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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때때로 수도승이 되고 싶었다

▲ <걸망에 담아온 산사 이야기> 표지
ⓒ 가야넷
나는 때때로 수도승이 되고 싶었다. 몇 번을 별렀지만 끝내 산문에 입문치 못했다.

매번 썩은 새끼줄 같은 인연의 타래가 발목을 잡았지만, 사실은 내가 결단력이 부족해서 떠나지 못하고 줄곧 속계에서 머뭇거리며 살았다.

지금도 산문에서 나를 받아준다면 훌쩍 떠나고 싶다. 하지만 전생의 업죄와 이생의 업보가 많은 나를 이제 누가 받아주겠는가?

<오마이뉴스> 인기 연재기사 임윤수씨의 <걸망에 담아온 산사 이야기>를 읽어오면서 선계와 속계를 무시로 넘나드는 그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던 차에 한 모임에서 그를 우연케 마주쳤다.

임윤수(45), 그를 대하자 막 산사에서 내려온 탁발승을 연상할 만큼 얼굴이 해맑았다. “사람이 마흔을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했는데, 그의 상호에서 세속에 대한 구도자의 텅 빈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겸연쩍은 얼굴로 내게 <걸망에 담아온 산사 이야기>를 담은 따끈따끈한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연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출판키로 하여 9월 5일이 생일인 처녀 작품집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충청도 촌사람처럼 수줍게 자신을 소개했다.

"1960년 첩첩산골 충북 괴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역마살이 낀 탓인지 어릴 때부터 여태껏 돌아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좋은 산 이름난 곳에 가면 으레 산사가 있기에 다녀온 흔적으로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짊어진 걸망은 카메라와 기억력인 듯합니다.

저는 일찍이 낙엽은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고, 인생은 올 때 그랬듯 빈손으로, 흙으로 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넉넉한 마음으로 허허거리며 살려고, 그 여유를 탁발하러 산사를 찾아다녔습니다. 뭔가 모자란 듯한 생각이 들면, 담길 것 없는 걸망 하나 둘러매고 산사 풍경소리를 들어보십시오."


▲ 산사 스님의 상호인 임윤수씨
ⓒ 이정희 기자
<걸망에 담아온 산사 이야기>(가야넷 발행, 290쪽, 1만3000원), 표지부터 이른 새벽의 산사를 담은 듯 은은하고 담박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산행을 하려면 준비할 것이 참 많다. 신발과 복장은 물론이고 먹을 것과 비상약, 그리고 지도까지. … 틈만 나면 산사를 찾으니 주위사람들이 “왜 산사를 찾느냐고?”고 묻곤 하였다.

그때마다 웃음으로 대꾸하였지만, 산사로 가는 길에서 줍기도 하고 흘리기도 하는 사색이 즐거웠다.

수목과 잡초, 산짐승과 미물 벌레조차 삼매의 경지에 든 듯 조용한 산사! 그곳을 찾아 혼자 걸으며 읽을 수 없는 글들을 듣고, 들을 수 없는 소리를 읽는다.

고요한 침묵 속에 고즈넉이 앉아있는 산사 찾는 길에서는 주워올 것이 꽤나 많다. 망각 속에 묻힌 추억을 줍고, 잃어버린 나를 줍는다.


위로와 칭찬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산사

<걸망에 담아온 산사 이야기>에서는 한국 불교의 삼보 사찰인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에서부터 제주 전라 경상 충청도의 산사를 거쳐, 서울 경기 강원도의 산사까지 30여개의 사찰을 두루 섭렵하고 있다.

글 반 그림(사진) 반으로 산사를 찾지 않고도 마치 읽는 이가 비탈진 산길을 오르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생동감, 입체감이 있다.

그의 글에는 깊은 인생의 담론이 녹녹히 담겨 있다.

물 얼어 얼음이 되고, 얼음 녹아 물 되듯이 삶과 죽음도 그런가 보다. 살아생전 일가친척 많이 일구고 부귀영화를 누렸어도 누구 하나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이 바로 죽음의 길인가 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통해 하면서도 운명을 바꾸어 놓지 못하니 말이다. 큰스님들의 다비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 금강산 화엄사 창틀에 걸쳐진 수바위
ⓒ 임윤수
서암 스님이 입적하기 전에 제자들이 열반송을 물었다.
“나는 그런 거 없다”
“한 평생 사시고도 남기실 말씀이 없으십니까?”
“할 말 없다”
“그래도 누가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요?”
“달리 할 말 없다.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그게 내 열반송이다.”


그는 발길이 닿은 산사마다 길 안내와 아울러 그 산사에 녹아있는 전설을 나직이 들려주고 있다.

설악산 오세암에서는 '오세 동자상'의 전설을, 오대산 상원사에서는 세조의 이야기가, 금정산 범어사에서는 화주 보살이 절을 중건한 사연이, 금산 보리암에서는 금산의 유래가, 지리산 화엄사에서는 숙종 임금이 각황전을 세운 이야기 등이 감칠맛 나게 녹아 있다.

▲ 지리산 화엄사의 각황전(국보 제67호)
ⓒ 임윤수
저자 임윤수씨는 후기에서 다음의 말로 마무리하고 있다.

산사에서 느꼈던 마음의 평온함을 나누어 드리고 싶습니다. 마음이 울적할 때에도, 주체할 수 없이 기쁠 때에도 산사를 찾아보십시오.

가장 듣고 싶은 위로와 칭찬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산사입니다.

걸망에 담아온 산사 이야기

임윤수 글. 사진, 가야넷(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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