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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류가 큰 바람을 일으키고 있지만, '짝퉁한류'로 통칭되는 불법복제가 만연해 정작 알짜는 놓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한류가 산업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먼저 국내에서 그 재산 가치를 보호해줘야 한다."

최근 퍼블리시티권 도입을 위해 저작권법 개정작업에 착수한 박찬숙 의원은 "한류가 궁극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먼저 한류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하는 기반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박찬숙 의원
ⓒ 김태훈
<겨울연가>는 일본에서, <대장금>은 대만과 홍콩에서 연일 대박을 터트리고 있지만, 중화권은 물론 문화 콘텐츠 선진 시장인 일본과 미국에서도 지적재산권을 무시한 불법제품이 난무하면서 '재주는 한국이 부리고, 돈은 현지 장사꾼이 번다'는 자조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 더구나 한류의 발신지인 한국에서조차 문화 콘텐츠의 불법복제와 무단 상품화가 수그러들지 않아 한류는 물론 국내 문화 콘텐츠산업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찬숙 의원은 "국내에서조차 문화 콘텐츠의 지적재산권 보호가 취약한데 어떻게 외국에다가 저작권 보호를 요구할 수 있겠냐"며 "이번에 도입하려고 하는 퍼블리시티권은 문화 콘텐츠의 재산권 보호를 위한 첫 번째 단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퍼블리시티권'이란 기존의 초상권에서 재산권의 개념을 강화한 개념으로 이름, 초상, 서명, 목소리 등의 인격적인 요소가 파생하는 일련의 재산적 가치를 권리자가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권리를 일컫는다. 퍼블리시티권이 도입될 경우 기존의 초상권 침해가 소액의 '위자료' 수준에서 마무리되던 것과 달리 재산가치를 산정해 고액의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다음은 25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박찬숙 의원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의 주요 내용이다.

- 퍼블리시티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퍼블리시티권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보좌관들과 함께 연구해 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달 25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한류연구회 창립총회' 기념세미나에 참가한 류시원씨가 명동에서 자기 얼굴이 새겨진 머그잔이 본인 허락 없이 판매되던 상황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날 세미나를 통해 여러 의원들이 퍼블리시티권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최근 언론에서 홍콩과 중국 등지의 '짝퉁 한류'를 많이 지적하고 있다. 재주는 한국 스타들이 부리고 있지만 정작 알짜는 현지 장사꾼이 챙긴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런 식으로는 한류가 제대로 대접받지도 못하고, 그만큼 수명도 짧아질 수 있다."

- 이미 초상권이 있는데 퍼블리시티권을 별도로 도입코자 하는 이유는?
"초상권은 기본적으로 '인격권'의 개념이다. 다시 말해 초상권이 침해됐다면, 그것은 특정인의 인격, 즉 명예가 손상됐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거기에 대한 배상이 '위자료'의 형태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지난 2001년에 배우 이미연씨의 스틸 사진이 무단으로 음반 표지에 사용된 적이 있는데, 당시 음반사는 이미연씨에게 위자료로 단돈 100만원을 지급한 적이 있다. 위자료이기 때문에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퍼블리시티권이 도입된 독일에서는 지난 1994년 모 잡지사가 파파라치의 주요 표적이었던 모나코의 캐롤라인 공주 인터뷰 기사를 무단 게재한 적이 있는데, 이때 독일 법원은 잡지사에 18만 마르크, 우리 나라 돈으로 1억 800만원에 달하는 배상을 결정했다. 이처럼 독일의 배상액이 큰 이유는 퍼블리시티권이 초상권과 달리 '재산권'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특정인의 인격적인 요소, 즉 이름, 초상, 서명, 목소리 등이 만들어내는 재산적 가치에 주목하기 때문에 그만큼의 액수가 산정될 경우 고액의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해진다. 사실 이 정도는 돼야 도용이 복제를 제재할 수 있지 않겠나."

- 일각에서는 퍼블리시티 도입 등 지적재산권 강화가 국내 문화 콘텐츠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을 도와 주는 결과를 낳지 않겠냐고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우리 나라는 현재 문화 콘텐츠의 수입국이면서 동시에 수출국의 지위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하지 않으면 알짜는 놓친다. 다이아몬드가 왜 귀한가?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경쟁 상품이 없기 때문 아닌가? 한류도 세계 시장에서 귀하게 대접 받으려면 짝퉁이 정품을 대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 잡아 놓지 않으면 한류가 싸구려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미국을 봐라. 슈퍼 301조를 발동해서 지재권 침해가 발생할 때 보복관세를 매기지 않는가. 일본도 마찬가지로 자국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 나라도 문화 수출국을 지향한다면 지적재산권을 불가피하게 강화해야 한다."

