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너구리 투수' 장명부 죽다.

얼마 전 기억 속에서 잊고 지냈던 장명부의 소식을 들었다. 장명부 하면 한국 프로야구에서 1983년 한해 30승의 대기록을 세운 삼미 슈퍼스타즈의 투수였다. 삼미 슈퍼스타즈를 떠올리니 약 2년 전에 나온 한 소설이 생각났다.

▲ 겉그림
ⓒ 한겨레신문사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야구에서 3할 타율은 실력 있고 성공한 타자지만, 인생에서 3할은 결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다. 이 소설은 그런 3할도 모자를 판에 겨우 '1할 2푼 5리'의 성공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삶을 산 인생에 대한 찬미가이자 1982년부터의 삶을 되짚어 올라오는 '후일담' 소설이다.

이 책은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고 웃음이 나올 정도로 일단 재밌다. 덕분에 쉽게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데 아마 소설 속의 배경이나 시점을 공감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주인공이 아버지와 같이 교복을 맞추러 가서 벌어지는 풍경과 횟집 아주머니의 대한 작가의 비유법에 나는 자지러질 듯이 웃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이 좋아서라기보다 박민규라는 사람에 빠져서 책을 보게 됐다는 것을 먼저 고백한다. 물론 그를 만나 본 적은 없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조까라, 마이싱이다!'란 황당하기도 하고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읽고 나서다. 그의 책이 텔레비전 책 소개하는 프로그램에도 나오고 재밌다는 말도 들렸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 이 '조까라, 마이싱이다!'이란 글을 보고 뭔가에 빠져드는 것 같은 묘한 매력을 느꼈다.

지은이 박민규는 전혀 장군 같지 않은 수염에 언뜻 보면 외모와 담쌓을 것 같은 모습이지만, 자세히 보면 선글라스와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에다 염색에 파마까지, 치장이란 치장은 다했다.

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한국야구사에 있어 깨지지 않을 기록만 남기다 사라진 삼미 슈퍼스타즈와 열혈팬이었던 주인공의 삶을 교차시키며 쓴 책이다. 독특한 그의 모습만큼이나 관심이 가는 소설이다.

나는 해태 타이거즈를 좋아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삼미 슈퍼스타즈에 관한 기억은 별로 없다. 그저 아는 것이라곤 너구리 투수 장명부, 심판과 싸움을 잘했던 감독 정도만 정도가 떠오를 뿐이고, 영화로 알게 된 감사용은 사실 영화가 나올 때까지 그런 선수가 있는지도 몰랐었다.

만화 화실의 한 고참 선배는 MBC 청룡의 열혈 팬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때 잠실야구장은 7회말 이후에는 입장이 공짜였다.

나와 선배는 야구를 너무 좋아했지만 돈이 없어 7회말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공짜로 야구장에 들어가곤 했다. 그때까지 엎치락뒤치락 하거나 8회 이후에 승부가 나는 경기는 지루한 기다림을 보상받는 더없는 행운이었고 행복이었다.

하루는 그렇게 기다리다 들어간 경기에서 MBC 청룡이 연패하자 그 고참 선배가 락커룸으로 들어가는 MBC 청룡 선수들을 보며 말했다.

"직장에선 상사 때문에 열 받고, 집에선 마누라 때문에 열 받고, 그나마 야구장에 오면 좋을 줄 알았는데, MBC 청룡 때문에 더 열 받는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그 말에 뒤집어질 정도로 웃었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받기 힘든 공은 받지 않는다'라는 야구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그런 것을 하기 위해 소설 속 주인공들은 야구를 한다.

책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통쾌함은 주인공처럼 만용에 가까운 용기를 부리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나를 발견하고 주인공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느껴서인지도 모른다.

책을 한 권 샀다고 해서 작가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전에 홍대 근처 패스트푸드에서 먹었던 맛없는 500원짜리 햄버거에 자판기 커피 한잔 정도의 돈이나 될까? 그렇지만 묵묵히 응원을 보내는 독자들이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날도 좋은데 어서 서점으로 가자.

덧붙이는 글 | .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개정판

박민규 지음, 한겨레출판(2017)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