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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에 앞서 귀향객 차량과 제수 준비로 어수선하던 지난 25일 오후, 안양시에서는 난데없이 이주노동자 선거 출마자의 선거유세가 펼쳐져 안양시민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9월 17일부터 시작한 '안양천 프로젝트 F.L.O.W.'의 일환으로 참여작가인 박경주(36)씨가 서울 이주노동자센터에서 상담 간사로 일하고 있는 김티톤(28·방글라데시)씨를 선거 출마자로 설정하여, 가상 선거유세를 벌인 것.

▲ 선거 유세 차량은 안양역을 출발하여, 안양 1번가, 안양 중앙재래시장, 박달시장을 거쳐 벼룩시장이 열리는 평촌 중앙공원 등을 돌며 시민들을 만났다. 사진은 차량이 박달시장 앞을 지나는 모습이다.
ⓒ 전민성
실제 선거를 연상시키는 선거 펼침막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선거유세 차량은 오후 1시 안양역을 출발, 안양 1번가, 안양 중앙재래시장, 박달시장을 거쳐 주말 벼룩시장이 열리는 평촌 중앙공원 등을 돌면서 시민들을 만났고, 오후 6시에는 종착지인 구 삼덕제지 창고로 돌아왔다.

이 날 안양시 곳곳에서 선거유세 차량을 만난 안양 시민들은 대부분 이주노동자가 시의원이나 국회의원이 되는 것에 대해 "인물만 좋다면 찍어줄 수 있다"고 답해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안양시민들의 따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평촌 벼룩시장에서 만난 오경화(29·달안동)씨는 한 표 찍어주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 당장이야 어렵겠지만, 시간이 더 가고 또 어떤 활동을 했느냐에 따라 표가 나오지 않겠어요?"라고 답했다.

중앙시장에서 만난 상인 박정희(60·안양9동)씨도 "똑똑하기만 하면 찍어줄 수 있다"고 말해 이주노동자에 대해 포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 가상 선거유세 퍼포먼스에 출마자였던 김티톤(28·방글라데시)씨가 구 삼덕제지 공장 앞에서 연설을 하기 전에 시민들에게 선전물을 나눠주고 있다.
ⓒ 전민성
한편 10월에 있을 보궐선거 유세 차량인줄 알았다는 김모(40·귀인동)씨는 "외국인에다 무소속이면 좀 어렵지 않겠나"라고 말하면서도 "선거는 50대 50이라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것"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박달시장 근처에서 유세 차량을 우연히 지켜본 최상숙(48·박달동)씨도 "한국은 지역주의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직은 낯설고 어려울 것"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 완전히 동화된 이주노동자가 국회의원이 된다면 어떤 점이 좋을 것 같은가라고 묻자, "내국인보다 한국 사정엔 어둡겠지만, 정치 비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마자인 김티톤씨가 방글라데시 상담 간사로 일하고 있는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의 최의팔 대표는 삼덕제지 공장 터 앞에서 "이주노동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곧 내국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 이라며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 주목해 줄 것을 중앙시장 주변에 모인 시민들과 안양천 프로젝트 관람객에게 호소했다.

'이주노동자 가상 모의선거 프로젝트'를 기획한 박경주씨는 "안양천에 모여드는 철새들은 저렇게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데, 노동자는 국경을 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며, "비록 정부가 지난 8월 말부터 고용허가제를 실시했지만, 한국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내 고향 안양의 ‘행복한 변화’
김티톤씨의 '선거유세문' 중에서

내 고향 안양의 ‘행복한 변화’

안양천에 모여드는 생명이 어디 철새들 뿐이겠습니까! 멀리 방글라데시에서 산 넘고 물 넘어 이곳 삼성산 자락에 새 삶의 터전을 꾸린 지 수 십년! 이제 김티톤이 만백성이 만년 동안 평화롭게 살아갈 ‘조화로운 안양’을 약속합니다! / 박경주
박씨는 현재 명동에서 300일 넘게 노숙투쟁을 해 오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언급하며, "비록 미등록일지라도 한국사회에 잘 적응한 장기 체류 이주노동자들에게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한국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주노동자 문제 해결의 시작일 것"이라며 "멀지 않은 미래에 이주민 출신 정치인을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이 날 선거유세에 나선 김티톤씨도 “외국인도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공동체의 일원으로 선거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 즐거웠다. 그러나 연설을 하는 곳에 예상보다 사람들이 적게 모여 아쉬웠다"라고 말했다.

▲ 벼룩시장이 열리던 평촌 중앙공원에서 한 시민이 선거유세 차량에 적힌 문구를 유심히 읽고 있다.
ⓒ 전민성
삼덕제지 앞에서 만난 박찬웅 안양천 프로젝트 운영위원장은 "역사는 (내가) 뒤엎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꿈틀꿈틀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안양에서 사람들의 삶을 풍요하게 하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이 날 안양천 프로젝트를 관람했던 성완경 인하대학교 미술체육학부 교수도 "안양천 프로젝트는 예술, 생활, 생태가 잘 상호 연계된 행사"이며, "예술의 중심이자 도시의 중심인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통합적 개념을 가진 프로젝트"라고 평했다.

'안양천 프로젝트 F.L.O.W.'는 오는 10월 17일까지 석수2동 연현마을 생태공원 앞 ‘노란다리,’ 석수시장 안에 있는 스톤앤워터 갤러리, 구 삼덕제지 창고, 안양대교 등 안양시내 네 곳에서 전시되며, '이주노동자 모의선거 프로젝트'를 기록한 영상물은 삼덕제지 창고 전시장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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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동네의 성미산이 벌목되는 것을 목격하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이주노동자방송국 설립에 참여한 후 3년간 이주노동자 관련 기사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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