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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콘신에 가 본 적 있으세요?"

 

"(당황하며) 아니오."

 

"위스콘신의 겨울은 춥기로 유명하지요. 제 고향이 바로 그곳인데, 어렸을 때 아버지와 위소타 호수로 얼음낚시를 하러 간 적이 있었어요. (상대의 표정을 살피며) 얼음낚시란 얼음 위에 구멍을 뚫어서…."

 

"얼음낚시가 뭔지는 나도 알아요!"

 

"미안해요. 그냥…. 집 안에서만 지내는 분 같아서. 어쨌든 얼음낚시를 갔다가 얇은 얼음 밑으로 빠진 적이 있었는데 얼음 속 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칼 수천 개로 온 몸을 난자당하는 기분이었지요. 숨을 쉴 수도 없었고, 고통 이외에는 머리 속에 아무 생각도 떠올릴 수 없었어요. 당신이 물에 몸을 던지면 구하러 들어가기는 해야겠는데 그건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지요."

 

영화 <타이타닉>에서 바다로 몸을 던지려는 로즈와 이를 말리려는 잭이 나눈 대화다. 그러나 사내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원하지 않던 방식'으로 최후를 맞아야 했다. 차가운 바다 속으로 사라진 그 비운의 '위스콘신 사나이'가 고향으로 되돌아왔다. 환경운동의 투사가 되어.

 

"저는 오늘 단순한 메시지 하나를 전하기 위해 이 곳에 왔습니다. 저는 배우로서 이 곳에 온 것도 아니고, 과학자나 정치인으로 온 것도 아닙니다. 저는 근심스러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환경을 걱정하는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매디슨시(市)의 오르페움 극장 무대 위에는 익숙한 얼굴의 한 20대 청년이 객석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었다. 청중은 대부분 이전에 그 청년을 만나 본 일이 없었으나, 그들의 눈에 사내는 오랜 친구로 보였다. 7년 전 바로 그 극장의 무대 위에서 그 청년은 사랑하는 여인을 구한 후 배와 더불어 운명을 같이 하지 않았던가.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쟁점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제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부시 행정부가 철저하게 파괴한 미국의 환경보호정책입니다. 부시 대통령은 바로 이곳 위스콘신을 방문한 자리에서 수자원 보호 예산을 1330만 달러 삭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디카프리오가 관중을 향해 단추 풀린 셔츠를 열어 젖혔다. 그러자 흰 셔츠 위에 새긴 푸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케리-에드워즈' 객석을 채운 학생들은 열광했다.

 

 

스타급 정치인, 정치인급 스타

 

미 대선이 이틀 뒤로 다가왔다. 선거가 막바지에 달한 상황에서 후보들의 이미지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특히 후보들 간 정책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이에 관심 자체가 없는 유권자들에게 '막연한 호감'은 투표 행위를 결정짓는 주된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양당 후보들이 '스타급 정치인'은 물론, 아예 '스타'들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호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이미지가 정치적인 것이든 비정치적인 것이든 그들을 향한 호감을 후보 자신들에게 전이해 보려는 것이다.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경합을 벌이고 있는 2004년 대선에서 사소한 호감의 차이는 대선의 결과 자체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정치인들이 스타의 이미지를 원하기도 하지만, 스타 자신이 스스로 정치화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달라지기는 했으나 한국에서는 연예인들이 오랫동안 정치 수단으로 동원되어 왔다. 그러면서도 모순적으로 연예인 개인이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것은 금기시되어 왔다. 그들에게 필요한 정치관은 '이용당하거나 아니면 침묵하라'는 것인 셈이다.

 

이와는 달리 미국의 연예인들은 오래 전부터 스스로 정치에 목소리를 내왔으며 사회 문제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정치인들을 향해 공개 지지를 표명해 왔다. 그들은 전쟁, 낙태, 동성애, 인종, 환경문제 같은 다양한 사회 쟁점에 대해 발언하며, 자신들의 이상을 대변해 줄 후보를 찾아 열정적으로 돕는다.

