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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의료보험이란 사회주의적인, 혹은 국영화된 의료체계로서, 억압적인 전제국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사악한 것이다. 국민의료보험은 미국의 전통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로 가는 첫 발걸음인 동시에 가장 위험한 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러한 움직임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 의술의 상징인 황금뱀. 본래 구약성경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집트를 탈출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뱀에 물렸을 때 이 막대를 쳐다보면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에서 의술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만큼 값비싼 것이 되었다.
ⓒ 강인규
실없는 우스개소리나 풍자극의 대사가 아니다. 위 글은 1948년 12월 미국의사협회보에 실렸던 사설이다.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면 '사회주의'를 들먹이는 못된 버릇은 미국의 보수층도 예외가 아니었던 듯한데, 어쨌든 이들의 '애국충정' 덕택에 현재 4500만에 이르는 미국인들이 아무런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무방비 상태로 지내고 있다.

그리고 의료보험의 비수혜층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2400만명이 무보험자가 되었는데, 이것은 미국에서 매분마다 5명이 보험혜택을 잃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850만명에 이르는 어린이들이 아무런 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의료비용을 생각할 때, 미국에서 보험 없이 병원을 찾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고가의 의료서비스는 무보험자뿐 아니라 보험의 수혜자들에게도 적잖은 고통을 주고 있다. 지난 해 임금증가율은 4%에 머물렀던 반면, 의료보험료는 15%나 올랐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2006년이면 한 가족이 의료보험을 사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1만4500불에 이를 예정이다. 한국의 대학졸업자 평균 연봉에 가까운 금액을 미국인들은 의료보험에 쏟아부어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 서민들이 직장의 도움 없이 개인적으로 보험을 갖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기업들이 지불하는 의료보조비라고 하더라도 임금의 잠재적 인상분인 경우가 많고, 그밖의 초과비용은 상품가격에 포함되어 판매되므로, 의료보험에 따른 제반 비용은 피고용인과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미국의 직장 의료보험은 관리보험(managed care)이 대부분이다.

관리보험은 일종의 네트워크 형태로서, 이 보험에 가입해 있는 사람들은 보험사에서 정해준 특정 병원의 특정 의사들에게만 치료를 받도록 되어 있다. 의료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현재 1억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이 보건조직보험을 통해서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는 상태다.

이처럼 환자들에게 주치의를 할당해 주는 '에이치엠오(HMO)' 등의 관리보험체계는 보험수가는 낮지만, 제한이 너무 많고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다. 비용이 많이 드는 치료나 수술의 경우, 환자가 보험사의 사전 허락을 얻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의사들 역시 할당된 비용 이상을 초과해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환자 치료에 소극적이 되기 쉽다.

이처럼 미국의 의료보험은 사적인 부문에 의해서 통제되고 있다. 물론 공적 성격의 의료보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일정한 소득 이하의 극빈자층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서비스인 '메디케이드(Medicaid)'가 있고, 65세 이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메디케어(Medicare)'도 있다.

그러나 엄격한 자격심사로 이루어지는 공공보험마저 한도와 기간에 제한이 있을 뿐 아니라, 사후 비용처리가 잘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료기관으로부터 냉대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극빈자층에는 속하지 않지만 개인보험을 구매할 능력이 없는 서민들을 위한 아무런 보호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대규모 제조업체의 수는 급속히 줄어들고 있으며, 그 자리를 소규모 서비스업이 채워가고 있다. 이 때문에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게다가 장기적인 경제침체로 직장을 잃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아무런 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연소득 7만5000불 이상의 고소득자들 가운데에서 의료보험을 잃은 사람들이 28% 증가했으며, 대졸자 가운데서 보험을 잃은 사람이 29%나 늘었다는 사실은 사태의 심각성을 잘 말해준다. 이들보다 경제 상황이 어려운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보건이 2004년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이민자의 안타까운 죽음

▲ 한 미국병원에서 의사들이 환자를 수술실로 옮기고 있다.
ⓒ 강인규
미국에서 의료보험의 수혜계층과 비수혜계층간에는 명확한 인종적 경계가 존재한다. 예컨대 백인들 가운데서 보험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11%인 반면, 아시아인들은 이의 두 배에 가까운 18%이고, 흑인과 라티노(히스패닉)들은 각기 20%와 32%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달 말 <뉴욕타임즈>에 실렸던 한인 교포의 안타까운 사망소식은 미국의 국민보건체계가 가진 문제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뉴욕주의 퀸즈에 살던 한국인 문철선씨는 운동 중 머리를 다쳐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으나, 단층촬영을 마친 병원측은 특별한 치료 없이 김씨를 퇴원 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병원은 문씨가 처음 실려갔던 의료원에서 추천해준 두 번째 병원이었다.

병원측에서는 촬영 결과 문씨에게 뇌출혈의 징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열 흘 후 다시 오라'고 말하면서 집으로 돌려 보냈다고 한다.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병원측이 한 말은 "타이레놀을 복용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열흘 후 다시 찾아간 문씨는 '95불을 내지 않으면 의사를 만날 수 없다'는 말을 들었고, 그가 돈을 내자 '오늘은 검사를 할 수 없으니 사흘 뒤 다시 오라'는 말이 전해졌다.

