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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겉그림입니다.
ⓒ 리브로
〈1〉역사학계의 '괴짜' 임지현 교수

생각하는 바가 남들과 다르거나 일하는 방법이 보통 사람들과 전혀 다르면 그를 '괴짜'라고 부른다. 사업하는 사람이나 정치나 경제계 인물 등 나랏일 하는 사람 중에서도 그렇게 불리는 사람들이 몇 몇 있다.

이는 보통 사람들의 수준과는 달리 생각하는 틀이나 통이 다르기 때문일 텐데, 역사학계에 있어서 그렇게 불리는 사람이 있다. 그는 다름 아닌 임지현 교수다.

왜 그렇게들 부르고 있는가.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그만은 유독 '아니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 길'이라고 이야기할 때 그만은 '저 길'이라고 고집을 피우고 있는 까닭에서다.

동북공정이라든지, 임나일본부설, 그리고 일한합방 등 여러 가지 외교문제에 얽혀 있는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 그는 보통 역사학자들과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보통 역사학자들은 그런 역사는 왜곡된 역사요, 중국이나 일본이 자국의 입지를 세계사 속에 강화시키기 위한 전략 차원에서 추진하는 일이니, 우리나라도 그냥 불구경하듯 보고만 있을 수는 없고 두 발을 벗고서라도 그들 나라들에 대항하여 우리의 입지전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임지현 교수는 그런 역사학자들과는 달리 동아시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역사 포럼과 그 틀 속에서 새로 짜낼 수 있는 역사 교과서를 다시 써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이전의 역사 교과서들이 모두들 자국의 민족주의적 역사관을 부추겨서 쓴 '국사' 교과서에 지나지 않으며, 그런 것들이 자국 뿐 아니라 국내외 이해관계에 있어서 얼마나 큰 손실을 가져오고 있는지 서로들 모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 그는 '적대적 공범자들'(소나무·2005)이란 책을 통해서, 과연 민족주의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 있는지, 그게 어떻게 적대적 공범자 관계를 그려주고 있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민족주의적 공범자 관계를 해체시키고, 엉켜 있는 실타래를 풀 수 있는지 하나하나 설득력 있게 드러내 주고 있다.

〈2〉'적대적 공범자'란 도대체 무엇인가?

책제목에도 드러나 있듯이, 임지현 교수가 말하는 '적대적 공범자'란 어떤 뜻을 지닌 말인가? '공범자'란 보통 죄악을 저지를 때 함께 참여하는 가담자를 뜻하는 말이다. 거기에 '적대적'이란 말이 들어간 것을 보아, 죄악을 함께 저지르지만 둘 사이가 너그럽거나 그리 완만한 관계가 아니라 서로 이를 갈며 으르렁거리는 관계임을 뜻하는 것이다.

그럼 그런 관계 속에 살아가는 나라와 사람이 있을까? 임지현 교수는 9·11 사건을 예로 들면서, 미국의 부시를 포함한 미국의 민족주의자들과 빈 라덴을 포함한 이슬람 민족주의자들 간에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 그러면서도 두 수장을 향한 자국민의 지지기반은 갈수록 더욱 공고해지고 전쟁의 명분은 더욱 확고해 지는 그런 관계가 그것임을 역설해 주고 있다.

또한 남과 북이 갈라진 한반도 정세 속에서, 경제 발전과 정권의 틀을 확고히 하려는 박정희 정권의 남한 내 민족주의 세력 결집 행위와 공산주의 체제 속에 일인 통치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김일성 정권의 북한 내 민족주의 세력 결집 행위를 그 예로 들면서, 둘 사이는 지극히 적대적 공범자 관계임을 밝혀주고 있다.

"새마을 운동이 천리마 운동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근로 의욕을 부추겨 생산성을 향상시키려는 시도였으며 또 성공적이었다는 김정일의 평가는 이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그것은 대척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10월 유신과 주체사상이 실은 민족주의와 동일한 권력 담론으로 짜여 있다는 사실이 은연중에 드러내주는 발언이다."(186쪽)

그리고 더 나아가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든지 일본의 '임나일본부설', 그리고 한국의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랫말과 한·일 축구 경기 때에 불어오는 '붉은 악마'의 열풍 등은 모두 자국민들로 하여금 민족주의의 열기를 한껏 달아오르게 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자국의 영토와 주권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며, 자국의 민족주의를 더욱 다지는 기틀이 될 수 있겠지만, 다른 면에서는 그것을 자국의 통수권자나 권력 관계자들이 국내외 정치사에 악 이용할 소지가 있고, 그로 인해 각 나라가 물고 뜯는 모습들이 자자손손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각 나라가 그런 면들을 부각시키면 부각시킬수록 적대적 공범 관계는 더욱더 견고해지거나 확대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맺혀 있는 적대적 관계는 좀체 풀 수 없는 실타래처럼 영영 엉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3〉'적대적 공범자' 관계를 어떻게 풀 수 있나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동북공정'에 얽혀 있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관계를 풀 수 있겠으며, '임나일본부설'이나 '일한합방' 같은 고리들도 풀 수 있겠는가?

