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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금을 연주하는 이삼스님
ⓒ 김영조
“그대 오세요 / 소복수

오세요. 푸른 산 빛을 이고, 삼천세계 가득한 사랑으로 오세요.
별처럼 멀고, 이슬처럼 영롱한 그리움으로 오세요.

아득한 산과 산, 긴 능선의 선율처럼 그렇게 오세요.

그대 여음(餘音) 속 칡꽃의 냄새, 청옥취나물 향기
이끼 낀 숲속의 천년 고사(古寺)

바위산처럼 무겁고, 잎새처럼 가벼운 소리, 그 너머에서
영원에 닿을 한 호흡 간곡히 부르는 노래여.

꽃들은 깊은 잠에 잠기고, 별들도 어디론가 떠나려 합니다.
오세요. 어서 오세요. 그대 지상의 아침 싱그런 빛으로.

이 가을은 여음으로 장식할 고독의 사원입니다.“


▲ 이삼 스님 여음적 독주회
ⓒ 이삼스님
소복수 시인은 이렇게 이삼 스님의 여음적을 소개하고, 초대한다. 교통사고 이후 마비된 오른팔을 잊고, 한쪽 팔로만 연주하는 이삼 스님은 포도를 수확하는 포도순절에 속인들에게 만파식적을 선물한다. 장애우들에게 마음을 선물한다.

여음적(餘音笛)이란 무엇인가? 여음적은 기본 대금을 한쪽 팔로도 연주할 수 있게 개량한 것인데 왼쪽 팔의 다섯 손가락만으로도 연주할 수 있게 서양 관악기들처럼 키(key)와 보조키를 붙여 만들어진 대금을 스님은 그렇게 부른다. ‘여음적’, 넉넉한 소리라는 뜻일까?

1980년 녹성 김성진 선생으로부터 대금을 배운 스님은 무형문화재 제20호 기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이후 영산학회를 창설하고, '이왕직아악부' 출신의 궁중 정악의 대가들에게도 두루 공부를 했으며, 85년 국악경연대회에 출전해 금상을 타기도 하는 등 활발한 연주활동을 통한 포교를 하던 중 큰 교통사고를 당한다. 이로 인해 오른팔은 마비되고, 대금 연주의 희망은 사라진다.

이때 죽고만 싶었다는 이삼 스님.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팔순의 노인이 재활을 위해 열심히 운동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육체에 매인다면 재활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연이 닿아 손이 나으면 좋겠지만 낫지 않는다고 절망할 게 무엇이란 말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과 몰두와 고민에 빠지는 것은 그 결과가 크게 다름을 깨달았고, 모든 것은 자연에서 비롯되기에 순리에 따라야 할 것을 절감했다는 스님.

▲ 이삼스님이 정리한 '대금정악조' 중 평조회상
ⓒ 김영조
스님은 다시 한 달 만에 대금을 잡았다. 하지만, 어떻게 한쪽 팔로 연주할 것인가? 왼팔밖에 쓸 수 없었기에 대금의 여섯 개 구멍 중 고음을 내는 세 개의 구멍만 이용해 연주했고, 낮은 도는 높은 도로 바꿔내야 했다. 당연히 음역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 대금소리에 만족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인생역전이 일어난다. 그 절반의 음역을 가지고 10년을 씨름한 끝에 스님은 한쪽 팔로도 연주할 수 있는 대금을 고안한다. 스님은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이 대금에 '여음적(餘音笛)'이란 이름을 붙인다.

이후 스님은 더욱 활발한 연주활동을 했고, 지난 4월엔 신나라(회장 김기순)를 통해 “여음적 대금정악” 음반을 출시했으며, 또 8월엔 한여름을 불살라 대금 악보를 손수 정리한 ‘대금정악보’를 출간했다.

그런데 이 한쪽 팔로 연주하는 모습이 많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다. 이후 이런 소식을 들은 장애인들은 스님을 통해 큰 용기를 받았다는 뜻을 직간접적으로 전한다. 그러자 이삼 스님은 또 다른 결심을 하게 된다.

"제 소식이 방송으로 나간 뒤 많은 분이 저로 인하여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되었다며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좀 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그분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께 조금이라도 격려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준비했고, 이번 연주회에서 나온 수익금은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분들에게 작으나마 보탬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는 9월 13일(화요일) 늦은 7시 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신나라(회장 김기순)의 후원으로 '이삼 스님 여음적 독주회'를 스님은 연다. 모든 자리를 팔지 않고 초대로만 채운다는 스님은 그 자리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모금을 할 것이라고 한다.

▲ 한 손으로 연주가 가능한 대금, 여음적
ⓒ 김영조
“이 날 연주는 평조회상 <상영산>, 잦은 한잎 경풍년 <우조두거>, 수룡음 <농>, 중광지곡 <세령산>, <청성곡> 등을 독주하며, 송인길의 가야금과 사재성의 장고와의 협연인 중광지곡 <상영산>과 곽태천의 피리와 사재성과의 협연인 표정만방지곡 <상영산>이 연주된다.

이 연주에 덧붙여 이동규가 남창가곡 <언락>을 소리하며, 김영기가 여창가곡 <우락>을 소리한다. 우리 국악의 맑고 청아한 소리, 가곡을 같이 감상할 기회도 갖게 된다. 또 시인 소복수씨가 스님에게 바치는 시 <그대 오세요>를 낭독한다.

그런데 이날 스님이 연주하는 곡들은 모두 정악이다. 민속악의 산조라면 모르겠지만 정악대금을 일반 청중이 쉽게 소화할 수 있을까?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연주회에서는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최종민 교수의 감칠맛 나는 사회와 해설로 어려움을 단번에 날려버릴 것이다.

▲ 저녁 노을을 받으며, 연주하는 이삼 스님
ⓒ 김영조
뿐만 아니다. 스님의 연주를 한번이라도 들은 적이 있는 사람은 졸릴 걱정은 하지 않는다. 너무나 편안하고, 넉넉한, 소복수 시인의 말처럼 ‘영원에 닿을 한 호흡 간곡히 부르는 노래’인 연주에 ‘이게 그 어렵다는 정악이 맞아?’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가을을 시작하며, 우리는 이삼 스님의 이 아름답고, 청아한 천상의 만파식적 연주로 세속에서 쌓인 시름을 씻어내는 것과 함께 장애인들에게 간접적으로라도 손을 내미는 따뜻함을 가져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국립국악원 공연안내 : 02-580-3300
국립국악원 누리집 : www.ncktp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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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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