으로 많은 격변을 겪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면 고려의 패망과 보라카이의 한민족 이주역사 사이에는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보라카이에서는 매년 1월 셋째 주 첫날에 시작하여 일주일동안 원주민들과 관광객들이 함께 어울리는 광란적인 축제의 향연이 이어진다. 이 축제는 고려왕조가 문을 닫을 무렵인 13세기경 이곳에 처음 도착한 보루네오인들과 현지 원주민 간 맺어졌던 우호조약을 기념하는 전통행사다.

보르네오인들이 보라카이로 이주해 왔다는 13세기는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단행하여 고려를 뒤엎고 조선을 건국할 무렵이다. 또 이성계의 조선건국에 반대한 72명의 고려 유신들이 개성 남동쪽에 있는 두문동에 들어가 끝까지 신왕조에 출사(出仕)하지 않고 불에 타 죽었던 시기와도 맞물려 떨어진다.

그러나 고려의 패망이 보라카이 주민들의 한국인 조상을 증명하는 직접적인 근거는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역사적인 사건에 바탕을 둔 진실이라면 조선의 건국을 거부한 김포지역의 유신들이 돛단배를 타고 황해를 건너 이 곳에 정착했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지는 않을까?

항해 중에 큰 파도나 폭풍을 만나 드넓은 바다를 유랑하던 일단의 무리들이 보르네오섬까지 떠밀려갔을 것이며, 원주민들보다 문명이 훨씬 앞서 있었던 이들이 원주민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환상의 섬 이야기를 듣고 원주민들과 함께 다시 이 곳 보라카이로 이주하여 정착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아름다운 섬 보라카이

보라카이는 7,000여 개가 넘는 필리핀의 섬 중 하나로 아클란(aklan)주 말라이(malay)시에 속한 가늘고 긴 섬이다. 남북으로 7km, 동서로는 1-2km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이지만 야자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해변과 파우더 같은 하얀 산호 백사장이 있어 오래 전부터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각광을 받아왔다.

'필리핀에 내려진 축복'이라고 칭송할 만큼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과 수정처럼 맑은 해변을 수놓고 있는 형형색색의 세일링 보트 그리고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수많은 여행객들과 토착민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광란(?)의 축제를 즐기는 아름다운 섬 보라카이.

이 아름다운 보라카이의 한 마을에 우리 한민족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필리핀 부족이 살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덧붙이는 글 | 보라카이에는 현재 한국의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에서 파견한 2명의 자원봉사자가 이 곳의 부족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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