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부산으로 이사 온 지 1년이 다 되어가면서도 나는 여전히 촌티를 벗지 못한 촌놈입니다. 굳이 촌놈이라는 걸 숨기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아직도 구두를 신고 다니는 것보다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것이 더 편합니다. 세수하고 얼굴에 로션도 잘 바르지 않습니다.

▲ 내가 애용하는 고무신.
ⓒ 박철
길눈도 어둡고 도무지 어딜 가나 빠릿빠릿 하지 못하고 굼뜹니다. 한 번은 결혼주례 부탁을 받고 집을 나섰는데 결혼식 예정시간보다 한참 이르게 도착해서 시간을 때우려고 인근 커피숍에 갔다가 결혼식장을 찾지 못해 애를 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의 촌놈 이력도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1970년 초반 고등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때 두 달 동안 서울에 올라와 대학입시 준비를 위해 종로 ○○독서실에서 먹고 자고하며 학원을 다녔습니다. 그 전에 몇 번 서울에 와보았지만 그냥 스쳐 지나간 것에 불과했고, 그때 처음으로 서울을 경험했습니다.

음대를 다니던 누나가 아현동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누나 집에 가려고 종로에서 버스를 타면 꼭 반대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청량리에서 내렸는데 돈은 한 푼도 없고, 방향은 모르겠고 물어물어 종로까지 다시 돌아오는데 땀깨나 흘렸었습니다.

그때 얼간이 촌놈이 공중전화를 처음 보았습니다. 공중전화로 누나 집에 전화를 거는데 자꾸 돈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수화기를 들고 동전을 넣어야 하는데, 먼저 동전을 집어넣었습니다. 한참 나중에야 왜 동전이 도로 나오는지 알았습니다.

그 해 여름 '쭈쭈바'가 유행이었습니다. 애들이 독서실에서 다 '쭈쭈바'를 빨고 있었습니다. 시원하겠다 싶어 나도 슈퍼마켓에 가서 '쭈쭈바'를 샀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먹을 줄을 몰랐습니다. 아무리 빨아도 얼음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애들은 입으로 쭉쭉 빨아 먹던데… 한참 주무르다보니 다 녹았습니다. 나중에 칼이나 이빨로 끝을 잘라야 한다는 것을 눈치 채고 이빨로 '쭈쭈바' 끝을 잘랐는데 얼음물이 옷에 다 튀고 말았습니다.

그해 처음 강원도 산골 촌놈이 피카디리 극장에서 영화다운 영화를 구경했습니다. 영화는 '닥터지바고' 였습니다. 책으로 보아 내용을 이미 알고 있던 영화였는데, 얼마나 재밌고 감동적이었던지 밖으로 안 나가고 연거푸 두 번을 보았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밖엘 나왔는데 눈이 퉁퉁 부었습니다.

종로학원을 다녔는데 점심에 떡라면을 처음 먹어 보았습니다. 떡라면은 고급이었습니다. 매일 점심은 그냥 라면을 먹고 토요일에만 떡라면을 먹었습니다. 그 맛을 잊을 수 없습니다. 가끔 다방을 갔었는데 여자 애들이 담배 피는 걸 처음 보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싸가지 없어 보였는데 몇 번 보고 났더니 나중에는 멋있게 보였습니다. 아마 강원도 촌놈이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 같습니다.

공부하러 서울에 올라와서 공부는 안 하고 거대한 도시문명에 정신이 팔려 바람난 수캐 모양 여기저기 한눈만 팔다가 내려갔습니다. 그해 나는 대학입시에 보기 좋게 떨어졌습니다.

10년 전 유럽 배낭여행을 갔는데 만날 허름한 여인숙 같은 데서 잠을 자다가 처음으로 호텔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화장실 변기통 옆에 작은 변기통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세면대인줄 알고 거기다 얼굴도 씻고 손수건도 빨고 그랬습니다. 그건 변기통이 아니라 비대였습니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갔다 출입구를 찾지 못해 박물관 구경을 한 것이 아니고 출구를 찾다가 시간을 다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루브르 박물관 분수대 앞에서 버너로 밥을 해서 총각김치와 고추장에 밥을 비벼서 먹는데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수군수군거리며 구경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개의치 않고 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때는 한국에서 떠난 지 며칠 되지 않았던 때라 총각김치가 남아 있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아무래도 촌놈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촌놈이라고 기가 죽지는 않습니다. 촌놈은 촌놈끼리 단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촌놈 파이팅!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