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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아빠, 산타할아버지는 어디 사는데?
“눈이 많이 내리는 북쪽 나라.”

- 그런데 왜 1년에 한 번밖에 안 와?
“그건 아이들이 너무 많고, 또 산타할아버지도 열심히 일해서 선물 준비해야 하거든.”

- 그런데 아빠, 산타할아버지는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그건 네가 갖고 싶은 선물을 아빠한테 말하면 아빠가 산타할아버지한테 전화로 알려주니까 알지.”

- 그럼 아빠는 산타할아버지네 전화 번호 알아? 그리고 산타할아버지랑 직접 말도 해?
“그럼.”

- 그런데 아빠, 그 전화 번호 나한테 말해주면 안 돼, 나도 산타할아버지랑 얘기하고 싶은데, 응.
“안 돼. 산타할아버지가 절대로 가르쳐주면 안 된다고 했다. 약속 안 지키면 아빠가 혼난다고 했다.”

5월에 산타할아버지 이야기해서 엉뚱하죠.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1년 내내 산타할아버지 이야기를 합니다.

“밥 안 먹으면, 동생 때리면, 이 안 닦으면, 사탕 많이 먹으면, 책 읽기 싫어하면, 텔레비전 너무 가까이서 보면, 친구하고 싸우면, 장난감 사달라고 떼쓰면…겨울에 산타할아버지 안 오신다. 다른 친구들한테만 선물 주고 너한테는 안 주신다.”

이런 식입니다. 이러고 나면 얼마간은 조용해집니다. (산타할아버지 죄송합니다. 당신을 이렇게 활용하는 저희를 가엾게 여기소서.)

그런데 아이가 올해 유치원에 들어가더니 친구들한테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자꾸 산타할아버지네 전화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조릅니다. 아마도 산타의 존재에 대한 논란이 또래들 사이에서 있는 모양입니다.

그 가운데는 산타의 부재를 이미 알고 있는 똘똘한 녀석도 있을 것이고, 또 산타의 존재를 확신하는 어수룩한 녀석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많은 아이들은 제 아이놈처럼 혼란에 빠져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산타할아버지네 전화번호는 모든 논란을 잠재울 확실한 물증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저도 모르는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려줄 수 있겠습니까?

제 아이놈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제 어린 시절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저도 비슷한 일로 친구와 다툰 적이 있었거든요. 하루는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이미 맞본 친구 녀석이 “야, 산타할아버지는 가짜다”라고 폭탄선언을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아니다. 산타할아버지는 진짜 있다. 안 그러면 어떻게 우리한테 선물을 주시는데?” 그러자 선악과를 맞본 친구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거 너네 엄마아빠가 갖다 놓은 거다.”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란 말입니까. 그때부터 저는 지금의 제 아이놈처럼 혼란스러워졌고 참 많이 고민했습니다.

우리 아이도 산타할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알 날이 곧 올 것입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아직은 그 아이에게 산타할아버지가 계시다고 우길 작정입니다. 아니 그 분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할 생각입니다. 선악을 명확하게 구분해주는 공정한 심판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아이가 안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산타할아버지의 부재를 이미 알고 있는 우리 어른들조차도 가끔은 그분을 그리워하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더욱 더 그러할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엄마 아빠, 아이한테 전화번호 가르쳐주면 안 됩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 때 제발 좀 들키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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