▲ 박찬숙 의원
ⓒ 김태훈
- 언론 보도를 보니까 미국 무역대표부가 국재지적재산권연합(IIPA)에 우리 나라를 우선감시대상국(PWL)에 남겨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우리 앞가림도 잘 못하는 상황에서 외국에 한류 재산권 보호를 강하게 요청할 수 있겠냐는 우려가 있는데.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 문화 콘텐츠의 재산권 보호를 소홀히 한다면, 이 세상 어느 누가 그 일을 대신해 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재산권을 보호하려면, 상대방의 재산을 먼저 보호하는 것이 당연하고, 이를 위해서 국민들과 업계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물론 미국과 일본 같은 문화 콘텐츠 선진국과 일대일로 경쟁하기에는 우리 문화 콘텐츠의 경쟁력이 아직 부족하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한류라는 기적을 일궈냈다. 그것도 반짝 흥행이 아니라 7~8년 가까이 꾸준하게 그 흐름을 이어오고 있다. 객관적인 데이터로는 부족하게 나타나겠지만 발전 가능성을 봤을 때는 해 볼만 한 경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류와 관련한 지적재산권 분쟁이 일어난다고 가정했을 때, 그 협상 기준은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국내법이다. 따라서 한류를 수출한 국가와의 지적재산권 협상을 유리하게 끌어가기 위해서는 국내법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정비돼 있어야 한다."

- 한류 콘텐츠의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하는 조치가 수입국 입장에선 지나치게 일방적이라고 느껴져 반감을 일으키지는 않겠는가?
"물론 퍼블리시티권 도입이 도깨비 방망이는 아니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의 한류가 의미를 가지겠지만, 세계 시장에 접근할 때는 한류보다는 아시아 문화로 접근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아시아에서 우리 문화 콘텐츠만 잘돼 이웃의 반감을 사는 것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지난 토론회에서 '아시아스토리뱅크'를 만들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 한국 독자의 스토리도 중요하겠지만, 아시아 민족들은 대부분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마다 풍부한 이야기 거리를 가지고 있다. 이들 이야기를 스토리뱅크에 축적해 공동으로 사용하게 된다면 서양 문화가 결코 좇아올 수 없는 아시아만의 문화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당시 토론회에 참석한 일본의 코이케코 오리콘사운드사 사장과 베트남 문화신문의 부란아인 기자가 적극적으로 지지한 바 있다. 산업적인 면에서도 공동 스토리뱅크는 국가 및 기업간 공동제작을 촉진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산업은 산업이면서 동시에 문화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교류를 통해 문화가 발전한다는 논리는 문화산업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적재산권은 보호돼야 하겠지만, 그것이 국가간 문화교류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발전하기 위한 것으로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이다."

- 한류는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노력해 이룬 기적이라고 말씀하셨다. 현업 종사자들과 정부 당국자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이미 규정돼 있다. 따라서 한 나라의 문화산업은 이제 그 나라의 위상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행히 90년대 말부터 한류를 통해 우리 문화 콘텐츠가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로지 비즈니스 현장에서 혼신을 바친 업계 종사자 여러분의 공로다. 이 자리를 빌려 한류를 일궈낸 여러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한류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특별히 기여한 바는 솔직히 별로 없다. 아니, 한류가 좀 잘 된다고 관료가 나서서 간섭했더라면 오늘의 영광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문화산업이 조금 성장한다고 성급하게 산업의 논리를 들이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뒤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문화산업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은 꼭 필요하다. 업계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해외시장 정보, 수출 노하우, 인력 양성, 기술 개발 등 문화 콘텐츠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인프라를 튼튼하게 다져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박찬숙 의원은?
KBS아나운서 1기....한국의 대표적인 방송진행자로 명성

▲ 박찬숙 의원

1945년생으로 수원여고와 숙명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KBS 아나운서 공채1기로 우리나라 최초로 9시 TV뉴스를 진행했고, KBS 제1라디오 <라디오 정보센터 박찬숙입니다>를 통해 대표적인 방송진행자로 명성을 얻었다. 이후 EBS, KBS, YTN, iTV 등 주요 방송사에서 토론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이유있는 직설'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부위원장 겸 홍보위원장으로 정계에 투신해 17대 국회 비례대표로 당선됐고, 행정자치위원회를 거쳐 현재 문화관광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퍼블리시티권 도입과 함께 한류와 문화 콘텐츠산업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서로는 시사 칼럼집 <세상을 열다 사람들을 열다>, 소설 <사막에서는 날개가 필요하다>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CT News(www.kocca.or.kr/ctnews)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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