 

미국에서 문화예술인들의 정치 참여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특히 올 대선은 '할리우드 정치'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될 만하다. 이는 30만이 채 못 되는 대학도시 매디슨에 지난 10월에만도 나탈리 포트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데이브 매튜스, 발레리 하퍼, 마이클 무어,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다녀간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이 할리우드 정치참여의 장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피츠버그 포스트-가제트>지는 9/11테러 사건을 가장 큰 원인으로 보고 있다. 그에 따르면, 뉴욕 테러 직후 영화계와 음악계는 부시행정부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으나 미국정부가 전쟁을 시작하면서 도리어 전통적으로 반전주의인 미국문화계의 반발을 사게 되었다는 것이다.

 

"9/11 직후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적어도 할리우드와 음악계는– 부시행정부에 호감을 보였다. 영화예술아카데미 원장을 지낸 잭 밸런티는 할리우드가 대 테러 전쟁에 한 몫을 담당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뉴욕을 위한 콘서트'에는 유명 음악가들과 영화배우들이 대거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시행정부에 대한 이러한 호감은 전쟁 시작과 더불어 종말을 고했다."– 매켄지 카픈터, "부시를 위한 문화예술인" <피츠버그 포스트-가제트> 2004, 9. 26.

 

물론 부시를 지지하는 연예인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찰튼 헤스튼, 멜 깁슨, 브루스 윌리스는 잘 알려진 부시의 후원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수와 목소리는 케리의 지지자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맷 데이먼, 레오 디카프리오, 헬렌 헌트, 기네스 폴트로, 나탈리 포트만, 빌리 크리스탈, 벤 에플릭, 마틴 쉰 같은 할리우드 스타를 비롯해 브루스 스프링스틴, 본 조비, 마돈나, 딕시 칙스, 토니 베넷, 셰릴 크로 등 쟁쟁한 음악가들이 케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예인들의 진보성향, 무엇 때문인가?

 

 

미국 문화예술인들의 진보 정치 성향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는 '창의성'으로 대표되는 문화예술인들의 유연한 사고 때문에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분석이다. 아메리칸 대학의 정치학 교수 레너드 스타인혼에 따르면, 예술의 창의성은 필연적으로 유연한 사고와 자유로운 표현을 요구하고, 이것은 진보 정신과 활발한 정치참여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둘째 견해는 미국 문화예술계를 지배하고 있는 진보의 목소리에 위축되어 보수 견해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할리우드 내에도 적지 않은 공화당 지지자들이 있지만 따돌림 당할 것이 두려워 보수성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시를 지지하는 코미디언 데니스 밀러는 영국 <텔레그라프>지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내 생각에는 할리우드에 보수 정치 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보수성을 대놓고 드러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영화 배역을 따내지 못하는 사태가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 – <텔레그라프>, 2004. 8. 25

 

보수성향의 정치인들은 당연히 할리우드의 이런 진보성을 못 마땅해 한다. 이들은 흔히 '할리우드 정치'가 사람들의 태도를 바꾸는 데 아무런 효과가 없으며, 설사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그 영향력은 아주 미미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현재 부시-체니 선거운동 대변인인 케빈 매든은 다음과 같이 '연예인정치 무용론'을 주장한다.

 

"유권자들이 국가안보 같은 중대한 문제를 판단하는 데 연예인들에게 의존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음악회 열 번을 여는 것보다 자원봉사자 50명을 구해서 친구나 이웃에게 전화로 투표를 권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 <피츠버그 포스트-가제트> 2004, 9. 26.

 

그러나 슈워제네거의 지원유세를 원하는 것을 보면, 공화당이 이 무용론을 진심으로 믿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 회의론을 주장하는 것은 비단 정치인만은 아니다. 일부 커뮤니케이션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 회의론은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고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연예인들의 선거참여가 태도의 변화보다는 기존의 태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능한다고 믿는다. 또 태도 변화가 투표 행위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과는 이 회의론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연예인들은 전처럼 투표를 권유한 후 황급히 자리를 뜨지 않는다. 매디슨을 방문한 디카프리오와 스프링스틴은 행사를 마친 후 유권자들을 이끌고 투표소로 향했다. 덕분에 매디슨의 부재자 투표율은 20퍼센트를 넘어섰고, 이런 선거열기로 인해 대통령 선거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고 <뉴욕타임즈>는 29일 보도했다.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도시로 알려진 매디슨의 특수성이 작용하기는 했지만, 연예인들의 정치참여는 그동안 무관심에 묻혀있던 미국인들의 정치의식을 일깨우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물론 할리우드 배우들의 개별 진보성이 정치 메시지를 담은 영화제작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할리우드의 영화제작과 분배가 한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복잡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영화에 투자할 제작자는 없으며, 설사 우여곡절 끝에 제작했더라도 배급사의 눈에 들지 못하면 상영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다수를 만족시켜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운영하는 제작시스템은 정치 중립적이고 이데올로기로는 보수적인 영화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개별로는 진보지만 전체로는 보수인 할리우드에 변화의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제작자와 배급자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만큼 개별 부를 축적한 배우와 감독을 중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컨대 멜 깁슨의 <그리스도의 수난>은 종교 영화의 흥행을 믿지 않는 제작자와 배급자에게 철저히 외면당했지만, 자비로 제작하고 감독 자신의 배급사를 통해 상영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다.

