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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잡가 완창하는 김영임
ⓒ 김영조
김영임, 그녀를 모르는 사람은 한국에 없다. 한국 전통음악 민요의 대표가수 김영임은 많은 사람들의 우상이다. 천상의 음색, 뛰어난 가창력, 청중을 사로잡는 무대 매너는 웬만한 사람은 따라갈 수 없지 않을까?

명망도 돈도 부러울 것 없을 것으로 보이는 그런 김영임이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경기민요 12잡가를 완창하는 발표회가 8월 28일 늦은 3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고수 남궁랑의 장구장단에 맞춰 있었다. 전석 초대받은 사람들로 가득 찬 우면당은 12잡가를 완창한다는 것에 짓눌린 듯 엄숙한 분위기로 시작한다.

12잡가는 무엇인가? 우선 국악의 갈래를 보면 정악이 아닌 민속악에 속한다. 원래는 경기잡가이며, 서서 부르는 선소리에 비해 앉아서 부르는 앉은소리(좌창:座唱)에 든다. 조선 말기에 공예인, 상인, 기생들이 즐겨 불렀는데 지금의 서울역에서 만리동 고개 및 청파동에 이르는 지역에 살던 남자 소리꾼들인 '사계축(四契軸)'에 의해 널리 보급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산과 강을 구경하자는 '유산가(遊山歌)', 판소리 적벽가 중 적벽대전 대목을 옮겨온 '적벽가', 제비 후리러 나가는 '제비가', 판소리 춘향가를 일부 옮겼다 해서 '소춘향가', 뱃놀이 할 때 부르는 '선유가(船遊歌)', 춘향이 신관사또에게 끌려 나와 매 맞는 장면에서 집장사령의 행동을 표현한 '집장가', 춘향이 사또의 모진 매를 맞고 옥중에서 고생하는 대목인 '형장가', 평양기생 월선의 이름이 자주 나오는 '평양가' 등 8곡인 팔잡가(八雜歌)뿐이었다.

▲ 김영임의 경기12잡가 음반 표지
ⓒ 신나라
그런데 나중에 정가(正歌)인 12가사(十二歌詞)에 맞추기 위하여, 12달 내내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는 노래인 달거리(12월령가라고도 함), 매 열 대를 치는 동안 그 매 수에 맞추어 춘향의 절개를 엮어 나간다는 '십장가', 이도령과 춘향이 오리정에서 이별할 때 주고받는 사랑의 이야기인 '출인가(出引歌)', 사랑하는 낭군을 한양으로 떠나보내는 한 여인의 애절한 심정을 노래한 가사 '방물가(方物歌)' 등 이른바 잡잡가(雜雜歌) 4곡을 더해 12곡으로 만든 것이다.

이런 12잡가를 김영임은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2번 쉬는 시간 포함해 무려 3시간 동안 조신하게 소리한다. 정말 초인적인 힘을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일 것이다. 명창 김영임은 12잡가가 민초의 소리기 때문에 장신구도 전혀 없이 쪽진 머리로 조촐한 발표를 하리라 맘먹었다고 고백한다. 아니 원래는 삼베적삼 차림까지 하려고 했다는 애기다.

이렇게 어려운 소리를 김영임은 왜 하는 것일까? 너무 열심히 준비한 후유증인지 소리가 간간이 갈라진다.

▲ 김영임 명창
ⓒ 김영조
"저는 35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무대에서 경기소리를 불러왔습니다. 원 없이 경기소리를 불렀지만 아직도 참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늘 아쉬움을 갖고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경기소리는 진정한 한국의 소리임을 깨닫습니다. 그 중에서도 경기 12잡가는 담백한 맛과 소박한 멋이 있는 소리로 더욱 가슴에 와 닿기에 경기소리의 정수라 할 수 있어서 이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많이 준비한다고 했는데도 끝내고 나니까 너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높게 키를 잡아서 나가니 3시간 완창이 무리가 되었습니다. 결국 몇 군데서 소리가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부족한데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신 청중들께 정말 엎드려 고마움을 전합니다."


명창은 겸손하게 완창 소감을 밝혔지만 마지막 '달거리'를 시작하자 간간히 추임새를 넣던 청중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박수를 쳤다. 12잡가의 성격으로 보아 쉽지 않은 일임에도 청중들의 큰 호응을 끌어내고 발표회는 막을 내렸다.

돈이나 명망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으려는 세태에 이런 용기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이후 별도로 만나서 인터뷰를 하면서 그것부터 질문했다.

"어렵다고 하지 않고, 돈과 명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피하는 것은 올바른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국악을 사랑하고, 전통문화의 발전을 위한다면 힘든 작업이라도 과감히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 아닐까요?"

