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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시와 케리가 지난 8일 밤 2차 토론을 마친 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
ⓒ 민주당 보도자료
두 번의 대선토론이 끝났다. 토론이 끝날 때마다 언론에는 "누가 더 잘 했는가"를 묻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고, 각 일간지에는 두 후보의 토론내용을 요약한 기사가 실렸다.

일부 언론사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토론 내용을 받아 적은 스크립트 전문을 공개하기도 했다. 텔레비전 토론을 놓친 사람들은 관련 기사들을 읽으면서 두 후보가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텔레비전 토론을 지켜 본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큰 관련이 없을 것이다. 토론 후 텔레비전 스위치를 끈 시청자들의 머리 속에는 후보들이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보다 그들이 몇 번이나 패널들을 웃겼는지,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텔레비전 카메라에 '호감 있는 인물'로 비쳤는가 여부일 것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토론이 상호비방과 내용 없는 수사학에 묻혀있던 미디어 정치의 숨통을 트여준 것은 사실이다. 그동안 '자유의 확산'이나 '강한 지도자' 등의 추상적 구호 이외에는 두 사람이 정책적으로 구분되는 지점을 알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대선토론은 그나마 두 후보를 구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면으로 보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지난 달 30일에 있었던 첫 번째 토론에서 부시대통령은 예의 "후세인은 위험했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정당했다"는 말을 단어만 바꾸어 가며 반복했으며, 이에 맞서 케리 후보는 부시행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했으나, 그렇다고 그가 이라크전쟁을 비판한 것도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이라크에서 물러나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승리하자는 것이다."

미국 대중민주주의의 전통을 보여주는 2차 토론에서 시민들은 예고 없는 예리한 질문들을 두 후보에게 쏟아 부었다. "대량무기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진 상황에서 이라크 전쟁을 합리화할 명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 부시는 아무런 부연설명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사담 후세인은 전례 없이 위험한 인물이었다."

'대선토론 시청자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렸던 2차 대선토론의 한 장면. 케리 후보가 부시행정부의 캐나다 의약 수입규제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 C-SPAN
두 후보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인 이라크 전쟁수행에 대해서조차 둘의 입장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다. 케리 역시 "나 역시 사담 후세인이 위협이라고 생각했다"고 거듭 자신의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몇 분 후에 "부시대통령이 이라크의 위협이 입증되지도 않은 상황 하에서 조급하게 전쟁을 시작했다"고 비판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케리의 이런 태도에 대해서 부시가 "케리 후보와 나는 전쟁관에 큰 차이가 없다"며 '동료의식'을 과시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 드러난 가장 명확한 차이라면 "앞으로 4년을 더 이런 식으로 가자"와 "앞으로 4년을 더 이런 식으로 갈 수 없다"는 호소였다.

지난 8일에 있었던 2차 토론 후 <뉴욕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실망감을 드러냈다.

"혹시 북한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하거나, 기업 세금감면 논쟁에 대한 의문 때문에 지난 밤 토론을 시청한 사람이 있다면 신의 위로를 빌 뿐이다."- <뉴욕타임즈> 사설, 2004. 10. 9.

케리의 '압승'으로 알려진 1차토론 후 선거참모가 부시에게 첫 번째로 제안한 것은 토론 내용이 아니라 얼굴 표정이었을 것이다. 첫 번째 토론에서 부시가 가장 크게 비판 받은 부분은 질문 내용에 관계없이 "후세인은 위험했고, 미국 경제는 나아지고 있다"는 대답을 되풀이 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발언 할 때 인상을 쓰거나 딴청을 부렸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케리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부분 역시 부시가 발언할 때 성실하게 필기하며 경청했고, 시종 평정심을 잃지 않은 온화한 표정을 유지했다는 것이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시청했다는 올해의 대선토론은 '박빙선거'와 맞물려 미국 안팎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미 다수의 유권자들이 지지후보를 결정한 상태지만, 두 후보 사이의 미미한 지지율 격차를 고려할 때 결코 적지 않은 '부동층'이 텔레비전 토론을 통해서 지지후보를 결정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토론이 선거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여러 면에서 섣부른 판단이다. 첫 번째 이유는 아주 단순한 산술에 따른 것이다. 이미 미디어는 지난 4년간 이런 저런 방식으로 후보들의 이미지와 유권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쳐왔기 때문이다. 이미 오랫동안 미디어의 영향 속에서 형성된 여론이 단 세 번의 정치토론으로 뒤바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전쟁 대통령', '변절자(flip-flopper)', '거짓말쟁이'. '위험한 자유주의자' 등의 이름 붙이기, 수 없이 반복된 테러리스트의 사진과 국제무역센터 건물의 붕괴 모습, 그리고 '뉴스의 색'이 된 성조기의 세 가지 색상 등의 다양한 이미지 속에서 국민들의 인식은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형성되어 왔다. 부동층 역시 정치적 중립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 할 때, 이들이 이제까지 접했던 정보와 이미지를 모두 버리고 세 번의 토론만으로 지지후보를 결정하리라고 보는 것은 무리다.