 

디지털카메라와 컴퓨터 편집기술의 보편화 역시 할리우드의 '이단아'를 낳는 또 다른 원인이다.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과 <화씨 9/11>은 최소 자원으로 할리우드의 보수적 제작시스템을 극복한 성공 사례다. 마이클 무어의 성공은 분명히 이례적인 사건이지만 소규모 제작으로 개인의 정치성향을 드러내려는 시도는 계속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정치인들의 연기, 연기인들의 정치

 

연예인들의 정치참여에서 흔히 제기되는 문제가 있다. '연예인들이 정치성향을 드러내는 것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윤리적 문제제기에는 '영향력'과 '자질'이라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첫째는 연예인이 비정치 활동으로 얻은 영향력을 정치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동일하게 '비정치' 분야에서 얻은 명성과 재력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하는 기업인이나 학자들에 대한 비판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정치 연예인'들에 대한 비난은 부당한 측면이 있다. 이 '윤리적' 문제제기의 배후에는 연예인에 대한 직업적 편견이라는 '비윤리적' 고정관념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배우'와 '정치인'이라는 두 직업에 필요한 상반된 자질을 둘러싼 것이다. 여기에는 '진실'과 '허위'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즉 '연기'를 하는 연예인은 '사실'을 말하는 정치인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기를 하는 것은 연예인만이 아니다. 어차피 정치인들도 연기를 한다. 지난 10월 텔레비전 대선토론이 있기 전, <보스톤 글로브> 지는 '정치인의 연기'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대통령 직책에 필요한 '자질'은 할리우드 배우 이상의 '연기력'이 요구되는 인위적 훈련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미디어 시대의 대통령은 사회에서 통념화 된 '대통령다움'을 훌륭하게 연기해 내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존 케리는 대통령이 될 만한 충분한 연기력을 가지고 있는가? 선거운동이 막바지로 접어 든 이 때, 그리고 텔레비전 토론이 9월 30일로 다가오고 유권자들이 곧 냉철한 한 표를 던져야 하는 이 시점에서, 앞의 질문은 냉소적이고 무례하며, 심지어 반민주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흔히 사람들은 생각한다. 연기자들은 허상을 창조하지만, 정치인들은 (케리 말대로) '진짜'라고 말이다.

 

그러나 현대정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텔레비전에서) 정치인들이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데에는 엄청난 재능과 연습, 그리고 훈련이 뒤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수많은 이미지 관리사의 조언과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말 할 필요도 없다. 극작가 아서 밀러가 2001년 에세이 <정치와 연기술>에서 말하고 있듯, '모든 정치 지도자들은 통치하기 위해서는 연기를 해야 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데이브 데니슨, "평생의 배역: 대통령 연기를 가르치는 최고의 연기코치 2인" <보스톤 글로브> 2004, 9. 26.

 

이 신문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어떻게 '연기'를 수행해 왔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아이젠하워와 닉슨은 영화배우이자 제작자였던 로버트 몽고메리에게 연기지도를 받았으며, 카터 대통령은 로버트 레드포드에게 조언을 받아가며 텔레비전 토론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추어' 배우인 카터는 레이건에게 패했다. 레이건은 '진짜' 배우였기 때문이다.

 

이미지에 압도된 미디어 정치 시대에 사람들이 '연기'와 '허상'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연예인 정치'에 대한 우려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위험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연예인들의 연기보다 드러나지 않는 정치인들의 연기일지 모른다. 정치인들의 연기는 연예인들의 연기보다 언제나 더 '그럴 듯'하기 때문이다.


태그:#짐 케리, #미국 대선, #디카프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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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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