그에 대해 임지현 교수는 세 나라의 역사 연구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 동아시아 공공의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길밖에 달리 대안이 없고, 그런 '역사 포럼'이 개별 국민 국가는 물론 동아시아의 지평을 넘어 세계사의 차원으로까지 그 비판의 전망이 확대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자국 중심의 역사 해석과 개별 국민 국가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각 국의 역사 교과서는 근대 국민 국가의 전유를 정당화하는 논리밖에 되지 않는 것이며, 그런 까닭에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세 역사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공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고 수시로 포럼을 개최한다면 각 국의 민족주의적 역사관이 얼마나 편협하고 잘못 짜 놓은 틀인지를 하나하나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과 일본의 상황 속에 놓여 있는 일본의 '제국적 민족주의'라든지 한국의 '식민지적 민족주의',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영토순결주의적 민족주의'라든지 '기원주의적 민족주의'도 서서히 해체시킬 수 있으며, 그리하여 변경사(Border history)의 틀로 보는 새 역사 지평도 그려낼 수 있고, 결국 서로간의 적대적 공범자 관계도 하나 둘 그 매듭을 풀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일국적 차원을 넘어 동아시아의 차원에서 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 작업이 갖는 의미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순한 일반화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말한다면,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고 타자화 하면서도 적대적으로 강화하는 전후 동아시아 민족주의의 '적대적 공범 관계'를 해체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360쪽)

〈4〉역사는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드러냄의 대상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임지현 교수와는 달리 지금 한국 사회는 모두가 민족주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 있는 것 같다.

일본과의 경기 때마다 모두가 붉은 악마가 되어 한국 축구를 응원하고 있고, '동북공정'이 무슨 말이냐 하며 한국의 '역사 지키기'에 열을 올리고 있고, 어느 미친 일본 놈이 감히 독도를 자기 네 땅이라고 하느냐며, 모두가 민족주의 열기를 품어내고 있다.

그런 마당인데도 임지현 교수는 거대한 골리앗과 싸우려드는 다윗처럼 한국의 역사 속에서 당당히 서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국사'를 '상식의 뿌리'라 생각하며 모두가 굳게 지키려고 애쓰고 있는 판국에 홀로서 그 국사를 흔들어 대고 있으니, 가히 다윗 같이 통 큰 배짱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달리 보면, 임지현 교수만이 볼 수 있는 역사 속 모순들과 나름대로 준비해 놓은 자기만의 충분한 자료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마구잡이로 달려들고 또 대들 수 있는 게 아니겠나 싶다.

그런데 그렇게 변경사의 틀로 동아시아 역사를 새롭게 짜내어, 적대적 공범자 관계를 청산하고서, 이제는 화해와 협력의 동아시아 구축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지향하고 있는 그이지만,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민족주의를 가장한 독재 정권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하게 드러내고 까발릴 것을 주문하고 있다.

옛 정권 시절에 경제발전과 민족주의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 위해서 사람들의 인권을 마구잡이로 짓밟았던 독재자와 그 입지전을 쥐고서 수많은 사람들을 학대시켰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서 영구적인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것이다.

"역사를 심판함으로써 정의가 구현될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역사적 진실의 정치성은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드러냄의 대상이다. 법정의 심판을 통해 과거를 단죄하고 청산하는 방식을 넘어, 과거를 드러내 살아 있는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 때 비로소 과거는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242쪽)

그렇다면 지금 추진하고 있는 '친일문제'에 대해서도 그저 친일 행각을 벌였던 사람들의 역사적 과오를 심판하거나 그 당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책으로만 그칠 게 아니라, 임지현 교수가 밝힌 바 있듯이, 살아 있는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어 내야 할 것인데, 그를 위해서 〈친일인명사전〉과 같이 또 다른 책자를 만들어서 '영원토록 살아 있는 역사서'가 되도록 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싶다.

그때에 비로소 적대적 공범자 문제가 바로 청산될 수 있으며, 그때에 우리의 후손들이 그 인물들과 사건들을 반면교사 삼아, 추악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적대적 공범자들

임지현 지음, 소나무(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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