텔레비전: 감성의 매체

국민들 가운데 정치인들을 일상적으로 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드물다는 점에서 미디어가 보여주는 정치인들의 이미지는 현실 그 자체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처럼 '현실'을 제공하는 미디어가 사회 각계의 다양한 견해를 담아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 사회의 여론형성에 지배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보수 일변도의 상업방송이기 때문이다.

양당체제에서 '진보'에 속하는 민주당의 정책이 때로 공화당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보수화 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수년 간 뉴스화면을 채워 온 테러, 전쟁 그리고 애국주의 이미지 속에서 국민의식이 보수화 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보수상업언론은 보수정치인들을 편애하는 보도를 하고, 국민들은 그 과정에서 보수화 되며, 다시 정치인들은 보수화된 국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 보수정책을 강화하는 순환과정이 반복되어 온 것이다.

▲ 지난 달 30일에 열렸던 1차토론의 한 장면. 부시는 성의 없는 태도를 보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
ⓒ C-SPAN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새파이어가 케리를 "최신 네오콘(newest neocon)"이라고 비판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케리가 보수화된 유권자들 속에서 자신을 부시와 차별화하기 위해 더 강경한 보수의 목소리를 내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사이, 케리를 지지하는 반전론자들은 그가 폭 넓은 유권자들의 표를 얻어 당선되기를 희망하며 비판을 자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공익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상업언론체제에서 유래하지만, 미디어 자체의 특성에 따른 한계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언론학자들의 입장이다. 미디어 정치의 주역으로 부상한 텔레비전이 객관적인 정보보다는 주관적인 느낌, 이성보다는 감성, 그리고 복잡한 메시지보다는 단순한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적절한 매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쇄매체는 독자 자신이 정보습득의 양과 속도를 통제할 수 있는 반면, 정보가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텔레비전에서는 이런 통제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일방적인 정보전달은 라디오도 마찬가지지만, 청각이라는 단일 감각에 의존하기 때문에 청취자로 하여금 쉽게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하는 텔레비전은 정보의 핵심을 이루는 청각적 정보에의 집중을 어렵게 한다. '시각문화'로 대표되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시각적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그 때문에 텔레비전을 시청한 사람들이 이후에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은 청각적으로 제시되는 메시지보다는 시각적으로 제공되는 이미지다.

인쇄매체를 통해서 정치소식을 접한 사람이 정당정책의 차이점을 기억하는 반면, 텔레비전을 본 사람들이 후보의 개인에 대한 정보를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역시 매체간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텔레비전을 통해 전송되는 정보의 양 역시 인쇄매체와 차이가 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도되는 내용을 모두 합해도 신문 일면 기사의 양에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 1차 TV토론에서의 부시와 케리.
ⓒ 연합=AP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신문이 방송보다 우월한 매체라는 뜻은 아니다. 미국처럼 공영방송이 발달하지 못한 나라는 신문보다 방송이 보수화된 반면, 한국이나 영국처럼 공영방송 중심체제를 갖춘 나라는 방송매체보다 인쇄매체가 보수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신문과 잡지 등의 인쇄미디어는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뿐 아니라,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만이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읽을 능력이 있어도 집중하지 않으면 정보습득이 불가능하다. 반면, 텔레비전은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대중성을 가지고 있다. 이 장점이 공익에 근거한 심층보도와 결합될 때, 텔레비전은 나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어떤 매체도 따라올 수 없는 민주적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상업적 탐욕과 결합될 때에 그 결과는 참담하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언론이 보수화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상업언론의 시장지배가 언론의 고유의무인 '견해의 공개시장'을 불가능하게 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미디어는 공공재의 성격을 갖기에, 이윤추구를 공익 앞에 내세우는 언론사가 있다면 국민들은 이렇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 “공익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다른 돈벌이 수단을 찾아가라”고 말이다.

최초의 텔레비전 대선토론, 그리고 그 이후

▲ 1960년에 있었던 닉슨-케네디 대선토론은 미국 최초로 텔레비전을 통해서 전국에 상송되었다.
ⓒ CBS
1960년 9월 26일, 시카고의 시비에스 방송국(WBBM) 스튜디오에서 미국 최초의 대선토론이 열렸다. 당시민주당 상원의원이던 존 케네디는 8년간 부통령을 지낸 공화당의 리차드 닉슨에게 과감히 도전장을 던졌다. 이후 미국의 정치지형을 바꾸어놓은 이 대선토론은 미디어 정치가 갖는 의미와 한계를 잘 드러내 준다.

당시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 후보였던 케네디는 노련한 경력을 갖춘 닉슨을 상대로 자신이 '준비된 대통령감'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했다.

