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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 장기수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1990년 분단의 상징이던 비전향 장기수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후원을 촉구하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이하 고난모임)의 소식지에 실린 글의 제목이다.

▲ 무연고 장기수 후원을 알리는 고난소식지(1990년 6월호)
ⓒ 김혁
고난모임은 그동안 양심선언 전투경찰 후원, 조작간첩사건 석방운동과 후원, 비전향 장기수 후원 등의 사업을 해왔다. 지난 9일 고난모임 창립 15주년을 맞아 감리신대에서는 회원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후원 회원의 밤이 개최됐다.

양심선언 전경 후원으로 시작

고난모임은 1988년 양심선언을 하고 수배 중이던 전투경찰 연성흠(당시 감신대 3년 휴학)씨를 은밀히 후원하는 모임에서 시작됐다.

감리교 목회자 몇 명이 모여 1만원씩 연성흠씨를 후원하던 중, 감리교단에 소속된 교인들 중에도 양심수들이 있음을 알게 됐다. 이에 감리교 양심수들을 위한 공식적인 후원회를 만들기로 하고 1989년 2월 고난받는 감리교인을 위한 후원회준비모임(대표 송병구 목사)을 출범했다.

고난모임은 학생, 노동자는 물론 당시 시국 전환용으로 정부에서 이용하던 조작간첩사건 피해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졌다. 일본 유학생 간첩사건의 장의균씨, 납북 어부로 귀환 후 구속된 정영씨, 월북 혐의로 구속된 이창국(당시 70세) 장로 등이 고난모임의 후원을 받았다. 당시 '1구좌 1천원' 후원 모금에는 감리교인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참여했고, 미국 등 교포 사회에서도 후원금을 보내왔다.

89년 조작간첩사건, 90년 비전향장기수 후원 시작

▲ 지난 10월 부여에서 열린 출소 장기수 효도관광
ⓒ 고난모임
이어 1990년에는 대전교도소 등에서 해방 후 40여년을 옥살이를 하고 있는 장기수들과의 교류를 시도했다. 이들 장기수들은 대부분 남쪽에 연고가 없고, 면회나 편지, 영치금 등 외부와의 접촉이 없었다. 고난모임은 매달 영치금을 입금시키고, 회원들은 편지를 쓰고 목회자들은 정기적인 면회를 시도했다.

처음에는 일부 장기수들이 교회의 영치금과 면회 요청을 거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 후원을 하고 관심을 보이자 이후에는 장기수들도 신뢰를 주어 교류가 지속됐다고 한다.

당시 대표를 맡았던 송병구(43·감리교 본부) 목사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절대적인 소외자에게 관심을 보이고 찾아가는 것이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후 장기수 후원 사업은 고난모임의 주요 사업이 되었다. 비전향 장기수의 북송 이후 현재까지도 남측에 남겨진 장기수들에 대한 후원을 계속하고 있다. 또 매년 1회 출소 장기수를 위한 효도관광과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통일기행 등을 실시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우리 사회에 양심수 만들어

▲ 고난모임 총무 진광수 목사
ⓒ 김혁
현재 고난모임에는 총무 진광수 목사와 김영엽, 김종란씨가 상근일꾼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포 문수산성교회에서 담임 목회 활동을 하고 있는 진광수 목사는 교회와 고난 사무실을 오가며 바쁜 일정을 감당하고 있다.

최근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때문에 더 바빠졌다는 진 목사는 민주화의 진전으로 양심수의 숫자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공안당국의 구태한 국가보안법 적용이 양심수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점점 양심수에 대한 관심이 줄어 들고 있어 후원사업이 점점 벅차지고 있다"고 밝혔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 진 목사는 우선 감리교회의 단체이므로 교단과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할 계획이라고 말하고, 교단에서도 고난 모임을 통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를 기대했다.

또 고난 모임의 관심을 돌려 통일운동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아울러 "국제적인 인권운동, 특히 아시아 지역의 고난 받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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