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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예찬> 포스터
ⓒ 연극열전
1999년, 단원들의 훈련을 위해 대학로의 작은 소극장에서 워크숍으로 공연된 한 연극이 한국 연극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입소문을 듣고 찾아 온 관객들이 5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의 통로까지 꽉꽉 들어찼다. 연극은 해를 넘기고 극장을 바꿔가며 연장 공연을 했고, 미디어와 평단은 경쟁하듯 찬사를 쏟아냈다.

그해, 이 작고 초라한 연극은 국내의 연극상이라는 연극상은 모조리 휩쓸었다. 또한 연극의 주인공을 맡았던 무명의 배우들은 영화계의 러브콜을 받았고 한 배우는 억대의 개런티를 받는 스타가 됐다. 이제는 전설처럼 들리는 <청춘예찬>(박근형 작, 연출)이 만들어낸 실제 이야기이다.

<청춘예찬>이 돌아왔다. 지난 8, 90년대 한국 연극의 화제작을 되돌아 보는 <연극열전> 공연의 열두번째 작품으로 관객을 찾아 왔다. 이번 공연이 초연과 다른 점은 주인공역이 박해일에서 김영민으로 바뀐 것뿐이다. 간질 역의 고수희, 아버지 역의 윤제문 등 초연 때 감탄사를 쏟게 했던 그 배우들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청춘예찬>은 박근형표 연극답게 지지리도 어둡고, 암울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그런 인물들이 일상에서 작은 희망의 빛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영민은 고등학교 2학년으로 4년째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아버지는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부부싸움 끝에 눈에 염산이 닿아 장님이 됐다. 지금은 아버지와 이혼해 안마 시술소에서 만난 사람과 새 가정을 꾸리고 있다.

희망이 사라져 버린 영민에게 간질을 앓고 있는 하마 같은 몸집의, 하지만 순백의 마음을 갖은 여인이 나타난다. 둘은 살림을 차린다. 집은 관에 누운 것처럼 비좁다. 하지만 새로 태어날 아기를 위해 천장에 붙여 놓은 야광 별이 작은 희망을 준다.

무대에는 운동장 스탠드를 연상시키는 구조물이 있다. 이것이 전부이다. 배우들은 스탠드에 앉거나 오르내리면서 연기한다. 스탠드는 무대가 단순해지는 것을 막고 배우의 동작을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스탠드가 없었다면 배우들은 텅 빈 무대에서 숨거나 기댈 곳 없이 멍하니 서 있거나 땀나게 뛰어 다녀야 했을 것이다. 또한 무대가 높아지면서 배우를 입체적으로 배치시킬 수 있어 좀 더 쉽게 장면화를 꾀할 수 있다.

단순화한 무대에서 소품을 가지고 만들어 내는 아기자기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온다. 영민, 간질, 아버지 이렇게 셋이 덮고 자는 이불에 용필이 끼려고 안간힘을 쓰는 장면, 아버지가 용필에게 면회 가라고 이야기할 때 용필이 플래시로 만들어 낸 미묘한 분위기, 술병에 녹차 티백을 꽂고 술을 마시는 장면 등이 그렇다. 이는 작은 이야기들을 쌓아 큰 감동을 일으키는 방법이자 작은 것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작품에 녹여내는 박근형의 재주이다.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한 박근형은 한국 연극을 이끌고 있는 40대의 작가 겸 연출가로서 현재 극단 골목길의 대표이다. 그는 서민의 고단한 삶의 모습과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그만의 이야기를 하이퍼리얼하게 표현하는 데 뛰어난 재주가 있다. <청춘예찬>, <대대손손>, <집> 등이 대표작이다.

<청춘예찬>에서 극은 영민이 무대에 들어와 스탠드에 앉으며 시작해 스탠드에 앉아 있던 영민이 무대 밖으로 나가면서 끝난다. 영민이 관객이 되어 관객인 우리들을 보고 있는 식이다. 수필가 민태원은 '젊음은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취업 시즌을 맞아 사회의 문턱에서 절망하는 젊은이들에겐 젊음이 가슴 설레는 말로 들리기엔 영 고단한 게 아니다. 영민에게 눈물 흘리며 연민하기에는 관객인 우리의 모습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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