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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손해보험사들마다 자동차보험 특별약관(특약)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하지만 운전자들은 매년 수십만원씩의 보험료를 내면서도 나한테 꼭 맞는 보험상품을 고르기 힘들다. 손보사들이 판매하는 특약만 230개가 넘는데다 보험료가 어떻게 산정되는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동차보험료도 아는 만큼 절약할 수 있다.

< 오마이뉴스>는 운전자들이 자동차보험에 가입하기 전이나 가입 기간에라도 반드시 챙겨봐야 할 것과 보험가입자에게 불합리하게 적용되는 자동차보험 약관상의 문제점을 2회에 걸쳐 짚어본다. 이 기사는 그 두 번째다.... 편집자 주


▲ 정작 약관 개정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할 보험소비자는 쏙 빠진 채 약관이 개정되다보니 당연히 보험소비자의 목소리가 반영될 리 없다는 것이 보험소비자단체의 주장이다. 사진은 대한손해보험협회에서 제작한 TV광고 화면.
ⓒ 대한손해보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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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소비자가 불만품는 약관 하나 '기왕증'.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살고 있는 김아무개(39)씨는 지난해 여름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쳤다. 사고 당시 뇌좌상을 입은 김씨는 현재 뇌졸중 및 뇌경색에 따른 반신마비 상태에 놓여 있다. 하지만 뇌졸중과 뇌경색에 대해서는 교통사고에 의해 발병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료기관의 판단에 따라 보험사로부터 전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과거 뇌경색 진단을 받은 사실이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김씨는 "교통사고로 뇌좌상 진단을 새로 받았는데도 보험사에서 뇌졸중과 뇌경색의 경우 사고에 의한 발병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워 보상을 거부하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처럼 과거부터 운전자가 지니고 있던 질환인 '기왕증'을 놓고 보험소비자들의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8월 금융감독원이 모든 보험사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에 기왕증 적용을 명문화한 이후 그 사례는 더욱 늘고 있다. 자동차보험소비자연합(자보연)은 일주일에 2~3건에 불과했던 기왕증 관련 민원이 지난해 8월 표준약관 개정 이후 5~6건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금감원 "나이롱 환자 막기 위해 기왕증 명문화"

이에 대해 표준약관을 만든 금융감독원은 어떤 입장일까. 정준택 금감원 특수보험팀장은 "법원 판례나 민법상에 의해 기존에도 기왕증에 대해서는 보험사가 보상을 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일부 운전자들이 약관에 관련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떼를 쓰는 등 속칭 '나이롱 환자'가 많아 이를 막기 위해 약관에 기왕증을 명문화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험소비자단체는 금융당국이 보험소비자의 권익은 외면한 채 지나치게 보험사편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박정우 자보연 회장은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에 기왕증이 명문화됨으로써 보험사들이 예전과 달리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줄여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표준약관 개정시 절차상의 문제도 지적한다. 조연행 보험소비자연맹(보소연) 사무국장은 "표준약관을 개정할 때 보험소비자와 시민단체 등이 함께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작 약관 개정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할 보험소비자는 쏙 빠진 채 약관이 개정되다보니 당연히 보험소비자의 목소리가 반영될 리 없다는 것이 조 사무국장의 주장이다.

그러나 보험소비자단체에는 기왕증을 진단하는 객관적 기준이 없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같은 증상을 두고 보상을 받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보험소비자단체가 내 놓은 보완책은 무엇일까. 자보연은 공정성이 확보되도록 복수의 전문의사 소견을 받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박정우 자보연 회장은 "공정성 차원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2~3개 진료기관 전문의사에게 기왕증 소견을 받는 등 그 근거를 더 엄격히 제시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연행 사무국장은 "보험회사, 국민건강보험, 보험소비자단체 등이 인정할 수 있는 신체감정센터를 설립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왕증 진단 객관적 기준 없는 것이 문제

금감원은 약관 개정이후 운영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보험소비자단체가 내놓은 이 같은 보완책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준택 팀장은 "지난해 8월 약관 개정이후 아직까지 제도상으로 나타난 문제점은 없었다"며 "다만 금감원에서도 보험사에서 기왕증 규정을 악용해 피해자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지도·감독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팀장은 "금감원에 기왕증과 관련한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원하는 제2, 제3의 의료기관에서 다시 진찰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보험소비자가 불만품는 약관 둘 '과실비율과 무관한 할증'.

박아무개(43)씨는 최근 보험회사로부터 날아온 자동차보험료 갱신 통지서를 보고 황당해 했다. 상대방의 과실로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보험료가 10% 할증돼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사고 상황을 살펴보면 박씨 차량이 신호등 없는 교차로에서 직진을 하던 중 오른쪽에서 좌회전을 하며 들어오던 가해차량이 박씨 차량의 뒷문 부분을 들이 받았다. 경찰조사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가해 차량의 운전자는 전화통화중이면서 박씨 차량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고로 박씨는 아무런 부상을 입지 않았지만 가해자는 목과 가슴 등에 큰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박씨의 피해가 명백하지만 박씨에게도 과실이 있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중앙선 침범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교통사고는 쌍방과실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과실기준표상의 과실비율을 일률적으로 적용, 박씨에게도 10%의 과실책임이 부과됐다.

"과실비율 무관 보험료 할증" 불합리

문제는 과실 비율에 따라 보험료의 할증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운전자의 상해급수에 따라 할증이 붙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라 하더라도 보험료 할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박씨의 경우도 엄연한 사고 피해자이지만 가해 운전자가 사고로 장애 2급의 판정을 받아 보험료 할증을 받게 됐다.

보험소비자단체는 이처럼 피해자에게도 불리하게 적용되는 표준약관을 개정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지만 감독당국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정준택 팀장은 "피해자임에도 보험료가 할증된다는 점에서 다소 불합리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가해자라 하더라도 교통사고 피해를 입었다는 면에선 똑같은 피해자로 볼 수 있다"며 "가해·피해를 떠나 치료비만이라도 보장을 해주자는 취지에서 이 같은 규정이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김재현 서원대학교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무과실일 경우에는 보험료 할증을 하지 않거나 과실이 있다해도 운전자의 상해 급수보다는 과실비율에 따라 보험료 할증을 붙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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