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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뼈가 부러져 본 적이 있습니까? 어떻게 아플 것 같습니까? 조금 아프다 말 정도일 것 같습니까? 갈비뼈가 부러지면 무지무지하게 아픕니다. 어느 정도로 아프냐 하면 누울 수가 없고 천신만고 끝에 누웠다 하면 아파서 뒤척일 수도 없습니다. 가만 누워있어도 무지무지하게 아프고 일어날 때는 엄청난 고통을 겪어내야 합니다. 눕기가 두려워, 할 수만 있다면 꼬박 앉아서 밤을 새우고 싶을 정도입니다.

캐나다에 온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 BCIT (British Columbia Institute of Technology: Vancouver에 있는 기술전문대학)의 English Program을 수강하고 있을 때 목욕탕에서 넘어지면서 오른쪽 옆구리가 욕조 모서리에 정통으로 부딪히면서 갈비뼈가 부러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넘어지는 순간 너무 아빠서 소금 맞은 지렁이가 쪼그라들 듯 욕조 한 귀퉁이에 가슴을 움켜쥐고 똘똘말이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옆 가슴이 부딪히는 순간 80kg의 중량이 떨어지는 '쿵' 소리와 너무나 아파 자신도 모르게 나온 '억' 소리가 너무 컸는지 아래층에서 아내와 아이가 놀라 2층 욕실로 올라왔는데 욕조문을 잠가놓아 문을 두드리고 난리가 났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몇 십초인지 몇 분인지 모를 시간이 지체된 다음, 몸을 간신히 추스르고 일어나 욕조문을 열었습니다. 그때까지도 미련하게 '넘어진 것치고는 되게 아프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부딪친 부분이 아파 움직여도 아주 살살 움직여야 했습니다. 저녁에 잘 시간이 되었지만 누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학교를 하루 이틀 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루하루, 한 시간 한 시간이 제게는 너무나 중요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당시 한 시간 혹은 하루를 까먹는 것은 자칫하면 캐나다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시작하는 것에 크게 지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 나중에 몇 달 혹은 몇 년이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학교를 건너 뛴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리 고통을 느끼면서도 다음날 학교를 갔습니다.

한 대 있는 차는 아내가 써야 하기 때문에 저는 대중교통을 이용했습니다. 버스의 흔들림이 그렇게 심한 것인지 그 전에는 몰랐습니다. 공교롭게도 버스 정류장과 교실까지는 서로 캠퍼스의 반대편이라 대충 2 km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그것도 갈비뼈 부러진 사람이 배낭까지 메고. 그렇게 일주일을 견디면서도 지각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이 지나도 고통이 멈추지 않아 갈비뼈 부러진 지 일주일 만에 병원엘 갔습니다. X-ray을 찍었습니다.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갈비뼈가 부러졌다는 것입니다. 의사만 놀란 것이 아니라 저도 아찔했습니다.

한국에 있었으면 병원에 입원하고 난리가 났을 텐데 캐나다에서는 그냥 견뎠습니다. 갈비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듣고도 퍼지지 않고 이를 더욱 악 물고 학교로 갔습니다. 의사는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의사가 처방해준 pain control 약으로 버티면서 악착같이 견뎌냈습니다.

몇 달이 지나 그 상처가 꽤 아물고 난 다음에도 오른쪽으로 누우면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꽤 깊은 상처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련하게 배낭을 메고 걸었습니다. 아침에 교실로 갈 때는 지각하면 안 되니까 좀 아파도 부지런히 걸었지만 공부가 끝나고 집에 올 때 가슴이 너무 아파 배낭을 바닥에 놓고 한참을 가만히 서 있다가 다시 걸었습니다.

배낭을 풀고 다시 메는 것도 큰 고통이었습니다. 화창하다 못해 눈부신 Vancouver의 날씨, 멀리 보이는 Grouse Mountain의 아름다운 모습. 아름다운 자연이 오히려 사람 마음을 더 처량하고 서글프게 만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자가용 두 대 굴리는 대기업의 중견간부였는데 캐나다에 와서 완전히 떨거지 모습으로 거리를 걸었습니다. 한 여름, 걸어서 오가는 사람 없고 다들 차 타고 씽씽 내달리는데 나이 마흔 넘어 배낭 메고 뙤약볕 아래 멀뚱하니 서서 뭐 하는 것인지 참 한심하고 스스로도 처량하기 그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전하고 지나는 사람들이 ‘또 미친 놈 하나 생겼네’ 라고 생각을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서러웠지만 청승스럽다는 생각이 더 들어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욕조 안에서 서서 샤워를 할 때는 샤워를 끄지 마십시오. 욕조 바닥이 편평하지 않고 경사가 약간 있거나 둥근 형상일 때는 절대로 샤워 도중에 샤워를 끄지 마십시오. 저는 그날따라 비누칠을 좀 잘 해볼 것이라고 샤워를 끄고 서서 비누칠을 하면서 한 발을 드는 순간 한 발이 미끄러지면서 온 전신의 중량을 갈비뼈 한 곳에 실어 욕조와 부딪힌 것입니다. 물을 틀어놓고 할 때는 발 사이와 욕조 사이의 비눗물이 씻겨 내려가 마찰 계수가 미끄러지지 않을 정도로 유지가 되는데 사고 순간은 발과 욕조 사이의 비눗물이 완전한 미끄럼을 제공하여 큰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2005년을 기다린 이유

캐나다에 기반이 없는 이민 1세대에게는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가장 순수한 human network를 만들 수 있기도 하지만 생면부지의 사회를 짧은 기간에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시작하지 않았으면 모르지만 이왕 시작한 것은 목숨 걸고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집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 갈비뼈 부러져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영어공부와 정비 공부를 했습니다.

학교 때문에 썩 괜찮은 job도 포기하고 학교 공부를 계속 했기 때문에 학교가 걸림돌로 여겨질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학교가 미래를 위한 더없이 좋은 투자인 것은 맞지만 가족을 위해 열심히 돈벌이해야 할 때 학교에 매어 있는 것은 고통이기도 합니다.

지금 하는 공부를 마치고 학교를 졸업하는 것은 답답한 굴레를 훨훨 벗는 것입니다. 그래서 드디어 졸업하는 2005년을 이를 악물고 기다리며 칼을 간 것입니다. 올 꽃 피는 4월이면 드디어 졸업을 합니다. 한국의 자동차 engineer가 캐나다에 와서 mechanic (정비공)으로 변신하는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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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현대자동차 연구소 엔지니어로, 캐나다에서 GM 그랜드 마스터 테크니션으로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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