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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대표적인 인터뷰어인 지승호씨가 새로운 인터뷰집을 출간했다. 제목은 <마주치다 눈뜨다>(도서출판 그린비). 2002년 이후 벌써 6권 째다. 매 해마다 두 권씩, 한국의 사회문화적 지형도를 인터뷰 집으로 그려낸 셈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무엇과 마주치고 무엇에 눈뜨게 되는 걸까? 2004년 대한민국에서 인터뷰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를 되새겨 보자.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다. '나' 앞에는 사회가 펼쳐져 있다. 어떤 인간도 사회적 관계를 벗어나서 주체를 구성∙발현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인간(人間)이라 하는 것이리라. 인간은 '신 앞에서의 단독자'도 아니요, '고독한 주체'도 아니다. 인간은 어우러진 존재다.

인간은 철저히 사회라는 공시태적 제약과 역사라는 통시태적 제약 안에서만 스스로를 실현할 수 있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 존재는 신이거나 동양적 의미에서의 '해탈한 자'다. 동양의 현인은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 존재가 되기 위해 '해탈/득도'를 꿈꿨고 그것을 위해 '탈속'을 감행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민주공화정이라는 사회체제를 가능케한 서양의 그리스적 사유는 다르다. 아테네에서 정치는 모든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였고, 정치활동은 '말' 즉 토론을 통해 이루어졌다. 동양에는 토론이 없었다. '해탈한 자'는 대중과 토론하려 하지 않았다. 화두를 던지거나 권위에 의거한 '말씀'을 내릴 뿐이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민주주의가 자랄 수 없었다.

물론 유학은 좀 다르다. 유학에서 정치는 모든 선비들의 권리이자 의무였고, 논변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피력했다. 그러나 유학자들도 절대 진리의 권위 앞에서는 감히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유학의 시조격인 공자부터가 소인배의 특징으로 "말을 잘 한다"는 것을 첫손가락에 뽑지 않았던가. 유학의 군자는 말을 안해야 했다.

그래서 한국인은 '말'에 약하다. 정치가 광장의 토론에 의해서가 아닌 밀실의 담합에 의해 이루어졌다. 대중의 공론이 아닌 지도부의 권위에 의해 방향이 정해졌다. 민주주의의 옷을 입고 있되 그 실상은 명망가들에 의한 봉건적 문중정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대학교수, 유명 칼럼니스트 몇몇이 할거하면서 봉건적 과두를 형성해 온 것이 대한민국 여론광장의 맨얼굴이다. 그들의 말은 말이 아니라 '말씀'이었다. '말씀'에는 논리가 필요 없다. 권위만 있을 뿐이다. '말씀'에는 설득과 이해가 필요 없다. '지시'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의 말은 많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말은 구구절절할 이유도 없었고 말로 자신의 속내를 속속들이 드러낼 필요도 없었다. 과두 집단에게 필요한 건 치열한 논리가 아니라 신성불가침의 권위였기에 그들의 말은 항상 정제되고 아름답고 단순하고 미적지근했다.

지식권력의 토대가 치열한 논리가 아닌 학벌이었기에 한국의 공론의 장을 규정짓는 한마디 말을 꼽으라면 그건 '허위의식'이었다.

음악평론가 강헌이 '진검승부'라는 표현을 들고 나왔을 때 그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 건 이 사회를 회색빛으로 감싸고 있는 '허위의식'에 대한 불온한 시선이 이젠 임계치에 다다랐기 때문이리라.

세상이 변했다. 밀실이 사라지고 있다. 권력이 공론의 장에서 형성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논객이 학벌이 아닌 논리와 설득력으로 대중에게 검증받기 시작한다. 아테네의 광장이 이 시대에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봉건에서 민주주의로, '허위의식'의 시대에서 '진검승부'의 시대로의 진화다.

지승호의 인터뷰에선 '진검승부'가 난무한다. 전심전력으로 자신의 '속엣것'을 드러낸다. 지승호는 이미 정평이 난 그의 성실성으로 인터뷰를 성공한다. 기존의 '허위의식'의 세계에서 익숙한 방식인 덕담식 인터뷰는 이미 그에겐 낡은 과거다. 그는 인터뷰이로 하여금 자신의 진검을 광장 앞에서 빼어들게 한다.

김규항씨는 "한국에서 인터뷰는 약력이나 훑어보고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눈 다음, 인터뷰이에 대해 파악한 양 구는 일인 듯하다. 그러나 지승호는 그런 환경과는 아랑곳없이 기본을 지킨다. 그는 인터뷰이가 감탄할 만큼 치밀하게 준비하고 또 거듭한다"고 말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정혜신씨는 "나는 정신과 의사로서 지승호의 글을 선호한다. 지승호의 인터뷰는 한 사람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게 만든다. 그런 까닭에 인물론을 쓸 때 그의 인터뷰 기사는 내게 더없이 소중하다"는 말은 독자로서 지승호의 인터뷰에 대한 경탄이리라.

서두에서 말했듯이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인간은 사회라는 장과 역사라는 장위에서만 자신을 실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개인으로서의 인간과 사회를 잇는 접접은 무엇일까? 봉건사회에서 그것은 문중이었고, 권위에의 귀속이었다. 지금과 같은 열린사회에서 그 접점은 '말'이 난무하는 공론의 장이다. 이 장에 참여함으로서 생물적 유기체인 인간이 사회적 존재인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 공론의 장에는 어떤 종류의 포스트들이 존재한다. 지승호는 이 포스트들을 모아서 독자들이 그들 각자의 진검을 볼 수 있게 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지승호는 그들에게 '허위'가 아닌 '말'을 하게 한다. 이 핵심 포스트들을 훑어봄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발딛을 '공론의 장'의 지형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지승호 본인은 이 책에 대하여 "시대의 전망에 대한 나름의 뜨거운 성찰이자 이 시대와 일정부분 의도적으로 불화하는 지식인들의 고뇌에 관한 기록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이번에 선택한 포스트들은 "시대와 불화하고 있는" 즉 이 사회의 비동일자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이다. 견고한 체제에 새 숨결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균열을 내야 한다. 이 책에서 지승호와 인터뷰이들은 한국사회의 균열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새가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알이 깨져야 하듯이, 새가 세상과 만나기 위해서는 안정된 알 속을 벗어나야 하듯이 그는 우리에게 이 세상의 맨얼굴을 보여주려 균열을 꿈꾸는 것일까? 그래서 일부러 "시대와 불화하는 지식인"들을 선택한 것일까? 우리는 마주칠 수 있을까? 눈뜰 수 있을까?

마주치다 눈뜨다 - 인터뷰 한국사회 탐구

지승호 지음, 그린비(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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