김영임은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어왔다. 1973년 민속경연대회 장원을 한 이후 한국방송(KBS) 국악대상 3번, 한국방송대상 국악인상 4번을 비롯해 많은 상을 끊임없이 받아왔으며, 2003년엔 국민화관훈장과 대통령상을 받기에 이른다. 그의 인기가 이렇게 식을 줄 모르는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 옆에서 그림자처럼 보살펴주는 남편 이상해씨가 대신 얘기한다.

▲ 김영임의 경기12잡가 책 표지
ⓒ 민속원
"저는 그것이 본인의 끊임없는 그리고 피나는 노력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집에 녹음기가 몇 대인지 모릅니다. 선배 국악인들의 소리를 많이 들어야 한다며 집에 있을 때는 하루 종일 녹음기를 돌립니다. 심지어 제가 짜증이 날 때도 있을 지경입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제 생각엔 그 엄청난 노력을 사람들이 인정한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김영임은 그런 이상해씨에게 정말 고맙다고 한다.

"남편은 오늘의 저를 있게 한 사람입니다. 제가 보석이나 장신구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지만 남편은 제게 보석이나 장신구를 별로 사주지 않았어요. 대신 그는 건강해야 소리를 할 수 있다며 늘 운동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고 이끌었습니다. 12잡가 완창을 한 것도 건강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면 그건 분명 남편의 공이죠."

그러면서 김영임은 남편이 진정한 보석을 선물해줄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며, 은근히 그리고 애교스럽게 남편에게 협박하는 매력도 보인다. 이상해씨는 은근한 협박이 무섭다며 허허 웃는다.

김영임에게 국악인 김영임이 생각하는 사회환원에 대해 물었다.

"저는 막내로 자라서 남에게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게 국민들은 분에 넘치는 사랑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국민들이 제게 조금이라도 옆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의탁노인을 씻겨드리고, 버림받은 아기를 가슴에 꼬옥 안아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더 큰 환원은 진정한 소리를 들려드리는 일일 것입니다."

▲ 12잡가 완창하는 김영임
ⓒ 김영조
김영임은 많은 사회복지시설에서 무료로 공연하는 것은 물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봉사를 기쁨으로 삼고 있다. 명망과 돈을 손에 쥔 사람들이 사회환원에 인색한 세태에서 박수를 받을 일임이 분명하다.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명창에게 또 하나의 매력을 발견한다. 무대에 서는 유명인들은 화장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것이 보통이다. 화장하지 않고 장신구도 없는 수수한 차림으로 나타난 명창에게 나는 사진을 찍어도 괜찮을지 물었다. 그는 김영임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일이라며 당연하다고 말한다. 김영임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다.

이번 완창발표회에 맞춰 펴낸 책 <김영임의 경기12잡가>는 스승 묵계월 선생에게서 배운 선율을 정확하게 채보하고, 장단 및 노랫말에 대한 해설까지 곁들여 누구든지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한국어정보학회 김두루한 총무간사는 발표회에 참여한 소감을 말한다.

"김영임, 그 이는 우리가 만나고 싶었던 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듯했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시원스러운 소리다. 12잡가는 아직도 살아 있는 정서로 우리가 즐겨 부르고, 우리 모두가 함께 부를 수 있는 소리라 생각한다."

중간 중간에 쉽고 감칠맛 나는 해설을 맡았던 이미시 문화서원 한명희 좌장은 김영임을 타고난 재주뿐 아니라 엄청난 노력을 마다지 않는 정말 칭찬하고픈 명창이라고 극찬한다.

3시간의 완창, 그것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더냐? 한 민요전문가는 내게 벼르고 왔다며 문제점을 꼭꼭 짚어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완창이 끝난 뒤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한 대단한 일을 한 그에게 이럴 땐 지적하는 것이 오히려 왜소하게 보일 것이라며, 거꾸로 내게 많은 칭찬과 격려를 요구한다.

"세상이 어지럽고 시끄러워지는 것은 소리가 조용하지 못하고, 고르지 않게 나오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리는 말을 담아내는 율조입니다. 또한 말은 뜻을 담고 있어야 하며, 그 뜻이 말이 되어 소리로 바뀌게 되고, 고르게 다듬어진 소리가 밖으로 나올 때 그 소리에는 기쁨과 슬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희로애락이 담겨 있기에 소리로 세상의 소음을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창의 철학이 담긴 말이다. 자신의 명망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전통문화의 발전을 위해 그 어렵다는 12잡가 완창을 한 김영임은 많은 이들의 칭찬을 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이제 김영임이 어렵고도 험한 길, 하지만 꼭 가야할 길을 앞서서 나간다. 우리 모두 그를 따라 성큼성큼 전통문화의 길을 고속도로로 만들어 가자. 많은 사람들이 뒤를 따라 오도록….

▲ 12잡가 완창하는 김영임과 고수 남궁랑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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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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