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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판수

"여기서 물러설 수도 없고 물러날 곳도 없느니라."

이른 아침, 용골산성을 지키는 의병장 정봉수는 4천여 명의 민병을 앞에 두고 힘껏 외쳤다. 정봉수의 말은 괜히 성안 사람들의 심정을 고무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용천, 의주, 철산 등지의 고향을 떠나 후금(후에 청나라로 개칭) 군사를 피해 몸을 피신시킬 곳을 찾다가 험준한 이곳 용골산성까지 밀려 온 사람들이었다. 주변의 관군은 흩어진 지 오래였으며 백성들에게 후금식의 변발을 강요하며 항복했던 첨사 장사준의 목은 정봉수에게 베어져 용골산성 입구에 높이 내어 걸려 있었다.

정묘년(인조5년) 1월, 3만의 금나라 군사가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침입한 이후 조선군은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패퇴를 거듭했다. 백성들은 조정의 무능함을 탓했고 조정은 강화도로 피신한 후 후금 군사의 동태만을 두렵게 바라볼 뿐이었다.

"조선과는 마땅히 강화만 이루어내야 할 뿐이다. 우리가 점령한다 해도 진정으로 굴복할 나라가 아니다."

평안도를 점령한 후금은 조선의 험준한 지세와 명나라를 공격할 부대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인해 진격을 미루고 있었다. 후금은 강화도로 사신을 보내 조선조정에 강화를 재촉하는 한편 후방을 공격당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기 위해 압록강 가까이 가도에 있는 명나라 장수 모문룡을 압박하여 신미도로 쫓아내었다.

더불어 후금군은 그간 공략을 미뤄왔던 평안도의 산성을 공격하는데 병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 중 후금군이 힘을 모아 빼앗고자 하는 곳이 바로 용천 외곽에 위치한 용골산성이었다.

"이곳은 산성이다. 적의 기병은 힘을 쓰지 못하는 곳인즉, 너희들은 내 말을 믿으며 섣불리 행동하지 말라."

말을 타고 다가오는 후금군의 선봉이 눈앞에 보이자 정봉수는 칼을 빼어들며 다시 한 번 성안의 민병들을 진정시켰다. 정봉수의 옆에서는 장한본이 활을 움켜쥔 채 돌을 손에 든 아들 장판수를 슬며시 쳐다보았다. 14살의 장판수는 전투에 참여하기에 너무나 나이가 어렸지만 장한본은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니래 그런 돌 갖고서 어캐 싸울 수 있갔어?"

장한본은 아들이 이제라도 생각을 바꾸기를 바라며 타박하듯 말을 놓았으나 장판수는 당돌하게 대꾸했다.

"아버지는 활에 신경쓰시라우요. 내래 아버지 부끄럽지 않게 싸우갔시오."

장판수 뿐만이 아니라 민병들 중에서는 어린 소년과 아낙, 심지어는 할멈까지 돌을 든 채 성 위에 서서 적을 노려보고 있었다. 후금군의 선발대인 몽골기병 이천여명은 말에 탄 채 쥐 죽은 듯 고요한 용골산성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

많은 전투를 겪은 그들이었기에 성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거리를 접근한 후에는 말에서 내려 돌진해야 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조선에 들어온 후 감히 대적하고자 하는 군사가 없었기에 그들은 방심하고 있었다. 후금군은 말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산성을 짓밟아버릴 생각이었다.

"쏴라!"

갑자기 성 위에서 화살 소나기가 바람을 가르며 후금군의 머리 위로 우르르 날아왔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포가 불을 뿜으며 후금군의 말을 놀라 날뛰게 만들었다. 거기에 돌마저 우르르 쏟아져 내려오니 후금군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쉬지 말고 쏘아라!"

선봉이 처참히 당하는 것을 본 후금군의 본대가 대오를 갖추며 응사하려 했지만 정봉수가 이끄는 민병들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화살은 화포소리에 놀라 날뛰는 말을 피해 한쪽으로 엉긴 후금군의 목덜미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고 날아드는 돌은 화살을 재어 쏘려는 후금군의 머리를 여지없이 박살내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한 후금군은 시체조차 수습하지 못한 채 도주하기 시작했다. 성에서 승리의 환호성을 질렀지만 정봉수는 아직 긴장을 풀지 않았다.

"아직 기뻐하기는 이르다! 적도(賊盜)가 이 산성을 노리고 온 것인즉, 대오를 나누어 금방 쳐들어 올 것이니라."

정봉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후금군의 제2대가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엄습해 왔고 보병이 칼을 휘두르며 성 밑으로 파고 들어왔다. 일단 기세를 탄 용골산성의 조선민병은 이를 가볍게 퇴치해 버렸고 후금군은 제3대를 투입하였다.

그러나 선봉과 제 2대가 볼썽사납게 쫓겨 내려온 것을 본 이들이었기에 사기가 한풀 꺾여 공격은 날카롭지 않았다. 이러한 후금군의 공격은 제4대와 5대에 걸쳐 해질 무렵까지 두 번 더 되풀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새 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는 병자호란을 무대로 가상적으로 엮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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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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