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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실리고 나서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방송국에서 연락이 와서 엄마가 공중파를 탔다. 공중파를 타고 나서 엄마가 다니는 사찰(대원사)을 공양주로 모시고 싶다는 문의가 몇 건 있었고, 식당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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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엄마는 금방 일상으로 돌아오셨다. 여전히 사찰에 들르시면 공양간에서 분주하셨고, 매주 금요일마다 한 복지단체에서 독거노인 도시락 싸는 일에 자원봉사로 참여하셨다. 어느 날, 그 복지단체 관계자로부터 조선대학교의 전통식품 첨단화 인력양성 사업단에서 전통식품 공모전을 하는데 사찰요리 부문에 응모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연락이 왔다.

상업적인 제의에는 거절하시던 엄마가 공모를 하시겠단다. 사실, 엄마의 적극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우리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육중한 몸매를 과시(?)하며 열성적으로 어머니 농구단에서 활동을 했고, 어머니 독후감대회에는 중학생인 내게 원고를 써달라고 거의 강요를 하다시피해서 입상을 하셨다.

▲ 대원사 주변에 자생하고 있는 머위
ⓒ 정혜자
응모를 통보해 놓고 대원사의 현장 스님과 의논을 하여 '머위대 조림'으로 메뉴를 결정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머위를 알까. 머위는 요즘이 한창 제철이다. 산중에 습기가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다. 어머니가 다니는 사찰 주변에도 이 머위가 많이 자생하고 있다. 사찰요리는 기본적으로 그 사찰의 주변의 산과 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진단다. 가난한 절집에서 반찬을 만들자면 자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일단 머위를 길게 잘라서 깨끗이 씻은 다음 소금물에 반나절 정도 절인다. 1시간 정도 푹 삶아서 껍질을 벗긴다. 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껍질 벗기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우리의 전통 요리는 모두 정성을 기본으로 했다.

사람의 노동이 스미는 시간이 담겨야 음식에 깊은 맛이 나온다. 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을 대체해 음식을 만드는 나에게 엄마가 자주 쓰는 단어는 '정성'이다. "기계로 한다고 정성이 없는 건 아니잖아?" 말도 안 되는 말대꾸를 하면서 속으로는 언제나 뜨끔하다.

▲ 사찰 요리부문 응모 작품 - 머위대 조림
ⓒ 정혜자
껍질을 벗긴 머위는 다시 서너 시간 정도 물에 담가 아린 맛을 우려낸다. 우려낸 머위를 소쿠리에 건져서 물기를 뺀 후 진간장, 집간장, 조청, 들기름으로 만든 양념장에 버무린다. 엄마는 신식 교육을 받은 분이 아니다. 그래서 흔히 우리가 양념의 용량과 비율을 말할 때 사용하는 큰술, 작은술을 모른다.

주최 측에서 요리하는 과정을 영상물로 촬영을 할 때도 엄마는 "이만큼"이나 "조금 더 많이"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옆에서 내가 "엄마, 1큰술, 2작은술 이렇게 말해야지" 말참견을 했지만, 들은 체도 안 하고 천연덕스럽게 엄마의 방식을 고수했다.

양념장에 버무린 머위대를 역시 서너 시간 약한불에서 푹 졸이면 머위대 조림이 완성된다. 여러 시간 불기운에 푹 졸였으니 씹는 맛 없이 입에서 살살 녹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머위대 조림은 쌉싸름한 맛에 아삭하게 씹히는 느낌이 일품이다.

흔히 머위대는 오리탕이나 양탕 등 보양탕에 여름철 우거지 대신 넣기도 한다. 문헌에는 기관지에 좋고 중풍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머위는 수분이 많아서인지 냉동 보관을 하면 맛이 없어져 버린단다. 대원사에서는 제철에 머위를 많이 잘라서 소금물에 절여 항아리에 담은 다음 돌로 꽉 눌러서 보관을 한다. 보관 방식도 재래식이다.

▲ 대회 관계자와 수상자들 - 앞줄 한복 입은 분이 엄마
ⓒ 정혜자
사찰에서 공양(식사)를 하기 전에 읊는 게송의 내용 중에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라는 부분이 있다. 주 재료가 산중에서 나는 풀과 열매로 만들어졌으니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약은 약이다. 정성을 기본으로 하고 별다른 양념이 없어도 간(염분의 정도)만 잘 맞으면 맛있는 음식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이 엄마의 지론이다. 시상식 날 축하해주러 오신 엄마의 지인들께 미리 준비한 머위대 조림을 싸 주시며 역시 한 마디 하신다.

"모양은 벨로여도 약이라고 생각하고 묵어 보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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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초보라서 잘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좋은 기사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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