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어린 시절 배우고 들은 우리 역사

▲ 책의 겉그림
ⓒ 한길사
어렸을 때 나는 우리 나라가 남과 북으로 나뉜 게 소련 때문이라고 배웠다. 미국과 소련과 영국 그 세 나라가 모스크바에서 회의를 할 때, 그때 우리 나라를 두 동강 나게 한 게 바로 소련이라고 배웠다. 그 때문에 소련을 죽일 놈처럼 미워했고, 소련과 손을 맞잡은 중공도, 그리고 그 은덕을 입고 남침을 했다는 북한도 몹시 미워했다.

또 미운 나라가 하나 더 있었다. 일본이란 나라가 그 나라다.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서는 책으로 배운 것은 없었고 어머니한테서 모든 것들을 들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우리 나라 땅을 빼앗았고, 말도 빼앗았고, 부녀자들도 많이 빼앗아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욱이 우리나라 사람을 총칼로 죽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몸에 흐르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기도 했다.

그와는 달리 어린 시절 몹시 좋아했던 나라가 있다. 그건 미국이란 나라이다. 미국은 우리 나라가 전쟁으로 힘들어 할 때도 도와 주었고, 또 배고플 때에도 먹을 것을 많이 주었다고 들었다. 더욱이 우리 나라가 그렇게 두 동강이 나는 것을 반대한 나라가 미국이라고 들었으니, 정말로 미국은 내게 좋은 나라였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탠다면 박정희 대통령도 내게 우상이었다. 어렵고 힘든 나라 살림을 세우기 위해 대통령이 두 팔을 걷어 올렸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한 마음이 돼서 새마을 운동을 할 때, 나도 무척 신이 났다. 그때 동네 앞에 울러 퍼졌던 새마을 운동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신나게 길을 닦았고, 풀도 베었고, 청소도 앞장섰다.

커가면서 알게 된 우리 역사

그런데 커가면서 그런 역사들이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둘 알게 됐다. 물론 모든 역사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고, 그토록 좋아했고 또 닮고 싶어했던 미국이란 나라와 박정희 대통령이 그랬다.

어린 시절에 들었던 미국이란 나라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풀고 거저 주는 나라인 줄 알았다. 그리고 정말로 우리 나라가 잘 살기를 바라고 평화를 바라는 나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커가면서 알게 된 것은 미국이란 나라가 괜히 우리를 도와 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도와 준 것은 무기를 비싼 값에 팔아먹으려는 까닭도 있었고,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한 것들을 만회해 보려는 이유들도 있었다. 더욱이 주둔군지위협정이라는 것도 세워뒀지만 그것 때문에 피해를 입은 것은 정작 선량한 우리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또 박정희 대통령도 그랬다. 그저 굶주린 배를 채워주고 길도 닦아주었으니 모든 게 좋으면 좋은 줄 알았다. 어린 시절 그렇게 배웠고 또 들었으니 정말로 모든 백성들을 끔찍하게 생각해 주는 대통령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가 혈서를 쓰면서까지 일본군 앞잡이 노릇을 한 덕에 대통령이 됐고, 또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 권세를 오래도록 움켜쥐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야 했는지 낱낱이 알게 됐으니, 여태껏 잘못 알고 있었던 역사였다.

리영희의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읽고

그런데 얼마 전, 정말로 생뚱맞은 것 같은 우리 역사 몇 가지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그건 일제식민지 시대를 비롯해 해방과 한국전쟁, 4·18, 5·16, 광주민주화운동들을 거쳐 최근까지 한국현대사를 온 몸으로 맞은, 리영희 선생님이 쓴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통해서였다.

