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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여행 용어 중에 트랜짓(Transit)과 스톱오버(Stop-over)라는 것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23일 밤 9시경에 11박12일의 남미 3국 순방 및 칠레 산티아고 APEC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여행가방을 풀 여유도 없이 오는 28일 다시 라오스로 출국한다. 라오스에서 열리는 'ASEAN+3' 정상회의(11월 28-30일) 참석 및 유럽 순방(11월30일-12월8일)을 위해서이다.

노 대통령은 이에 앞서 카자흐스탄·러시아 방문에 이어, 인도·베트남 방문 및 하노이 ASEM 정상회의 일정을 소화한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노 대통령의 이번 '귀국'은 '완전한 귀국'이 아니라 한국을 '경유'하는 트랜짓이라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노 대통령의 '귀국'은 트랜짓(Transit) 혹은 스톱오버(Stop-over)?

엄밀히 구분하면 '트랜짓'이 아니고 '스톱오버'다. 트랜짓이 '단순 통과'라면 스톱오버는 '체류'에 해당된다. 항공여행에서는 통상 최종목적지의 중간도착지에서 일정기간 머문 후 다른 항공편으로 갈아타거나 타고 간 항공기를 그대로 이용해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때, 중간 기착지에서 머무는 시간이 24시간 이내일 경우는 '트랜짓'이지만, 24시간 이상일 경우에는 '스톱오버'로 분류한다.

트랜짓이라 하더라도 연결시간이 길고 중간 경유지의 비자가 있다면 공항부근의 짧은 시내 관광이 가능하다. 또 무비자 국가라면 물론 비자 없이도 출입이 가능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항공사들은 트랜짓 승객에게 짧은 시내 관광을 항공권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일부 항공사들은 호텔 1박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트랜짓보다 훨씬 더 긴 스톱오버 승객인 노 대통령에게는 '관광'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노 대통령이 한국에 머무는 스톱오버 기간은 5일이다. 사실 그 5일은 '시차 극복'하기에도 바쁜 기간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스톱오버 첫날인 25일에만도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12시간에 걸쳐 5개의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그 일정을 소개하면 ▲영상 메시지 촬영(오전 9시-9시10분) ▲사랑의 열매 전달식(9시30분-9시50분) ▲유엔총회 의장 접견(오후 3시-3시30분) ▲국제라이온스협회 신임 국제회장 접견(3시50분-4시10분) ▲주 러시아대사·이라크 대사 신임장 수여식(4시30분-5시) ▲3부 요인 및 여야 대표 만찬(6시30분-8시30분) 등으로 촘촘히 짜여있다.

(청와대는 나중에 이 가운데 주 러시아 대사·이라크 대사 신임장 수여식 일정을 취소했다).

해외 여행을 하다보면 간혹 트랜짓 승객들이 공항에서 기다리기가 지루해 쇼핑과 시내 관광 일정을 너무 촘촘히 짜는 바람에 비행기를 놓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을 경유'하는 대통령에게 너무 무리한 일정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만하다.

그러나 해외순방 중에 '밀린 숙제'를 소화하려면 이런 일정이 불가피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대통령이 아무리 바빠도 외교사절에 대한 신임장 수여를 대신해줄 '대(代)통령'은 없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이번 남미 순방길에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를 갖지 않았다. 대통령의 해외순방에서는 통상 귀로에 순방성과를 설명하는 기자간담회를 갖는 게 관례이고, 또 매번 순방 경유지나 기내에서 간담회를 가져왔다.

이번에도 귀국길 경유지인 하와이에서 기자간담회가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일정이 순연돼 하와이에 밤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대통령은 '쌩쌩'했지만 여독에 지친 동행기자들이 오히려 간담회가 취소되는 것을 반가워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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