다시 병원을 찾은 문씨의 가족은 "단층촬영 한 번에 552불이고, 최소한 절반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진찰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촬영이 끝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김씨는 며칠 후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병원측은 그에게 '95불을 내라'는 이야기와 4500불짜리 청구서를 내밀었다.

문씨는 빈곤층에게 주어지는 의료혜택인 '메디케이드'에 신청할 수 있었으나, 자녀들이 영주권을 얻는 데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사양했다고 한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영주권 취득에 영향을 미치느냐는 문씨의 질문에 병원 관계자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애매한 답변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문씨는 스스로 치료비를 모아 볼 생각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공사장에 나섰다가, 일하는 도중 통증이 악화되어 다시 응급실로 실려갔다. 문씨를 처음 진찰했던 이 병원에서는 문씨의 머리에 뇌출혈로 인한 혈종이 발생한 것을 알아내고는 급히 다른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시작했으나, 문씨는 끝내 숨을 거두었다.

병원측에서는 "왜 더 빨리 데리고 오지 않았느냐"고 문씨 가족을 꾸짖었다고 한다. 문씨에게 단층촬영만 한 후 돌려보낸 병원측에서는 '우리로서는 할 일을 다 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측에 '메디케이드'에 대한 정보도 제공했으며, 후속 진찰 날짜까지 알려줬지만, 문씨가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환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미국의 의료체계

<뉴욕타임즈>는 문씨의 죽음에 대해 구멍 뚫린 미국의 의료체계와 문화적 차이 및 의사소통의 오해가 결합된 불행한 결과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문씨의 불행은 결코 언어소통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 문씨의 변호사인 엘리자베스 벤자민의 견해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환자들을 다루는 것이 미국 병원의 일상적 업무인 데다가, 문씨를 그냥 돌려보낸 병원측은 매년 7천만불 이상을 자선의료 비용으로 보조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병원측에서는 되돌려받지 못하는 치료비가 년간 1억2천만불에 이르고 상황에서 문씨 같은 환자들을 지속적으로 돌보기는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무보험자의 증가는 환자들뿐 아니라 의료계에도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장기간 치료를 받지 못한 무보험 환자들은 최악의 상황에서 응급실로 들이닥치기 마련인데, 이 경우 병원은 환자를 아무런 보상대책 없이 치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주에서 병원은 환자의 지불능력과 상관 없이 응급실로 실려온 환자들을 치료해야 한다고 법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문철선씨와 같이 보험이 없는 환자들의 경우,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은 후 귀가하고 나면 이후에는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후속 치료를 위해서는 의사와 약속을 잡아야 하지만, 막대한 금액의 청구서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고, 일정 금액을 지불하지 않는 한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 국민보건은 미국대선에서 핵심적인 이슈로 부상했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결국 환자와 의료계 모두 잘못된 사회의료체계의 희생자인 셈이다. 보험을 가질 능력이 없는 국민들은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마지막 순간에 응급실에 실려가야 하고, 병원측에서는 아무런 대책 없이 이들을 의무적으로 돌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의료체계의 한계는 오래 전부터 문제점으로 지적 되어왔지만, 이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만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상태다. 전국민의료보험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정작 이것이 실현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양한 사회계층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민 모두가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사회적 자금이 필요하지만, 터무니 없이 높은 미국의 의료수가는 이 비용 마련 자체를 어렵게 한다. 이미 고가의 훌륭한 보험 서비스를 받고 있는 계층은 세금을 통한 자금충당에 반대하고 있으며, 이미 사적 부문에 의해서 통제되고 있는 의료보험시장은 정부가 자신의 몫을 빼앗으려는 움직임을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의무보험'이라는 발상 자체를 불온시하는 경향 때문에 미국의 정당은 쉽게 전국민의료보험을 공약으로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보수정당인 공화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마저 전국민의료보험을 전면에 내세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부시행정부가 부유층에게 베풀었던 세금감면혜택을 서민들에게 돌려 의료보험 보조금으로 사용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민주당 후보인 케리의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사회는 이러한 점진적인 개혁를 기다릴 여유가 없어 보인다. 이미 고령사회인 미국은 수명연장으로 노년층이 점점 두터워지고 있으며, 전후 등장한 베이비붐 세대가 조만간 노년층으로 대거 진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조업의 쇠퇴와 계약직 및 시간제 고용 증가로 인해 직장의료보험 수혜층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더불어 장기간의 경제난으로 인한 실업증가는 국민보건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돈이 없으면 아플 수도 없는 사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미국은 국민의료보험이라는 '사악한 사회주의적 발상'에 맞서 '의료 자본주의'를 성공적으로 지켜낸 셈이다. 그러나 병실에 누워 있는 환자들이 이 '성공'을 기뻐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집에 누워 비처방약으로 연명하는 환자들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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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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