그 가운데 한 가지를 이야기해 보면, 우리 나라를 두 동강으로 나눠서 통치하자는 이야기를 했던 나라는 소련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1945년 12월에 열린 모스크바 삼상 회의 때 그와 같은 주장을 편 나라는 소련이 아닌 미국이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리영희 선생님은 당시 중국의 장개석 총통과 소련의 스탈린은 조선민족의 독립을 즉각적으로 제안한 반면, 영국의 처칠과 미국의 루즈벨트는 조선인은 결코 스스로 통치할 능력이 없으니, 20년 내지 30년 정도는 '신탁통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럼 미국은 왜 우리 조선이 스스로 통치할 수 없는 나라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것은 당시 미국 내 최고지도자들 가운데 조선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인데, 그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이나 군 고위 참모진이 갖고 있던 조선에 관한 책은 단 두 권이었다고 한다.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의 노래>와 미국의 어떤 선교사가 쓴 조선에 관한 어떤 책이 고작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과는 달리 일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책과 자료들은 너무나 방대했다고 한다. 일본에 관해서는 명치부터 대정·소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지난 백년에 가까운 일본 역사와 문화들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일본 정신과 일본 문화에 대해서는 상당히 경외심을 품었고, 그럴수록 조선에 대해서는 철저히 미개인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일본이 조선을 지배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그 일을 아주 잘한 일로 보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일본인이 미국에 제공한 정보에는 일본군 없이는 조선 치안이 총체적으로 문란해질 것이며, 조선 민족이 무능력한 사람들이라는 것 등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런 한심한 정보에 입각한 맥아더도 조선 군정 통치인 '점령포고 제1호'를 통해, 상당 기간 일본군 식민지 군대가 그대로 행정과 치안을 유지한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이 사실로써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기간에 걸쳐 조선 민족의 자질이 미국 최고 정책 결정자들에 의해 형편없이 평가받은 배경을 알 수 있지 않아요? 이에 비해 조선을 강점한 일본 민족은 마치 당연히 조선을 지배할 만한 장점과 우수성을 지닌 양 인식됐던 게 사실이에요. 한 민족이 얼마나 일찌감치 세계 문명에 눈을 뜨고, 몇 사람의 훌륭한 선각자적 지식인들이 민족의 장점을 글로써 세계에 알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는 실감하게 되지요"(108쪽)

펜으로 맞서 싸운 반세기 역사

그렇게 어처구니없게 왜곡된 우리 역사에 대해, 리영희 교수님은 우리 후손들이 우리 역사에 대해 바르게 알도록 이 책을 통해 하나 하나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리영희 교수님이 그렇게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기 몸으로 그 반세기 역사를 직접 맞서 싸웠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합동통신사 시절에 외신기자로 근무했던 그 시절의 보람이 가장 크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것은 당시 "<동아일보> 등 우익신문들이 우익과 미국에 예속된" 정치 형태를 띠게 되었는데, 그래서 미국과 그 하수인 노릇을 했던 박정희 대통령을 각 우익 신문사들마다 지지하게 되는데, 당시 합동통신사에 소속돼 있던 리영희 외신 기자만큼은 달랐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케네디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간에 오고 갔던 내용들인데, 그때 박정희 대통령을 취재하기 위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그리고 합동통신사의 리영희 기자가 따라나섰는데, 그 기자들 가운데 회담결과에 찬물을 끼얹었던 기자는 다름 아닌 리영희 기자였다.

다른 두 신문사 기자들은 오로지 박정희 대통령이 요구한 대로 케네디가 군사원조도 약속하고, 경제원조도 해주고, 정치적 승인도 해줬다는 따위로 두 손 벌려 박정희 대통령을 치켜세우는 데 바빴지만, 리영희 기자만큼은 달랐다. 오로지 그는 정확하고 진실한 기사만을 한국에 보냈고, 그 기사와 방송을 접한 국민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지식인들 사이에 그것은 곧 특종이 됐다.

"케네디는 박정희에 대해서 조속한 시일 내에 공정한 선거를 통한 민정으로 이양할 것 민정이양에 앞서는 군의 정치관여 금지와 원대복귀 그때까지 모든 경제원조의 집행연기 군사원조의 잠정적 동결 박정희가 제 1차 경제계획으로 요구한 공업화 계획 자원 23억 달러 요구의 백지화 조속한 한일회담 재개를 통하여 단시일 내의 한일국교정상화 실현 베트남 사태에 대한 남한의 협력 등을 요구한 거예요."(277쪽)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로 이미 우리 사회에 정신적인 지줏대 역할을 하고 있는 리영희 선생님. 그는 이 번에 펴낸 <대화: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통해서 우리 시대에 지식인으로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또 우리 시대에 기자로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

지식인이라면 모름지기 자기 결정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리영희 선생님은 그 모든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며 살았다. 또한 온전한 자기 양심을 지키며, 사실 그대로 진실만을 써내려가는 기자 정신도 지켜냈다.

어떠한 굽신거림도, 어떠한 굽힘도 없이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정말로 올곧은 펜 하나로 시대를 세우며 굳세게 지켜왔다. 그런 '시대정신'으로 반세기를 이겨 냈으니, 어찌보면 그 반세기 모두를 펜 하나로 맞서 싸운 위대한 스승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한길사(2005)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