그러나 1960년 대선 당시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는 뚜렷한 정책적 차이점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을 상대방과 차별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정치평론가 사이에서 그 젊은 후보는 '지루한 연설가'의 악명을 얻어가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단 두 가지, 메시지 전달의 (내용이 아닌) '스타일'과 그의 매력적인 젊은 외모였다. 캘리포니아에서 유세중이던 케네디는 일찍 시카고에 도착해 당시 연출과 제작을 맡았던 단 휴이트를 찾아가 방송진행에 관한 세부사항을 캐물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설 무대를 둘러보고 응답시간과 방식을 숙지한 후 숙소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반면 텔레비전 토론을 유세의 하나로 생각한 닉슨은 시카고에 도착한 당일까지 근처의 노조사무실에 찾아가 지지를 호소하고는 지친 얼굴로 스튜디오에 나타났다. 그의 얼굴에는 오후수염이 자라기 시작했으나, 닉슨의 방송국 측의 화장 제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케네디도 이 제안을 거절했으나, 그는 이미 가벼운 화장을 하고 온 상태였다.

▲ 닉슨은 토론에서 케네디를 앞섰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이미지 관리' 미숙으로 대선에서 패했다. 닉슨의 "흘끔거리는 눈(shifty eyes)" 시청자로 하여금 그가 부정직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 CBS
게다가 짙은 색 정장을 하고 온 케네디와 달리 닉슨은 엷은 톤의 정장차림이어서 스튜디오의 벽 색깔과 잘 구분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닉슨은 전날 자동차에서 내리다가 문에 심하게 다리를 찧는 부상을 입었고 그 상처의 감염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당연히 카메라에 비친 케네디는 밝고 활기차 보였으나 닉슨은 지치고 무기력해 보였다.

케네디가 미소를 띤 채 카메라를 응시하며 힘 있게 손짓을 하며 이야기를 해 나갈 때, 닉슨은 카메라에 집중하지 못하는 듯 좌우로 눈을 움직였으며, 연신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 냈다.

당시 스튜디오 연출을 맡았던 휴이트는 당시의 느낌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날 밤 스튜디오를 나서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맙소사, 우리는 벌써 대통령을 뽑아버렸다. 선거는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 조 가너(Joe Garner), , Andrews McMeel Publishing, 2002, p. 66.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두 매체로 동시에 방송된 케네디와 닉슨의 대선토론은 아주 흥미로운 결과를 낳았다. 당시 라디오를 듣던 유권자들은 닉슨이 승리했다고 생각했으나, 텔레비전을 지켜 본 사람들은 케네디가 압도적으로 우세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텔레비전의 황금기'였던 당시의 시대는 케네디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는 닉슨을 누르고 최연소 대통령이 되었다.

▲ 케네디의 역동적인 발언태도는 메시지의 내용과 무관하게 그가 '유능한 후보'라는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 CBS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케네디의 신체 상태는 결코 닉슨보다 크게 낫지 않았다. 그는 고질적 요통에 애디슨병까지 앓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결국 첫 텔레비전 대선토론은 '이미지 정치'의 서막이었던 셈이다.

대통령선거: 술친구 고르기

<로스앤젤레스타임즈>는 9일자 사설을 통해 부시와 케리의 2차 텔레비전 토론을 논평했다. 이 사설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빌 클린턴은 특이한 존재였다. 반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이면서도 급우들이 가장 어울리고 싶어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존 케리는 빌 클린턴은 아니다. 케리는 반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을지는 모르나, 최근 조그비 여론조사에 따르면 부시와 케리중 누구와 맥주를 마시겠냐고 질문했을 때 응답자의 9퍼센트만이 케리를 택하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여길 것이다. 대선토론 내용을 분석한 사설이 왜 엉뚱한 '술친구 여론조사'로 서두를 꺼내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 사설은 후보들의 메시지 중심으로 토론을 분석한 <뉴욕타임즈>나 <워싱턴포스트> 보다 미디어 정치의 더 핵심적인 부분을 말해주고 있다. 결국 대선토론을 포함한 미디어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는 것은 메시지가 아닌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위 사설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일반패널 토론에서 케리는 자신의 (따분한 사람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시청자들과의 간격을 좁히는 데 실패했다. 어느 당에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던 유권자들은 이제 '더 똑똑한 사람'과 '더 호감이 가는 사람' 가운데 누굴 골라야 할지 선택해야 할 것이다. 부시가 딱히 더 매력적이라고 보기도 어려웠지만, 적어도 청중들의 웃음은 더 많이 이끌어냈다."

미묘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애쓴 '따분한' 케리보다 단순한 메시지의 '인간적인' 부시가 텔레비전에 더 잘 어울리는 후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공약을 하나 더 제시하는 것 보다 사람들을 한 번 더 웃게 만드는 것이 미국 대선에서 유리한 결과를 낳으리라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로 보인다.

부시의 이러한 이미지는 단순한 '포토제닉'을 넘어 보수언론이 장기간 체계적으로 쌓아올린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한 두 차례의 텔레비전 토론으로 상황이 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선거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이미지와 무관한 현실적인 요소, 즉 이라크 사태나 경제상황의 변화일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부분에 대해서 케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인다.

부시대통령은 8일 저녁 토론 자리에서 자신의 '일관된' 태도를 언급하며 "대통령은 인기투표로 뽑는 자리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디어 정치가 정치의 모든 것이 되어 버린 현재, 대통령 선거는 인기투표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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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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